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 1화 -

 

 

 

 그 곳에 가기 위해선, 약간의 술이 필요했다.

 

 바람이 쌀쌀한 초겨울, 나는 편의점 앞에서 맥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차가운 맥주가 목구멍을 지나 빈 속을 강타했고, 속에서 뜨거운 기운을 내뿜었다. 맨 정신으로는 갈 수 없었다. 평소에 나는 성소수자를 지지한다고 밝혔음에도, 내가 가지고 있는- 성소수자에 대한 이미지는 그런 것이었다.

 

 지금이라도 집에 돌아갈까?

 

 맥주 두 캔째를 마시고 나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냐고. 사람이 아무리 호기심의 동물이라지만, 이건 미친 짓이야. 맥주캔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으며, 나는 갈등했다. 취기가 올라왔다. 따뜻한 내 집 방바닥이 문득 그리웠다.

 

 하지만 내 발걸음은 기어이 나를 호기심의 영역으로 이끌었다.

 

 나는 어떤 낡은 건물의 지하 계단으로 향했다. 이 곳의 정체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이른바 음지(陰地)의 세계다. 물론 인터넷에서 조금만 검색하면 이 곳에 대한 정보가 나온다. 하지만 이런 곳을 검색하는 사람은 세상에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지하 1층으로 내려서자, 꽤 화려한 간판이 번쩍이는 업소가 눈에 띄었다. 나는 숨을 한 번 크게 쉬고, 문을 열었다.

 

 업소 안은 한적했다.

 

 약간 어두컴컴한 쪽에 있는 테이블에서는 두 명의 사람이 술을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얼핏 보아 한 사람은 러버(lover), 다른 한 사람은 씨디(CD, Crossdresser)임이 분명했다. 그 둘은 낯선 사람인 나를 흘깃 바라보았지만, 크게 개의치않는 기색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가장 조명이 눈부신 곳으로 걸어갔다. 혼자서 술을 마실 수 있는 바(bar) 형식으로 이루어진 테이블이었다.

 

 다소 나이가 있어보이는 스태프 한 분이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는 나를 향해 환대하는 몸짓을 보여 주었다.

 

 "어서 오세요. 여긴 어떻게 알고?"

 

 "안녕하세요.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알게 됐습니다."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님도 씨디?" 하고 물었다. 나는 주춤주춤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것 같아요." 하고 대답했다. 그는 또 웃었다. 사람 좋은 웃음이었다. 밖에서 서성이며 술기운의 힘을 빌리려던 내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가 물었다. "화장 해 줄까요?" 나는 대답했다. "네."

 

 "이만 원이예요."

 

 메이크업(make-up) 서비스는 유료였다. 만만치않은 거금이었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돌아가기도 뭐했다. 이 사람들은 이런 것이라도 있어야 먹고 산다. 계산을 하고 나서, 그는 나를 파우더룸으로 안내했다. 두 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었다. 그의 안내대로 옷을 갈아입고, 그를 부르니 그가 안으로 들어왔다.

 

 "화장은 많이 해 봤어요?"

 

 "아뇨. 잘 못 합니다."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그는 쭈글쭈글하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나에게 화장을 해 주었다. 로션과 스킨을 바르고,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팩트로 수분 기를 없애고, 눈화장을 하고, 입술에도 화장을 했다. 나는 입술 화장은 립스틱만 바르면 끝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생각보다 복잡했다. 인조 속눈썹도 이때 처음 붙여보았다. 가발망을 쓰고, 길고 웨이브진 가발을 썼다.

 

 "한 번 보세요."

 

 거울을 보니, 다소 생경한 내가 거울 속에서 쭈뼛쭈뼛 서 있었다. 이때의 감정은 뭐랄까...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풍문으로 들었던 것보다는 그저 그랬다.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면, 몇몇 시디들이 처음 업(dressed-up)을 하고 나서, 거울 속의 자기 자신에게 반했다느니, 그래서 셀카로 찍어 올릴 수 밖에 없었다는, 그런 설레임의 감정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눈에 붙인 속눈썹이 약간 거슬렸다. 여자들은 잘도 이런 걸 붙이고 다니는구나. 짧은 치마도, 브래지어도 낯선 느낌이었다. 이것들은 나에게 일종의 구속감을 선사했다. 특히 가슴이 다소 답답했는데, 그 느낌이 낯설고 좋으면서도, 여자들이 왜 브래지어 안 입기 운동을 하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바(bar)에 있는 의자에 앉을 때도 다리를 모으며 조심스럽게 앉을 수 밖에 없었다. 평소에는 여자들의 이런 행동거지가 예쁘다고만 생각했다.

 

 맥주 한 병을 주문하고, 담배 한 대를 물었다. 나에게 화장을 해 준 그 '씨디 선배'는 심심했는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왜 이런 데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이 질문은 내가 스스로에게 숱하게 물어 온 질문이었다. 그리고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이기도 했다. 나는 그냥 "호기심에서요." 라고 대답했다. 그는 맥주 한 병을 나에게 내어주고, 잔에 맥주를 따라줬다. 나는 맥주를 마시고, 그냥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기분이 이상하네요."

 

 그는 웃을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나는 조근조근 계속 지껄이게 되었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자꾸 이상한 생각을 하게 돼요. 야동에서 본 장면들을 자꾸 떠올리는..."

 

 그는 냉장고에서 자신의 술을 꺼내, 들이키고는,

 

 "그럴 수 있어요. 왜냐면, 우리가 가진 인식이 그렇거든."

 

 하고 대답했다.

 

 "인식?"

 

 "우리가 각종 영상물에서 본 인식. 여자에 대한 인식이 그래."

 

 "그게 뭐죠?"

 

 "'창녀'죠."

 

 "......"

 

 나는 입을 다물고,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생각해 볼만한 질문이었다. 그는 계속 말했다.

 

 "어떤 씨디들은 그래서, 정신을 못 차려요. 정신 못 차리고 몰두해. 본 게 많거든."

 

 "......"

 

 "하지만 그러면 안 돼. 그것은 자신을 망치는 길이예요. 그리고 우리 성소수자들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지는 일이기도 해."

 

 "......"

 

 "님 이름이 뭐예요?"

 

 "아, 네. 한지훈입니다."

 

 "크크, 아니, 본명 말고, 활동명."

 

 "...활동명은 딱히 없는데..."

 

 "응, 아직 없구나. 그래요. 님이 언제까지 활동을 할 지는 모르겠지만-"

 

 "네."

 

 "자신을, 잘 지켜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말을 마치고, 다시 술을 한 잔 들이켰다. 나는 그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문득 이 늙은 씨디가, 현자(賢者)처럼 보였다. 나는 다시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항상 명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크로스드레서 (The Crossdresser) - 1화

 2020. 01. 15.

 

 낮아짐 이야기제작소

 

 

 

 --

 재밌게 보셨다면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작은 후원은 큰 힘이 됩니다! :D

 낮아짐 이야기제작소 후원 계좌

 신한은행 110-482-020765 최종원

 

 

반응형

'짧은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크로스드레서 - 3화  (0) 2020.02.12
크로스드레서 - 2화  (0) 2020.02.05
뜨거운 밤은 계속된다 - 10화 (완결)  (0) 2019.03.21
뜨거운 밤은 계속된다 - 9화  (0) 2019.03.20
뜨거운 밤은 계속된다 - 8화  (0) 2019.03.1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