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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배달

 

- 평범함에 대하여 -

 

 

 

 선생님, 문득 생각이 나 편지를 씁니다.

 

 저의 이십 대에 대하여, 그 유예된 사춘기에 대하여 가끔 돌아보곤 합니다. 저는 언제나 사람들의 관심을 갈구했습니다. 친구들의 관심을, 선후배들의 관심을, 좋아하는 여학생한테 관심과 애정을 갈구했습니다. 제가 연극을 시작한 이유도 순전히 관심을 받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었습니다. 

 

 우당탕탕 첫 공연을 마친 후, 저는 관객들의 환호를 받으며 들떠 있었습니다. 아, 이제 나도 꽃길만 걷겠구나. 나는 남들과 다르구나. 그런 우쭐한 마음은 대학 생활 내내 저를 지배했습니다. 저는 '겸손'이란 걸 몰랐습니다. 툭하면 후배들을 가르치려 들었고, 거드름을 피우곤 했습니다. 

 

 약 여섯 해 동안의 극단 생활을 마친 후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저는 이제 배우보다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이 더 굳어졌습니다. 글을 쓰고 발표한다는 것은 타인의 관심을 유도하는 일입니다. 글쓰기 훈련을 통해 저는 저의 사심(私心)이 글에 배이지 않게 애썼지만, 글을 발표한 후에 우쭐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만약 신(神)이 있다면, 그는 공평합니다. 

 

 내가 작간데, 하는 우쭐한 마음은 억지로 통제되었습니다. 저는 자전거 배달을 하며 겸손을 체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뛰어난 인격을 가지고 있어서 겸손을 배운 게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자전거 배달이 저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준 것입니다. 신은 공평합니다. 

 

 어느날이었습니다.

 

 배달 음식이 면류이면, 마음이 조금 더 급해집니다. 국수나 짜장면 등은 쉽게 불잖아요. 괜히 고객한테 싫은 소리 듣고 싶지 않아서 조금 더 서두르게 됩니다. 물론 안전하게 운행해야 하지만, 조급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국수 한 개와 우동 한 개를 싣고 자전거를 탔는데 동선이 한 재래시장을 관통해야 했습니다. 

 

 저는 자전거를 끌고 사람들 사이를 힘겹게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조급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러다가 면이 불면 어떡하지, 괜히 조바심이 나면서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앞쪽에 휠체어를 이끌고 가는 장애인이 있었습니다. 

 

 휠체어의 속도는 느렸습니다. 게다가 좌우의 좌판 사이의 좁은 길목, 저는 자전거를 멈췄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가 완전히 지나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건, 복장이 터지는 일입니다. 그가 지나간 후, 제가 자전거로 그를 추월하기까지의 그 짧은 순간이 무척 길게 느껴지고 식은땀이 다 났습니다. 저는 약간 짜증스런 기색으로 그를 돌아보았습니다. 마침 그도 저를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는 담담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미안해요.'

 

 그가 말했습니다. 저는 움찔한 다음, 표정을 풀고,

 

 '괜찮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리도 다시 페달을 밟았습니다.

 

 면이 불었을까요? 아뇨, 안 불고 무사히 배달 완료했습니다. 그 길게만 느껴졌던 순간은 사실 몇 초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때 제가 품었던- '비정상을 향한 증오'가 문득 부끄럽게만 느껴졌습니다. 

 

 선생님, '장애인과 정상인'으로 부르지 말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불러야 한다고 합니다. 백 번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속도 빠른 세상에서, 빠름과 바쁨이 미덕인 세상에서, 장애인은 절대 '정상' 취급을 받지 않습니다. 즉, 평범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그들을 열등한 존재로 만듭니다. 그들은 생산 사회에서 낙오자 취급을 받습니다. 평소에 약자를 위한다고 생각했던 저조차도 저의 저급한 일면을 보았으니까요. 

 

 그 짧았던 순간은 저에게 또 하나의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어느 래퍼의 가사처럼, '우주는 크고 나는 X밥'입니다. 예술의 답은 번쩍번쩍하고 화려한 빈 껍데기 상류 사회에 있지 않습니다. 어느 시인의 시처럼 '껍데기는 가'야 합니다. 답은 하류에 있습니다. 답은 하방입니다.

 

 저는 오늘도 자전거를 끌고 나섭니다. 내가 작간데, 하는 마음을 품게 하는 이 악마와의 치열한 전투가 오늘도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전투의 전리품은 '평범함'이 주는 즐거움입니다. 

 

 저와 그 장애인이 평범함을 누리는, 그런 세계에서 살길 원합니다.

 

 선생님, 다소 두서없는 편지 죄송합니다. 하해와 같은 요량으로 읽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

 자전거 배달 번외편 : 평범함에 대하여 - 완결 

 2020. 10. 09.

 

 낮아짐 이야기제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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