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크로스드레서

 

- 혁명을 꿈꾸는 크로스드레서 -

 

 

 

 돈이 없다.

 

 지금 있는 돈으로는, 지하철을 타고 이태원으로 가서 케밥 하나를 사 먹는 정도였다. 갈까, 말까. 나는 방에서 담배 한 대를 물고 막걸리 한 모금을 마시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잠시 후, 나는 화장대 앞에 앉았다.

 

 화장을 하고, '여자 옷'을 입고, 약간 낮은 굽의 하이힐을 신고 나는 길을 나섰다. 우이신설선 OO역까지 오 분 거리, 그 짧은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다. 마주치는 몇몇 이들이 가끔 힐끗힐끗 쳐다보긴 했지만 크게 신경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내 심장은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OO역에서 6호선으로 갈아타고, 이태원에 도착했다.

 

 평일 자정, 거리는 한산했다. 오늘의 '사냥감'을 노리는 외국인들이 가끔 삼삼오오 출몰했다. 그들에게 내 다리는 눈요기의 대상이었다. 일일이 신경쓸 필요는 없다. 이성의 '몸'에 끌리는 것은 남자나 여자나 똑같다. 다만 남자에게 그 욕망을 표현할 자유가 더 폭넓게 주어졌을 뿐이다.

 

 어느 케밥 집에 들어갔다. 육천 오백원짜리 케밥을 쥐어받고 자리에 앉으려는데, 터키인 점장이 제지한다. 코로나 때문에 자리에서 취식할 수 없습니다. 아, 그래요. 어쩐지 손님이 없더라. 나는 케밥을 들고 나와서, 편의점에 들러 맥주 한 캔을 사고, 거리로 나섰다.

 

 트랜스젠더(TG), 또는 크로스드레서(CD)들이 '알바'를 하기 위해 앉아 있곤 하는 골목 한 구석에, 나는 어느 낮은 시멘트담 위에 걸터앉아 케밥을 먹기 시작했다. 외국인들이 지나갔다. 그 중 하나는 어느 여인과 눈이 맞았다. 둘은 잠시 흥정을 하는 것 같더니, 바로 앞의 모텔로 들어갔다. 저게 그녀들의 '알바'다. 그녀들은 생활비나 수술비를 벌어야 한다. 그녀들을 탓할 수 있을까. 그녀들이 '건전한' 일을 하고 싶다고 해도, 그녀들을 채용하는 곳이 얼마나 되겠는가.

 

 "You alone?"     

 

 내가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어느 외국인이 말을 걸어왔다. 웃긴 놈이었다. 나는 단박에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팔뚝에 미국 국기가 그려져 있는 문신을 하고 있었다. 그래, Make america great again 해라. 그는 내 옆의 조그만 커브에 앉은 후,

 

 "You want sex?"

 

 하고 물었다. 나는 실소했다. 직접적인 놈이네.

 

 "Nope."

 

 "So, why you sitting here?"

 

 "Just to drink beer."

 

 그는 내 대답을 듣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자리를 떴다. 웃긴 놈이었다. 세상에 어느 남자가 여자에게 직접적으로, 그것도 초면에, '너 섹스할래?' 하고 묻는단 말인가. 하지만 여장의 세계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난 어느 씨디(CD)가 여장을 하는 이유에 대해 그렇게 말한 걸 들은 적이 있다.

 

 "섹스를 마음껏 할 수 있잖아."

 

 당시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물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행복했어?"

 

 행복해지려고 섹스하는 거 아냐? 아닌가, 우리 사는 세계는, 섹스하기 위해 행복해지는 건가? 행복을 과시하고, 행복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행여 맛있는 음식이라도 대면하면 사진 찍어 놓아야 하고, 사진 찍을 때는 웃어야 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머리가 굵어지기 시작한 중학생 시절, 영어사전에서 'sex'라는 단어를 찾아보며 가슴이 콩닥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가슴이 콩닥거리던 만큼, 그 당시 우리에게 '여성'이란 존재는, 신성한 존재였다. 우리는 그녀들의 손도 잡을 수 없었다. 그저 호기심으로 일렁일 뿐, 그녀들은 우리가 절대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였다.

 

 지금은 어떠냐고? <구운몽>에 등장하는 팔선녀(八仙女)들은 지금으로 따지면 걸그룹 하나 수준이다. 인터넷 세상만 열면 예쁜 여인들이 도처에 널렸다. 대한민국의 세계 제일 성형의학은 이제는 아예 미녀들을 '양산'했다. 성형을 말리지 않는다. 당신의 퀄리티 오브 라이프(Quality of life)를 증진시킬 수 있다면, 성형하라. 다만 성형 중독에 빠지는 이들을 간접적으로 많이 접했다. 성형으로만 해답을 찾으려는 이들은 절대 성형으로 만족 못한다.

