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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화 -

 

 

 

 - 첫 배달을 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캔커피를 마시며 담배 한 대 피우고 있는데 핸드폰 알람이 띠링, 하고 울렸습니다.

 

 [배달 1건을 수락해주세요]

 

 수락 안 할 수도 없습니다. 이른바 ‘수락율’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수락을 하지 않는 비율이 늘어나면 배달에 제한이 걸리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왠지 거절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네가 감히 ’거절‘을 해?’라는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리는 듯 했거든요. 저는 수락 버튼을 클릭했습니다. 그러자 음식을 픽업할 가게를 어플 자체에 있는 내비게이션에서 표시해주었습니다.

 

 [OO샌드위치 – 1.2km]

 

 저는 담배를 황급히 비벼끄고, 빈 커피캔을 벤치 위에 살포시 올려놓고, 부랴부랴 자전거에 올랐습니다. 괜히 긴장되더군요. 마치 지각하면 실컷 혼나는 학생처럼요. 자전거를 출발시키려다가, 저는 문득 방향이 헷갈렸습니다. 그래서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꺼내 지도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 짧은 사이, 내비게이션이 빙글 돌았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아직 시험 버전이라고 했던 게 교육받을 때 생각났습니다. 내비게이션은 방향을 표시하며 동서남북을 자꾸 회전시켰습니다. 덕분에 저는 더 헷갈리게 되었습니다. 초조함은 더 심해졌죠. 저는 주변 건물을 살펴서, 겨우 방향을 잡고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한여름, 언덕을 오르는데 땀이 비질비질 났습니다. 하지만 언덕을 다 오르고 내려오는 길에는 상쾌한 바람이 티셔츠 안으로 파고들었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1.2km를 달려 OO샌드위치에 도착했습니다.

 

 음식을 픽업해서 가방에 넣고, 배달 목적지를 확인하니, 아뿔싸, 무려 4km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저는 다시 빙글빙글 회전하는 내비게이션으로 가까스로 방향을 잡은 다음, 달렸습니다.

 

 빨리, 빨리 가야 해...

 

 ‘빨리’ 해야 한다는 강박이 이상하게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빨라야 산다’ 이것은 군대에서 많이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전쟁에 임하는 군인은 적보다 빨라야 살 수 있습니다. 맞는 말이지만... 그런 명목으로, ‘군기’를 잡는데도 사용되니까 말이죠.

 

 빨리 공부해. 빨리 취직해. 빨리 결혼해. 빨리 성공해. 빨리 애 낳아.

 

 숨을 거칠게 휘몰아 쉬었지만, 페달 밟기를 멈출 수 없었습니다. 뜨거운 햇볕을 이마로 받고, 굵은 땀방울이 눈썹 옆으로 뚝뚝 흘러내렸습니다. 하지만 빨라야 산다... 이윽고 목표했던 어느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 저는 전신이 저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빨리 안 갖다 줬다고 뭐라 하는 거 아닐까? 내 딴엔 열심히 노력했는데...

 

 저는 그런 생각을 하며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어느 여학생이 벌컥 문을 열었습니다. 여학생은 땀범벅이 된 저를 보고 다소 놀란 눈치였습니다. 그는 “고맙습니다!” 하고 밝고 따스하게 말하며 음식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걱정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파트를 나와서, 땀을 식히고 있는데, 두 번째 알람이 울렸습니다.

 

 그리고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자전거를 출발시켰습니다. 빗줄기는 금방 굵어졌습니다. 이럴 땐 어떡해야 하지? 아, 맞다, 우비를 입어야 하는구나. 그런 간명한 사실을 저는 이런 상황에서야 깨달았습니다. 생각해보니, 배달 노동자들이 비가 오는 날에는 우비를 입고 배달하는 것 같았어. 이렇게 닥쳐야 깨닫는구나.

 

 우비가 없는 저는 그냥 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가게에 도착해서, 음식을 픽업하고, 이번엔 5km 떨어진 목적지, 어느 빌딩으로 향했습니다. 비는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빨리’라는 망령이 저를 휘감았습니다.

 

 내리막길, 저는 미끄러졌습니다.

 

 우당탕, 하는 소리를 내며 자전거가 저만치 나뒹굴고, 저는 팔꿈치가 까진 것 같은 아픔을 느꼈습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헬멧도 없는 저한테는 위험천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헬멧을 살 돈이 없어서 안 샀거든요. 설마 무슨 일이라도 있을까 싶었던 거지요. 뒤쪽에서 어느 행인이 ‘저런...!’ 하고 놀라다가 제가 크게 다치진 않은 것을 보고 ‘조심해요.’ 하고 지나갔습니다.

 

 그 두 번째 배달은, 그래서 꽤 오래 걸렸습니다. 저는 울면서 자전거를 몰았고, 많이 식어버린 햄버거를 들고 빌딩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홀딱 젖은 채 울상인 제 모습을 보이자니 부끄러워서 미칠 것 같았습니다. 저는 얼른 마음을 진정시키고 눈물을 닦고, 고객을 만나 햄버거를 전달했습니다.

 

 ‘어머, 우산 없으세요?’

 

 고객이 햄버거를 받으며 저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녀는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고는 사무실에서 우산을 하나 가지고 나왔습니다. ‘남는 거예요. 드릴게요.’

 

 ‘고맙습니다.’

 

  사람들, 개개로 놓고 보면 참 착한데. 왜 우리네 사는 세상은 이렇게 힘들고 고된 것일까요? 저는 그런 생각을 하며 빌딩을 나왔고, 어느 으슥한 곳에서 그제야 담배 한 대를 다시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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