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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화 -

(완결)

 

 

 

 알바를 쉬는 날, 나는 늦은 저녁을 지어먹었다.

 

 낮밤이 바뀌었다. 밤에 일하는 덕에 낮새 자고 밤에 말똥말똥하다. 이때쯤 햇빛이 그리워진다. 아무렇지 않게 누리던 혜택이 사실은 귀중한 것이었음을 깨닫는 때이다. 나는 양치질을 하고, 샤워를 하고, 몇몇 '도구'들을 챙겨서 바(bar)로 향했다. 

 

 이제는 익숙한 곳, 처음 여기에 올 때의 두려움 반 설렘 반 하는 마음은 이제 희미하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예감이 서늘했다. 단지 컨디션이 안 좋은 탓일까? 나는 바의 문을 잡고 잠깐 그렇게 서 있었다.

 

 "어서 와요."

 

 오늘도 어김없이 주인이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나는 웃으며 마주 인사하고 분장실로 향하려는데, 한 손님 하나가 나를 주시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러버임이 분명하다. 날이 빳빳이 선 회색 와이셔츠에 카키색 넥타이를 메고, 머리는 노란색으로 염색했다. 나는 그 모습을 눈에 담고 분장실에 들어갔다. 

 

 분장을 하고 나왔다. 그리고 주인에게 가서 맥주 한 병을 주문했다. 주인은 맥주 하나를 내어주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며, 

 

 "저 손님이 합석을 요청하는데요."

 

 하고 말했다. 뭔가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기대하는 듯한 눈빛으로, 주인은 아까의 그 노란 머리 러버를 향해 눈짓했다. 저 손님이 나랑 합석을 원한다고? 나는 다시 그 러버를 바라보았다. 그는 짐짓 모른 체 하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주인이 다시 말했다.

 

 "한 번 대화 나눠보세요. 혹시 몰라,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될 지."

 

 하고 여전히 짖궃은 눈빛이었다. 나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주인을 쳐다보다가, 그 러버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부인하지 않겠다. 그때 나에게 '호기심'이란 게 있었음을. 

 

 내가 그 러버의 맞은 편에 앉자, 그는 인사하며,

 

 "반가워요. 저는 광고 회사 다니는 안영준이라고 합니다."

 

 하고 자신을 소개했다. 시원시원한 말투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물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저는 이름이 없습니다."

 

 "아, 네."

 

 나는 눈을 꿈뻑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내 잔에 술을 따르고는,

 

 "한 잔 하시죠."

 

 하고 나에게 건배를 요청했다. 나는 술잔을 들어 마주 건배했다. 그는 술을 단숨에 들이키고, 이번엔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라이터를 테이블에 내려 놓으며, 

 

 "여기는 처음이신가요?"

 

 하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아뇨. 여러 번 왔었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그렇군요. 저는 KFN 은 몇 번 가봤는데, 오늘 여기는 처음이예요."

 

 하고 응수했다. KFN이라면... 씨디 바 중에서는 악명이 높은 곳이다. 나는 속으로 약간 식겁했으나 내색하는 티를 내지 않고, 술로 입술을 축였다. 입술에 바른 립스틱이 잔에 붉게 물들었다. 나는 컵을 눈 앞에 대고 그 모습을 잠깐 바라보다가, 

 

 "저도 한 대 주시겠어요?"

 

 하고 말했다. "아, 담배 태우세요?" 하고 그가 물었다. 나는 "네." 하고 대답했다. 그는 품을 주섬주섬 뒤적여 담배 한 대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 나는 그가 테이블에 내려놓은 라이터를 들어 담배에 불을 붙이고, 다시 라이터를 내려놓았다. 그가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갑자기 손을 들었다.

 

 "우리 이렇게 만난 김에 하이파이브 한 번 해요."

 

 나는 그 손을 보다가, 마주 하이파이브를 해 주었다. 이런 식으로 스킨쉽을 유도하는 것을 모를 정도로 나는 눈치가 없지는 않다. 나는 속으로 웃었다. 

