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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국으로 가는 계단 (stairway to heaven) -

 그 글쓰기 선생은 지금 대박을 꿈꾸고 있었다.

 어렸을 때는 나름 글쓰기 신동 소리를 들었다. 그는 중학생 시절, 학교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당시 그 백일장을 담당했던 선생님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에게 물었다.

 "이게 정말 네가 쓴 거 맞니?"

 "네."

 "어떻게 네가 '극명하다' 같은 단어를 알고 있지?"

 어린 그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선생님은 기특하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그는 뭐 이 정도 쯤이야,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대로 무럭무럭 큰다면 유명 작가가 되리라, 장차 노벨 문학상도 타게 될 것, 이라는 성급한 찬사가 주변으로부터 이어졌다.

 하지만 어려서 신동인 사람이 장성해서까지 신동인 경우는 역시 드물었다.

 남들처럼 이런 저런 삶의 풍파를 겪고 나서, 우여곡절 끝에 평범한 대학을 나오고, 평범한 회사를 다녔다. 그의 인생 전반이 그랬지만, 회사에서도 그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사람이었다. 몇 년을 그렇게 다니다 보니 자신이 하는 일에 점점 회의감을 느꼈고, 네 해 전부터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그라든 줄 알았던 재능은 다시 조금씩 되살아나는 듯 했다. 그는 글쓰기에 재미를 붙였고, 작은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했다. 자신에게 회의감을 선사하던 회사를 그만둔 후, 글쓰기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다보니 먹고 살 일이 궁색해졌다. 급기야 끼니를 걱정하는 나날이 계속되었고, 그는 궁여지책으로 작은 학원에서 글쓰기 선생 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대박을 치고 말리라.

 한 번, 단 한 번만 성공하면 된다. 단 한 작품만 대박이 나면 된다. 일단 유명해지기만 하면, 그 후에는 내가 뭔 짓을 해도 다 화제가 되고, 뉴스가 된다. 그리고 그게 곧 돈이다. 나는 그때를 위해 지금을 견디고 있는 것이다. 단 한 번만.

 수업을 하러 가는 버스 안에서,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여기서는 'keep' 을 쓰니까, 뒤에 '-ing' 가 붙어야지."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학생 둘이 옆자리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교재를 펼쳐서 무릎 위에 올려 놓고 그걸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그 다급한 품새로 보아 아마 곧 시험이 있는 듯 했다. 그는 어느새 그들의 대화에 귀를 쫑긋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 그렇구나. 영어 진짜 왜 이렇게 어렵지?"

 한 학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탄했다. 그러자 다른 친구가 위로쪼로 웃었다.

 

 

 "흐흐흐..."

 "몇 년을 공부했는데도 잘 모르겠어."

 그는 남몰래 피식 웃었다. 옛날 생각이 나서. 그러나 연이어 이어지는 학생의 말에 그는 가슴이 철렁했다.

 "미국인으로 태어나고 싶다! 아악!"

 하며 그 학생은 과장된 몸짓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한국어는 더 공부하고 싶지 않아?"

 "한국어는 별로... 내가 미국인이었으면 좋겠어."

 글쓰기 선생은 몸이 굳어버렸다. 언어로 먹고 사는 사람, 백색의 원고지 밭에 한국어를 파종하는 것을 인생의 전부로 알고 있는 사람에게 그 말은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학생들은 계속 장난스럽게 투덜투덜 대화를 나누었다.

 "미국인으로 태어났으면 이런 고생 안 하잖아?"

 "미국이 뭐 좋냐?"

 "미국은 천국이지!"

 "......"

 "언젠가는 미국 가야지."

 "뭐 할 건데?"

 "떵떵거리며 살아야지!"

 "어머. 드응신-"

 하고 그들은 한참을 깔깔거리며 이야기하다가, 곧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글쓰기 선생은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잠시 후, 글쓰기 선생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차창 너머로 햇살이 밝아 왔다.

--

천국으로 가는 계단 (stairway to heaven)

2019.02.12.

낮아짐 이야기제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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