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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화 -

 

 

 

- 그녀가 한 말이 오묘하군.

 

- ‘진통제’와 관련된 말 말입니까?

 

- 그렇네. 확실히 진통제가 필요할 때도 있지만, 그것은 병의 뿌리를 건드리고 나서야 그 의미가 있는 것이지. 환부(患部)를 건드리지 않은 채 진통제만 투여하는 건 별반 의미없는 짓이지 않나.

 

- 그렇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그녀는 딱히 병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저번의 ‘치아’ 사건과 관련하여 진통제를 먹는 것 같은데... 하지만 그녀의 딸이 그녀는 ‘종종’ 아프다고 했습니다.

 

- ...그녀는 지속적으로 학대를 당하고 있는 것 같군. 치아 사건은 그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게지.

 

- ......

 

- 성학대, 동시에 성착취군.

 

- 하지만 어디 호소할 데도 마땅치 않습니다, 그녀는 윤락 여성이니까요. 어디 가서 윤락 여성이 ‘나 성폭력 당하고 있어요.’ 라고 말하면 진지하게 들어줄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 그렇네. 그래서 그녀의 말이 더욱 오묘하군. 진통제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근원적인 치료는 그녀에게 무엇인가. 페미니즘인가?

 

- 페미니즘도 여러 계파가 있습니다. 여러 쟁점이 있지만, 성매매에 관한 입장차에 따라 갈리기도 하더군요.

 

- 그렇군... 그러면 페미니즘이 아니라 – 물론 페미니즘을 인정하지만 – 다른 곳에서 원인을 찾는다면?

 

- 이를테면?

 

- 나는 언젠가 자네의 메신저 대화명을 본 적이 있네. ...‘예술은 어떻게 사람을 살리는가.’ 맞지?

 

- 맞습니다.

 

- 그것은 일종의 의학적(醫學的) 접근이네. 정신건강의학인 셈이지.

 

-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자네는 자존심이 강하니, 진통제 같은 글은 쓰지 않을 걸세. 아주 뛰어난 외과의가 환자의 병변 부위에 날카로운 메스를 가하듯, 그런 글을 쓰겠지.

 

- 네... <목민심서(牧民心書)>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좋은 제목으로 글을 잘 짓는 것은 칭찬할 일이 못되며, 반드시 어려운 제목으로 훌륭한 글을 지어, 대단한 파란을 일으키고 찬란히 빛나며 쇳소리나 옥(玉)소리를 표현할 정도여야 한다.’ 항상 명심하기 위해 외우고 다닙니다.

 

- 훌륭하군. 그렇다면 자네가 파악하는 이 사회의 병의 근원은 무엇인가? 약탈적 자본주의 체제인가, 아니면 분단 모순인가?

 

- 물론 둘 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하지만 저는 ‘약탈적 자본주의 혁파하자!’, ‘분단 모순 극복하자!’ 라고 외치고 싶지 않습니다. 그 말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힘겹게 사는 이들에게 확 와닿는 전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그렇다면?

 

- 자본주의와 분단 모순의 가장 큰 폐해는, 사람들의 자존감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인민(人民)이 스스로를 존귀한 존재로 인식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그녀도 자신을 존귀하게 여긴다면, 자신을 그렇게 착취당하도록 내버려 두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 왜 인민의 자존감이 떨어지는가?

 

- 서로가 서로를 비교합니다, 쟤는 1등인데 나는 2등이야. 쟤는 저렇게 화려한데 나는 보잘 것 없어. 쟤는 돈이 많은데 나는 돈이 없어. 쟤는 외제차 타고 다니는데 나는 늘 지하철이야. 여자들도 돈 많은 남자들만 좋아하고, 나 같은 게 연애나 할 수 있을까?

 

- 누구는 건물주인데 나는 임대료 내기도 바빠.

 

- 건물주는 계속 건물을 사고 계속 자산을 증식시킵니다. 일 안 해도요.

 

- 그걸 규제하지 않는 정부, 그들은 결국 분단 모순을 이용하여 그 자리까지 올라간 셈이지. 강대국의 눈치를 보는 정부이지 않나.

 

- 그러니 사람들의 자존감이 날로 떨어져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녀는 죽음을 맞이하고요.

 

- ...그녀가, 죽었나?

 

- 예. 그래서 제가 이 이야기를 꺼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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