 

 생각이 번지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다음, 케밥을 마저 다 먹고 자리를 옮겼다.

 

 미군용품을 파는(?) 어느 가게 옆의 벤치에 앉았다. 그곳에서 맥주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새벽 세시, 차가운 바람이 몸을 덮쳐왔다. 이제 가을이다. 발 밑에서 낙엽이 나뒹군다. 상점 주인이 문을 닫기 위해 나왔다. 그는 African-american, 소위 '흑인'이었다. 그는 나를 흘깃 보았다. 나도 그를 흘깃 보았다. 그는 묵묵히 상점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골목을 터덜터덜 걸어나갔다.

 

 성실해보이는 사람이었다.

 

 "Hey."

 

 내가 빈 맥주캔을 들고 아쉬워하고 있을 때, 이번엔 또다른 외국인이 말을 걸어왔다. 번들번들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그는 나에게,

 

 "What are you doing? Waiting someone?"

 

 하고 물었다. '젠틀'한 물음이었다. 나는 대답했다.

 

 "Drinking beer."

 

 "Oh, good."

 

 하고는, 그는 뭐라 씨부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내가 영어가 짧기도 하지만, 이건 미국식 사투리 같기도 하고... 답답해진 나는,

 

 "Can you speak Korean?"

 

 하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No."

 

 한국에 살면 한국어를 좀 배워, 이 씹새야. 술이 얼근하게 취한 나는 속말을 마구 했다. 그런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Go with me to my house, to drink together."

 

 하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No, I don't want."

 

 그는 입맛을 쩝쩝 다시더니 곧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더욱 짜증이 났다. 이태원은 성소수자의 도시, 하지만 그게 '안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는 치마자락을 애써 끌어내렸다. 그리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어느 밴드의 음악을 들었다.

 

 조금 걷기로 했다.

 

 이태원역과 삼각지역의 중간에 공용 화장실이 하나 있다. 맥주를 마셨으니 그곳에서 일을 볼 참이었다. 사람이 없고 한적한 화장실이라 비교적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섬뜩해진 나는 이어폰을 빼고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 건장한 남자가 내 뒤에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놈을 노려보았다. 놈은 내 시선을 받고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뒤돌아 도망치듯 걸어갔다. 질려버린 나는, 화장실도 안 가고 바로 택시를 잡았다. 집에 갈 생각이었다.

 

 "OO동으로 가주세요."

 

 택시 기사한테 그렇게 말하고, 나는 시트에 몸을 파묻었다. 문득, 나는 왜 종종 여장을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작가의 말대로, '성적 매력'이란 타인에 대한 일종의 존중이다. 우리가 소개팅 자리에 츄리닝을 입고 나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다. 잘 차려입는 것은 상대를 존중한다는 의사다. 다만-

 

 우리는 '존중'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존중받을 자격이 마땅치 않은 이에게도, 애교와 아부를 떨어야 한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가로등과 상점의 미세한 불빛들이 휙휙 지나갔다. 그러다가 문득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얼마 전, 택시 기사들 몇몇이 담합하여 미성년자를 성폭행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런 사건이 문득 생각나자, 나는 이제 이 택시기사가 괜시리 무서워졌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백미러에 비치는 기사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는 말이 없었다.

 

 "도착했습니다. 손님."

 

 OO동에 도착해서, 그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카드를 내밀었다. 얼른 내릴 참이었다. 계산이 끝나고, 그는 나에게 카드를 다시 돌려주며,

 

 "조심히 들어가세요."

 

 나는 멈칫했다.

 

 잠시 후,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택시에서 내렸다. 택시는 부릉, 하고 떠났다. 택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였다.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며, 이 신새벽, 나는 내가 이 어두운 골목을 밤고양이처럼 활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차갑고 부드러운 바람이 치마 밑으로 기어들어와 내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그 부드러운 애무에 나는 해방감을 느꼈다. 황홀한 순간이었다. 지금 이 순간, 기도가 절로 터져나올 정도로-

 

 세상의 모든 약자와 아픈 이들과 외로운 이들에게 행복을.

 

 

 

 

 

 

 

 

 --

 

 

 

   

 

반응형

'짧은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민지에게 - 여섯 번째 편지  (0) 2022.03.14
자전거 배달 - 평범함에 대하여  (0) 2020.10.09
자전거 배달 - 10화 (완결)  (0) 2020.09.27
자전거 배달 - 9화  (0) 2020.09.01
자전거 배달 - 8화  (0) 2020.08.2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