 

 "광고 회사 힘들지 않아요? 저도 예전에 광고를 잠깐 배웠었는데..."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내 말투가 자연 부드러워진 것을 느꼈다. 그는 대답했다. 

 

 "힘들어요. 제아무리 준비하고 아이디어 짜내고 맨날 밤샘 회의하고, 그래도 경쟁 피티에서 떨어지면 다 끝이에요."

 

 "아니면 광고주한테 까이거나..."

 

 "오! 뭘 좀 아시네. 그렇죠. 광고주가 우리의 주님이시죠."

 

 그는 다소 호들갑스럽게 감탄했다. 그 태도는 호의적이었지만, 동시에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는 한 번 더 술잔을 들고, 

 

 "쨘 해요."

 

 하고 제안했다. 술을 좀 급하게 마시는 듯 했다. 나는 한 번 더 술잔을 들어 그와 건배했다. 그는 이번에도 술을 단숨에 들이키고, 

 

 "아, 취한다."

 

 하더니,

 

 "잠깐 옆에 와 앉아볼래요?"

 

 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한 번만."

 

 "싫어요."

 

 "......"

 

 그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표정을 보고, 또 눈만 꿈뻑거렸다. 나는 술로 입술을 축였다. 그가 술잔을 든 내 손을 보더니 말했다.

 

 "와. 근데 손이 왜 이렇게 예뻐?"

 

 "......"

 

 "잠깐, 손 좀 줘 볼래요?"

 

 어지간히 치근덕댄다. 하지만 나는 계속된 거절을 하자니 그것도 계면쩍어서 그만 손을 주고 말았다. 그는 내 손을 잡더니, 

 

 "와, 부드럽다."

 

 하고 중얼거렸다. 나는 살며시 손을 빼고, 내 손을 눈 앞까지 들어, 바라보았다.

 

 손가락 사이로, 그의 표정이 얼핏 눈에 들어왔다. 

 

 "그럼, 저는 이만."

 

 하고 나는 일어났다. 그는 "예에, 알겠어요." 하고 소파에 몸을 푹 기대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코를 한 번 씰룩한 다음, 주인에게로 돌아왔다. 

 

 "왜, 그냥 왔어요?"

 

 하고 주인은 나에게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재미없어서요."

 

 "흠."

 

 주인은 다소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 러버 쪽을 흘깃 쳐다보았다. 나는 그런 주인을 바라보며 요청했다.

 

 "보드카 있죠?"

 

 주인은, 이 사람이 왜 이러나 싶은 눈빛으로 나를 보며, 보드카를 내주었다. 나는 얼음이 담긴 컵에 보드카를 가득 따라 희석시킨다음, 들이켰다. 

 

 취기가 바로 알싸히 올라왔다. 나는 한 잔 더 들이켰다. 주인이 그런 나를 보며 물었다.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아무 일 없어요."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몽롱한 정신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내가 '이름'이 없다고 했을 때, 순간적이지만 실망한 기색. 그것은 내가 '초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겠지. 그 라이터에 적혀 있던 룸살롱 전화번호, 그 룸살롱은 수위가 쎄기로 악명 높은 곳이고, 내가 그와 잡은 손을 빼내었을 때, 대놓고 찌푸려지던 인상. 

 

 나는 보드카를 한 잔 더 들이켰다.

 

 취하고 싶은 밤이었다.

 

 

 

 

 - <크로스드레서 (The Crossdresser)> 완결. -

 

 

 

 

 --

 <크로스드레서> 1부는 이렇게 완결됩니다.

 <크로스드레서> 2부에서는, 주인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바의 문을 닫고, 

 다른 시디 바에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마치 <상록수>에서 채영신이 부녀자 모임을 조직했던 것처럼,

 우리의 주인공도 성소수자 모임을 꾸리려 하지만, 뜻하지 않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는데...

 

 <크로스드레서> 2부는 일간 휴식을 가진 후에 찾아뵙겠습니다 ㅎㅎ 

 그동안 <마피아 게임>을 즐겁게 즐겨주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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