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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모르실 거야 -

그 할아버지는 잔뜩 욕을 먹으며 길거리를 걷고 있었다.

보통의 교양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어폰을 사용하겠지만, 할아버지에겐 아마 그러지 못할 여타의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그는 자신의 옛날 모델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있었고 그것은 반갑지 않은 소음이 되기에 충분했다. 흘러간 옛 가요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우렁찬 목소리로 이 노래를 따라 부르며 걷고 있었다.

당신은 모르실 거야- 얼마나 사랑했는지!

길가던 사람들 중 그 할아버지쯤의 연배로 보이는 노인들은 "저런, 미친 놈." 하며 혀를 끌끌 찼다. 몇몇 젊은 사람들은 눈쌀을 찌푸렸고,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는 자리를 슬슬 피했다. 할아버지가 그런 주위의 시선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는 '새마을 운동' 로고가 붙어 있는 빨간 모자를 가끔 눌러 쓰며 마치 얼굴을 가리는 듯한 제스쳐를 취했다. 어차피 그가 쓰고 있는 선글라스가 그의 눈을 가려주고 있긴 했지만. 할아버지의 가슴팍에 백화점 샹들리에처럼 달려 있는 메달들과 명찰들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나는 도로 건너편에서 그와 나란히 걷고 있었다. 작은 왕복 2차선 도로로 차들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배달하는 오토바이들은 그런 차들보다 더욱 빨리 지나갔다. 골목길에서 차가 하나 튀어나왔고, 덕분에 지나가던 트럭은 급정거를 하며 클랙션을 울렸다. 그 소리는 매우 커서 길 가던 사람들이 다들 움찔할 정도였다. 할아버지는 아랑곳않고 노래를 계속하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가면은, 그때서 뉘우칠 거야-!

할아버지는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고 한참을 그 자세 그대로, 서 있었다. 마치 망부석(望夫石)처럼,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 같았다. 그리고 나는 엉뚱하게도 할아버지가 관객들을 바라보며 서 있는 가수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노래를 듣고, 어떤 아주머니는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은 아내의 그런 반응을 보며 머쓱한 표정을 짓는다. 이윽고 객석에서 하나 둘 씩 박수가 터져 나오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일어나서 박수를 친다. 할아버지는 그런 관객들을 보며, 노래를 부른다.

당신은 모르실 거야... 얼마나 사모했는지!

나는 할아버지가 울고 있다고 생각했다. 선글라스를 끼고 팔자 걸음으로 저벅저벅 걷던 위풍당당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거기에는 하나의 연약한 짐승만이 남아서 구슬프게 운다. 겁쟁이, 나약한 위인, 쫄보, 세상은 늘 거대했고, 자신은 늘 초라했던 남자. 나는 그의 맞은 편에 서 있는 게, 문득 겁이 났다. 나는 무심한 듯, 다시 걸음을 옮겼다. 무심한 자동차와 배달 오토바이, 바쁜 행인들과, 갈 곳 없는 열정들이 방황하는 무심한 도시, 그 곳에서 벌어진 아주 작은 공연 하나가 끝났기 때문이다.

 

 

마음이 서글프거나 초라해 보일 때에는

이름을 불러 주세요. 나, 거기 서 있을게요.

당신은 모르실 거야...

--

당신은 모르실 거야

2019.02.11.

낮아짐 이야기제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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