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크로스드레서

 

- 편의점 알바의 단상 -

 

 

 

 나는 하품을 하며 시계를 바라보았다. 퇴근까지 세 시간 남았다. 나는 기지개를 한 번 켜고, 읽던 책을 덮었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이 울리는, 적적한 편의점 내부... 나는 내부의 정경을 휙 둘러보았다.

 

 편의점에서 일할 때 가장 곤혹스러운 순간을 꼽는다면, 나는 손님을 응대하는 일에 대해 말하고 싶다. 밤을 새울 때의 피로나, 물건을 검수하고 진열하는 일이나, 담배 시재를 점검하는 귀찮은 일 등은 그래도 견딜 만 하다. 문제는 손님과 돈이나 카드를 주고 받는 그 짧은 순간이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정중하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순간들도 더러 있는데, 내가 카드를 다시 건네줄 때, 약간 낚아채듯이 가져가는 그 미묘한 순간이 있다. 무시당하는 느낌도 들고 처음엔 이게 은근히 기분이 나빴다. 그런 순간, 그런 이들을 이해하게 된 것은 시간이 꽤 흐른 후의 일이다.

 

 그들에게,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는 일은, 무척 사소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우리 머릿속은 항상 복잡하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 미워하는 사람에 대한 분노, 시기, 질투, 앞으로의 계획 등으로 항상 바쁘고 정신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여기'를 살지 못하게 된다. 어느 순간, 그저 하나의 '기계'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 '지금, 여기'를 살지 못한다.

 

 놀이 문화가 전무하다시피 한 대한민국에서, 사람들이 '지금, 여기'를 살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게임'이고, 다른 하나는, '섹스'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섹스 공화국'이 된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섹스는 '지금, 여기'를 살게 해 주는 강력한 도구다.

 

 문제는...

 

 '낮져밤이라고, 다 좋다 이거야. 그런데 꼭 그렇게까지 해야 돼?'

 

 '......'

 

 '너무 수치스러워...'

 

 나는 내 성소수자 친구가 얼마 전 나에게 했던 하소연을 떠올렸다. 그녀는 남자 친구와 헤어질 결심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그녀의 말을 들어 줄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 섹스 공화국에서, 가장 크게 피해를 입는 자가 누구냐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섬뜩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입술을 깨물고, 나는 다시 시계를 바라보았다.

 

 퇴근까지 두 시간 남겨놓고 있었다.  

 

 

 

 

 

반응형

'짧은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전거 배달 - 1화  (0) 2020.07.09
크로스드레서 - 8화 (완결)  (0) 2020.03.25
크로스드레서 - 7화  (0) 2020.03.18
크로스드레서 - 6화  (0) 2020.03.11
크로스드레서 - 5화  (0) 2020.02.2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