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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寒氣) -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아직 새벽 네 시 이십 사 분이었다. 나는 한 번 더 냉장고를 열어, 물을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차가운 물이 내 마른 목에 타격감을 선사했지만, 그래도 곧 목이 탔다. 나는 생수 한 병을 다 비우고, 다시 한 병을 꺼내 또 벌컥벌컥 마셨다. 그 다음엔 냉동고에서 캔맥주를 꺼냈다. 맨 정신으로는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누군가 문을 쾅쾅 두드렸다.

 

 심장이 쿵쿵 발작했지만, 나는 제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나는 문 가까이 다가가,

 

 "누구세요?"

 

 하고 조심히 물었다.

 

 "나야."

 

 하고 대답이 들려왔다.

 

 나는 문을 열어주었다. 녀석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담배를 한 대 물었다. 나는 문을 꼭 잠그며,

 

 "혼자 왔지?"

 

 하고 물었다. 녀석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무슨 소리야?"

 

 하고 물었다.

 

 "아니, 아니야."

 

 나는 대답을 얼버무렸다. 나는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손을 내저으며,

 

 "빨리 작업해 줘."

 

 하고 말했다. 하지만 녀석은 느긋하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한 대 피우고. 뭘 그리 급해?"

 

 나는 기가 막히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담배 연기를 빼기 위해 창문을 열었다.

 

 "안 급하게 생겼냐? 내가 널 왜 불렀겠어?"

 

 "좀 진정해."

 

 녀석은 그렇게 말하고는, 내 컴퓨터 앞에 앉아 삭제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녀석은 시종 느긋했고, 중간 중간 다른 사람들과 전화를 하며 잡담을 떨기도 했다. 나는 녀석의 뒤통수를 한 대 후려치고 싶은 충동을 불쑥불쑥 느꼈다.

 

 "아. 그런데."

 

 녀석은 작업하다가 갑자기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말할 기운도 없어서, 고갯짓만 했다. 녀석은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뭘 촬영한 건데?"

 

 "......"

 

 "한 번 보기나 하자."

 

 "......"

 

 하고, 녀석은, 나의, '작업' 폴더를 열려 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안 돼!"

 

 하고 외쳤다.

 

 "왜 안 돼?"

 

녀석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진중하게,

 

 "너도 위험해질 수 있어."

 

 "......"

 

 녀석은 입을 다물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그 시선을 마주 바라보았다. 녀석은 피식 웃으며,

 

 "웃기고 있네. 등신 새끼."

 

 하고, 육중한 덩치에 걸맞지 않게 날카로운 말을 내뱉고는, 급기야, 작업 폴더를 열었다.

 

 녀석은 한동안- 멍하니 나의 촬영물들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야. 이게 뭐야?"

 

 하고 물었다. 그리고 나는 묵직한 맥주 캔을 손에 쥐었다.

 

 열린 창문으로, 한기(寒氣)가 스며들었다.

 

 

 

 

 

 

 

 

 

 

--

한기(寒氣)

2019.07.10.

 

낮아짐 이야기제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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