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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템 강화의 날 -

 A는 공원 벤치에 앉아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다. 그는 종종 핸드폰으로 뉴스를 체크한다. 요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기사들은 주로 이웃나라와의 무역 분쟁에 관한 것들이다. A는 핸드폰을 바라보다가 가끔 쯧쯧, 하고 혀를 찬다. 그는 종종 고개를 들어 주위의 사람들을 바라본다. 깔깔거리며 오가는 학생들, 조깅이나 체조를 하는 사람들, 이제 막 퇴근하는 직장인들, 길가에 자리잡은 노점상들. A는 고개를 들고, 그들을 다소 오만한 눈빛으로 내려본다.

 B는 중얼거리며 걷고 있다. B는 꽤 잘 생긴 청년이다. 붉게 염색한 머리가 저녁 햇살을 받아 빛난다. 그가 입은 청바지는 다소 기장이 긴 듯, 바지 밑단이 땅에 질질 끌리고 있다. B는 A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며, 계속 중얼거린다. A는 B를 보고, 약간 미간을 찌푸린다. 하지만 그대로 B가 지나가길 기다린다. 하지만 B가 중얼거린 말에, A는 무심코 B를 쳐다본다.

 "삼천만 원이 날라갔어..."

 B도 A를 쳐다본다. A는 B의 눈을 잠깐 바라보다가,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다시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하지만 B는 A를 계속 쳐다보며,

 "아저씨... 제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요?"

 A는 다시 B를 쳐다본다. 무례하게 이 청년을 내치기도 뭣해서,

 "무슨 일인데요?"

 그러자 B가 약간 익살스럽게,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삼천만 원 날렸어요!"

 하고 고함을 지른다. B는 잉잉잉, 하고 우는 시늉을 한다. A는 자신의 파란 넥타이를 고쳐 잡고, 자신의 금빛 손목 시계를 한 번 바라본다. 슬슬 집에 갈 참이다. A는 다시 B를 바라보며,

 "사기라도 당했어요?"

 하고 으레 묻는다. 그러자 B는 갑자기 가슴을 치며,

 "사기? 사아아아아기?"

 하고 소리를 친다. A는 자신의 아메리카노를 쏟을 뻔 한다. B는 계속 소리를 지른다.

 "그런가! 이건... 사기인가!"

 "......"

 "아저씨. 저는 전 서버를 통틀어 열 한 자루 밖에 없는 '제국의 지휘검'을 가지고 있었어요. 한 서버에 한 자루 있을까 말까 한 검이라구요! '플러스 구 (+9) 사무라이 곡도' 보다 +1 의 타격치가 있는, 한 자루당 삼천만 원짜리 검이라구요!"

 "......"

 "그런데 그걸, 오늘 그걸, 날려 먹었어요! 성공하면 삼천만 원짜리가 일억 오천만원 짜리 되는 건데! 엉엉!"

 갑자기 B는 주저앉는다. 그리고 엉엉 운다.

 A는 당황하여 B를 바라본다. 그러다가 A는 핸드폰으로 자신의 주식 시세를 확인한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잠깐 쉬고, 다시 B를 바라본다. B는 여전히 엉엉 울며,

 "내가, 내가 그 게임 한다고, 카드 깡에, 핸드폰 깡에... 엉엉!"

 "......"

 "그거 성공해서 빚 갚을라 그랬는데!"

 A는 입을 잠깐 달싹이다가, B에게 말한다.

 "내가 그 심정 이해해요. 나도 예전에 온라인 게임 할 때..."

 "엉엉..."

 "아이템 강화하다가 날려 먹은 적 있어요. 이해해요."

 "이건 사기야!"

 B는 갑자기 고함을 지르며 벌떡 일어난다.

 "이건 사기야! 애초에 광고부터 사기였어! 강화 실패한다고 아이템이 사라지는 게 말이 돼!"

 "......"

 "무슨 이런 엿 같은 시스템이 있어!"

 "......"

 "시발! 잘 먹고 잘 살아라!"

 B는 고래고래 고함을 지른다. A는 문득, 주위를 돌아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A와 B를 흘깃흘깃 바라보며 지나간다. A는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A는 B에게,

 "그런데... 혹시, 이거, 몰카 아니죠?"

 B는 A를 휙 째려본다. A는 그 시선에 놀라 사과한다.

 "아. 미안해요."

 "저도 죄송해요."

 하며, B는 다시 일어난다. B는 눈가의 눈물을 닦고,

 "세상에 사기 아닌 게 없는 거 같네요."

 라고 중얼거린다. A는 잠깐 움찔한다. 하지만 B는 그런 A의 반응은 눈치채지 못하고, 중얼거린다.

 "이제 무슨 낙으로 살아야 할지..."

 A는 헛기침을 한 번, 크흠, 하고 한다. 그리고 B에게 말한다.

 "힘내요. 아직 젊은데. 일단..."

 "......"

 A는 한 번 목소리를 가다듬고,

 "불매 운동부터 시작하면 돼요."

 하고 말한다. B는 A를 바라본다. A는 그런 B를 보고, 약간 목소리 톤을 높이며,

 "쓰고 있는 거 있으면, 하나씩 버리고- 사지 말고-"

 "...이미 하고 있는데... 조금이지만..."

 "...좋아요!"

 "......"

 "우리 모두, 힘냅시다."

 하고, A는, 흐뭇한 표정으로, 다시 넥타이를 고쳐 잡는다. 그러다가 A는 잠깐 놀란다. B의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해지고 있다. B는 잠시, 그렇게 씩씩거린다. A는 긴장하여 B를 본다.

 B는 자신의 품 속에서 칼을 꺼낸다.

 A는 화들짝 놀란다. B는 말한다.

 "아저씨... 내가 오늘 이걸 왜 들고 나왔는지 알아?"

 "......"

 A가 대답을 못 하고 머뭇거리자, B는 갑자기, A에게 고함을 지른다.

 "무슨 이런 엿 같은 세상이 있어!"

 "...이... 이 봐."

 여름. 빗방울이 후두두둑 떨어진다. B의 머리 위로도 빗방울이 떨어진다. B는 비를 맞으며, A에게 다가간다. A는 짓눌린 신음소리를 낸다.

 "사... 살려 줘. 이... 이 봐."

 B는 칼을 높이 든다. A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는다.

 "으아아아악!"

 잠시 후, A는 슬그머니 눈을 뜬다.

 땅바닥에, 빗물과 핏물이 섞여 흘러내린다. A는 자신의 몸 상태를 살핀다. 온전하다. A는 주위를 살핀다. 정신을 잃은 B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 A는 황급히 B에게 다가간다. 이 봐. 정신 차려! A는 B를 바로 눕힌 다음, 자신의 와이셔츠를 벗어서, B의 상처 부위에 지혈을 한다. 그리고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구급 신고를 한다.

 이윽고, 구급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다가 오고, 들것에 실린 B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다.

 막이 내린다.

--

아이템 강화의 날

2019.07.23.

낮아짐 이야기제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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