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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날 물건 삽니다 -

 

 

 

 몇 주 전이었다. 우리 동네에 그 가게가 들어온 건.

 

 원래 그 가게가 있던 자리에는 수제 담배 가게가 있었다. 수제 담배는 담뱃세가 붙지 않아서 한 갑에 이천 오백원에 판매했다. 수제 담배에 대해 여러 안 좋은 이미지들이 머릿속에 박혀 있었지만, 가난했던 나에게 그 저렴한 가격은 뿌리칠 수 없는 매력이었다.

 

 홀로 가게를 지키며 담배를 말고 있던 그 가게 주인은, 혁명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 보루 샀다. 괜찮았다. 맛이 더 부드러운 것 같았다. 계속 이용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불과 얼마 후, 그 가게의 주인은, 사라졌다. 허름한 간판과 여러 흔적만이 옛 망명 정부의 흔적처럼 남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 좌판을 깔고 나타난 가게가 있었다

 

 - 옛날 물건 삽니다 : 골동품, 전자 기기, 카메라, 카세트 테이프, 씨디...

 

 옛날 물건? 항상 돈이 궁했던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옛날 물건이 무엇무엇이 있나 생각해보았다. 나는 몇 개 가지고 있는 CD가 있어서,

 

 "CD 몇 개 있는데..."

 

 하고 운을 띄워 보았다. 그러자 가게 주인은 초장부터 우렁찬 목소리로,

 

 ", , 뭐 있는데요?"

 

 하고, 약간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그의 머리는 마구 헝클어져 있고, 커다란 덩치에 걸맞지 않게 다소 어린애 같은 느낌을 주었다. 목소리는 엄청 우렁차서 약간 기가 질릴 정도였다. 나는 표정을 변하지 않으려 애쓰며 대답했다.

 

 "린킨 파크(Linkin Park), 크리드(Creed)..."

 

 "팝송은 안 돼요!"

 

 그는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팝송? 아마 외국곡을 모두 팝송으로 통칭하는 모양이었다.

 

 "그럼 뭐 돼요?"

 

 ", 신승훈, 김건모, 김광석, 아니면... 서태지!"

 

 마침 가게 안 쪽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추억이다. 나도 초등학생 시절에 서태지의 광팬이었더랬다. 뭐가 그리 좋았을까?

 

 "서태지도 있어요."

 

 나는 대답했다. 그러자 그가, 역시 약간 기가 질릴 정도로, 다급하게 물었다.

 

 "몇 집?"

 

 "몇 집이었지... <울트라맨이야> 실려 있는 거."

 

 ". , 그건 안 돼요."

 

 "왜 안 돼요?"

 

 "서태지는 초창기 시절이 짱이야."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왜죠?"

 

 "왜, 왜긴. 아저씨도 알잖아? 초, 초창기 서태지는, 있잖아? '체 게바라' ."

 

 여기서 담배를 팔던 그 수제 담배 가게 주인을 떠올렸다. 아저씨가 계속 말을 이어갔다.

 

 ", 어쨌든, 우리의 '문화 대통령' 이었으니까."

 

 하고 아저씨는 웃었다. 그 웃음도 어린애 같은 모습이었는데, 참 덩치에 걸맞지 않게 해맑았다. 가게에서는 노래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발해를 꿈꾸며... 참 멋진 것을 꿈꾸는 노래였다. 나는 잠시 추억에 잠겨 있다가, 아저씨에게 다음에 다시 오겠노라고, 인사하고 나왔다.

 

 담배를 사러 편의점에 들어가며, 여러 혁명가들의 얼굴을 떠올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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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물건 삽니다

2019.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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