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 5화 -

 

 

 

 우리는 앉은 자리에서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는 주인과 민정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 주인의 친모는 미혼모였다. 주인은 아기였을 때 어느 유복한 가정에 입양되었다. 양부모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고, 주인을 사랑으로 키웠다. 하지만 주인은 12세가 됐을 무렵,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보통 그 나이무렵에 성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고 하던데..."

 

 내가 말했고 주인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부모님은 저를 사랑했고, 저도 부모님을 사랑했어요. 아버지는 남자다운 분이었고, 어머니는 천상 여자같은 분이었지요. 나는 두 분을 사랑했어요."

 

 성인이 되어, 자신의 성 정체성 고백을 들은 양부모는 주인을 지지해 주고, 얼마간의 돈을 융통해 주인이 바(bar)를 차릴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이때 주인은 많은 책을 읽었다. 우리나라와 서양의 역사에 대해. 그리고 복식(服飾)의 역사에 대해. 

 

 "그런데 지금보다도 훨씬 예전에 그렇게 인정해 주시는 게 대단하네요."

 

 내가 감탄했고, 주인은 싱긋 웃으며,

 

 "성 소수자는 언제 어디서나 있었어요. 그리고 부모님의 사랑은 때때로 모든 걸 초월해요. 특히 어머니의 사랑은."

 

 나는 눈을 두어번 깜빡거렸다. 눈물이 나서 그런 건 아니다. 옆을 보니 민정이 훌쩍훌쩍하고 있었다. 

 

 "할머니 보고 싶어..."

 

 민정은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조손 가족에서의 손녀는, 조부모로부터 받는 가르침도 많지만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다는 단점도 있다. 민정은 할머니를 사랑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받는 놀림은 때로 큰 상처가 된다.

 

 "학예회를 하는데 부모님은 못 오시고 할머니만 오셨어요. 그게 어찌나 창피하던지..."

 

 외로움과 결핍. 그것은 그녀로 하여금 애정을 갈구하게 만들었고, 여장에 몰두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사귄 첫 남자는 꽤 잘 생긴 청년이었다. 둘은 서로를 사랑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이번엔 내가 빨아줄게."

 

 야밤을 틈타 기어들어간 어느 모텔에서, 그는 민정에게 그렇게 말하고, 곧 오랄 섹스를 시작했다. 민정은 그 느낌이 싫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처음이라 아무 행동도 하지 못했다. 곧 남자는 시큰둥해져서,

 

 "야. 왜 그래?"

 

 "뭐가?"

 

 민정은 반문했다. 남자가 다시 물었다.

 

 "왜 신음 소리를 안 내?"

 

 "신음?"

 

 "내가 빨아주면 신음 소리를 내야 할 것 아냐."

 

 "...처음이라..."

 

 "아씨. 쪽팔려."

 

 "쪽팔려?"

 

 민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주섬주섬 옷을 입기 시작했다. 내가 쪽팔려? 개새끼... 그런데 남자가 민정의 뒤에서 갑자가 와락 껴안았다. "뭐야?" 민정이 물었지만, 남자는 다시 민정의 옷을 벗겼다. "싫어. 나는..." 민정은 그렇게 저항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거, 데이트 강간인데요."

 

 내가 끼어들었고, 민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데, 내가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어요..."

 

 하고 말꼬리를 흐렸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주인은 접시를 닦으며 민정을 가만 응시하고 있었다. 민정이 말을 이어갔다. 

 

 "그 후로 헤어졌어요. 정이 안 가더라고요."

 

 "지금은?"

 

 내가 물었지만, 민정은 핸드폰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바의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못내 아쉬워, 24시간 음식점에서 뼈다귀탕에 소주 한 잔 하자고 결의를 했다. 민정은 배시시 웃었고, 나도 웃었다. 나는 여장을 하고 거리를 나서는 게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동지'가 있으므로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 셋은 바를 나섰다. 

 

 "민정아..."

 

 문을 나섰는데, 한 청년이 숨을 헐떡이며 민정을 부르고 있었다. 이십 대 중반 쯤 됐을까? 약간 마른 체형에, 부스스한 머리카락, 뿔테 안경이 먼저 눈에 띄었다. 얼핏 평범해 보이지만, 나는 그 청년의 눈빛에서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느꼈다. 민정은 그 청년을 보고 놀란 눈치였다. 청년은 민정을 진중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민정의 눈에, 얼핏 눈물이 글썽였다. 

 

 둘은 그렇게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랑, 오, 사랑.

 

 

 

  

반응형

'짧은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크로스드레서 - 7화  (0) 2020.03.18
크로스드레서 - 6화  (0) 2020.03.11
크로스드레서 - 4화  (0) 2020.02.18
크로스드레서 - 3화  (0) 2020.02.12
크로스드레서 - 2화  (0) 2020.02.0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