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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화 -

 (완결)

 

 

 

- 하늘이 어둑어둑한 날이었습니다.

 

태풍이 다가오고 있다는 재난 문자가 시종 핸드폰을 울렸습니다. 오늘은 쉴까, 하다가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자전거를 끌고 나온 저는, 이제 돌아갈까 고민했습니다.

 

[배달 1건을 수락해주세요.]

 

그때 콜이 들어왔습니다. 음식을 픽업하는 가게도, 배달 목적지도 가까운 거리... 저는 수락 버튼을 누르고 가게로 향했습니다.

 

배달 목적지는 ‘매일네일’이라는 이름의 네일샵이었습니다. 그때까지도 아무 생각 없었습니다. 흠, 나도 나중에 손톱 정리나 좀 받아볼까, 하는 생각이었지요.

 

네일샵에 도착해서 음식을 건네주고, 돌아서려 하는데, 등 뒤로 직원들끼리 대화하는 소리를 우연히 들었습니다.

 

‘이야기 들었어? 우리 단골로 오는 화류계 아가씨 하나 있잖아. 죽었대.’

 

‘어머, 그 애 딸린 미혼모?’

 

‘그래. 어떤 진상이 존나 괴롭혔대.’

 

‘어머, 어머, 별일이야.’

 

‘그러니까 왜 몸 파는 일을 하는지.’

 

‘하여튼 돈 많은 새끼들 다 고추를 잘라-’

 

‘쉿. 조용히 해.’

 

저는 그들이 저를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제가 바로 안 나가고 등진 채 서 있었거든요.

 

‘고생하세요.’

 

저는 그렇게 인사하고 문을 나섰습니다. 물론 그들이 이야기하는 ‘화류계 아가씨’가 꼭 그녀라는 단정은 없었지만, 저는 직감적으로 그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운행을 종료하시겠습니까? - 예.]

 

저는 배달 일을 종료하고, 하릴없이 담배를 한 대 물었습니다. 어디로 가지? 하늘이 더욱 어둑해졌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까? 바람이 세차게 불었습니다. 그 공원에 가야 할까? 거기에 가면 그녀가 있을까? 아이와 손잡고 핫도그를 먹고 있을까?

 

자전거를 끌고 터덜터덜 걷다보니 어느새, 그녀가 있던 가게에 도착했습니다.

 

그 으슥한 뒷골목에서, 다시 담배를 한 대 물었습니다. 한 번 빨고, 한 번 뱉고, 저는 담벼락에 기대섰다가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저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핸드폰을 들어 경찰서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예, 강섬파출소입니다. 아, 예, 수고하십니다. 저, 제가 아는 여자가... 예? 아, 그, 강섬역 근처에 ‘OO룸살롱’에서 사람이 죽은 것 같은데요. 아, 지금 현장을 목격하셨나요?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저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담배를 끄고, 꽁초를 그 가게 뒷문쪽으로 던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자전거를 끌고 터덜터덜 걸어, 그 골목을 빠져나왔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거리’로 들어섰습니다.

 

누군가는 절룩이며 걷고, 누군가는 짐짓 씩씩하게 걷고, 누군가는 조신하게 걷고, 누군가는 사람들을 계속 의식하며 걷고, 누군가는 휠체어를 끌고, 엄마 손 잡고 재잘재잘 떠들며 걷는 아이들과, 까르륵 웃는 교복 입은 학생들과, 전단지를 나누어주는 아주머니와, 계속 외치는 나레이터 모델과, 줄지어 늘어서 있는 노점상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엄마의 손을 잡은 아이 하나가 저를 올려다보았습니다.

 

‘엄마. 이 아저씨. 그 동물 나오는 이야기 아저씨 아냐?’

 

‘가자.’

 

엄마는 아이를 재빨리 잡아끌었습니다. 바람이 점점 세게 불고, 곧 비가 한 두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게 되었습니다.

 

‘아저씨-!’

 

저는 고개를 들었습니다. 벌써 저만치 걸어간 방금의 그 아이였습니다. 아이가 외쳤습니다.

 

‘아저씨, 앞으로도 재밌는 이야기 많이 해주세요!’

 

엄마는 아이를 다시 한 번 잡아끌었습니다. 저는 아이를 향해 엷게 웃었습니다.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한 번 더 엷게 웃었습니다.

 

선생님, 오늘 대화 즐거웠습니다.

 

저의 노동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지만, 그리고 앞으로도 별의별 일을 다 마주하겠지만, 그래도 편안한 집에만 틀어박혀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불 밖은 위험해도’ 이불 밖으로 나가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야 저의 글쓰기도 계속되겠지요.

 

저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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