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배달 - 6화

 

 

 

- 6화 -

 

 

 

- ‘거리’라. 가끔 ‘거리의 시인’, ‘거리의 철학자’ 같은 수사가 붙는 분들이 있네. 이럴 때 우리는 어떤 의미로 ‘거리’를 받아들이는 것일까.

 

-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거리’는, 장소와 장소를 잇는 선(線)이자, 그 자체로 하나의 공간(空間)이라고요.

 

- 일차원이자 삼차원이란 말인가?

 

- 예. 천박함과 고상함이, 불평등과 평등이, 억압과 해방이, 부자유와 자유가, 혐오와 사랑이 어우러져 있는 장소입니다. 하지만 거리 속에서 그 모든 존재는 평등합니다.

 

- 흥미로운 철학적 사유가 될 것 같군. ...자, 그럼 이렇게 생각해보세. ‘삼차원 공간 자체’가 일차원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우리는 사차원이라고 부르네. 차원 하나가 더해지는 것이지.

 

-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현대 과학은 아직 사차원을 구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이라는 변수를 초월하기 위해선 빛의 속도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사차원을 구현하려 애쓰는 이들은 과학자들뿐만은 아니네. 자네나 나도, 그리고 우리 평범한 사람들도 일상 속에서 저도 모르게 사차원을 구현하려 애쓸 때가 많지.

 

-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 자네는 지금 배달 일을 하고 있지 않나.

 

- 네, 그게 무슨 상관... 아!

 

- 물론 자네는 빛의 속도로 자전거를 탈 수 없기 때문에 사차원을 구현할 수 없네. 즉, 따끈따끈한 햄버거를 전혀, 아주 완벽하게, 처음 햄버거가 나온 모양 그대로 고객에게 배달할 수 없네.

 

- 저는 사차원을 구현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싶지는 않습니다...

 

- 그럴 필요도 없네. 고작 돈 몇 푼에 그런 고차원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손해 아닌가. 배달 수수료로 한 1000억 정도 준다면 어떻게 하면 빛의 속도로 물건을 배송할 수 있는지 연구해보겠네.

 

- ‘빛의 속도로 배달’한다는 카피는 위험한 말이군요. 물론 수사적인 표현이겠지만요.

 

- 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마치 사차원을 구현할 듯이 바쁘게 사네. 물론 요즘에야 조금 나아졌다지만, ‘빨리 빨리’라는 말의 발화자는 마치 높은 곳에 있는 자의 목소리처럼 여겨질 때가 많지. 그리고 많은 이들도 그런 높은[高] 곳에 이르고 싶어하네.

 

- ......

 

- 하지만 자네가 말한 ‘거리’에 대한 사유는 ‘고(高)차원’보다는 ‘다(多)차원’에 더 주목하게 했네.

 

- ’다차원‘이라. ’다중 우주 이론(multiverse theory)’을 떠올리게 하는 말입니다.

 

- 그렇네. ‘인간은 하나의 소우주’라는 말이 있지 않나. 동학에서는 ‘인내천(人乃天)’, 즉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말이 있고. ‘거리’는 그런 제각기의 우주들이 바다처럼 넘실거리는 곳이네.

 

- ...선생님, 오늘 귀중한 말씀 감사합니다.

 

- 자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것일 뿐, 별 거 아니네. 역시 자네와의 대화는 많은 영감을 주네. 나의 글쓰기는 노동인가, 하는 평소에 가지고 있던 물음이 약간은 답을 얻은 느낌이네. 만약 나의 글쓰기가 다차원적인 사고에 기반하고, 고차원적 합목적성(合目的性)에 입각한 실천에 바탕을 둔다면, 충분히 노동일 수 있겠다... 는 생각이 드네.

 

- 제가 조금 더 열심히 거리를 누벼보겠습니다. 제 글이 실천적 작품이 되게 하기 위해서라도...

 

- 그래. 그렇다면 그녀의 이후 이야기를 들려주게.

 

- 예. 그녀와 네 번째로 만난 날은, 제가 첫 배달을 했던 날처럼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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