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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행(暗行)

 

 10화 - 上

 한 여름 열기가 작렬했다. 일행은 언덕을 올라갔다. 꽤 힘들 법 하지만 희영이나 지원은 별 다른 말이 없었다. 희영은 흘러내리는 안경을 계속 올려쓰며 손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지원은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처음엔 죽겠다, 죽겠다 엄살을 피우던 수철도 그들에게서 뭔가를 느꼈는지, 어느새 묵묵해졌다. 우일은 빙그레 웃으며 수철에게 물었다.

 "수철 씨. 장가 갔어요?"

 "허억에?"

 수철은 숨을 몰아쉬느라 대답을 이상하게 했다. 그리고 수철은 그런 자신에게 자괴감을 느꼈다. 이런, 쪽팔려. 저 누나들은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오르는데. 수철은 대답했다.

 "미혼이예요. 그리고 솔로요."

 "내가 참한 여인 소개시켜 줄라 그랬지."

 하고 우일은 넉살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이 아저씨는 마치 평지를 걷듯 걸음이 사뿐사뿐하다. 수철은 속으로 감탄하며,

 "연극쟁이는 선호하는 신랑감 직종 50위 중 47위예요."

 

 "순위가 중요한가? 어차피 한 사람만 있으면 되는 걸."

 우일은 다시 한 번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수철은 그 모습을 보며, 수줍게 웃었다. 

 

 "여러분. 다 왔습니다!"

 

 모두가 기대하던 말이 드디어 우일의 입에서 나왔다. 일행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서울, 어느 언덕배기 위의 집, 그 중에서도 한 옥탑방이 바로 우일의 집이었다. 우일은 고개를 들어 자신의 집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러분. 저 위에 올라가면, '뷰' 가 끝내줍니다."

 

 "그럴 것 같습니다."

 

 지원이 땀을 닦으며 대답했다. 잠깐 숨을 돌린 후, 일행은 이번엔 시멘트 계단을 올랐다. 이 언덕도 올라왔는데, 이깟 계단쯤이야. 수철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고, 마침내 건물 옥상에 도달했을 때, 자기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다.

 

 "우와아-!"

 

 "우와아-!"

 

 희영도 수철을 따라 같이 감탄했다. 둘은 옥상 난간 쪽으로 달려갔고, 옥상에서 햇볕을 쬐고 있던 강아지 한 마리도 그들에게 엉겨붙었다. 희영은 강아지를 토닥토닥 쓰다듬으며, 입을 쩍 벌리며 경치를 감상했다. 잠시 후 희영이 외쳤다.

 

 "아저씨! 아저씨는 이런 곳에 사셔서 좋겠어요!"

 

 "좋죠!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지만! 벌레 많이 나오고!"

 

 우일이 사과를 물에 씻으며 외쳤다. 희영은 하하하, 웃었다. 그때, 우일의 집에서 누군가 나왔다. 

 

 "오셨어요?"

 

 검은 숏컷 머리가 단정하면서도 어딘가 단아한 느낌을 주는 여자였다. 모두는 그를 쳐다보았다. 수철은 입을 떡 벌리며,

 

 "아저씨... 여자 친구?"

 

 하고 우일에게 물었다. 우일은 폭소를 터뜨렸다. 지원도 폭소를 터뜨렸다.

 

 "딸 뻘인데! 벼락 맞게? 인사하세요. 정민지 씨. 여기는 수철 씨."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수철은 민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우일은 속으로 웃으며, 민지에게 물었다.

 

 "'대장'은?"

 

 "지금 자고 있어요."

 

 "어쩌다가 집도 절도 없는 신세가 되었어. 고생이 많아."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우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좌중을 돌아보았다. 지원은 어느새 강아지와 놀고 있었다. 하얀 털이 풍성하고 예쁜 말티즈였다. 희영은 "고양이들은 어디?" 하고 민지에게 물었다. "안에 있어." 민지는 잠을 못 자서 퉁퉁 부은 눈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수철은 민지에게서 눈을 돌려, 다시 경관을 바라보았다.

 

 하얀 햇살에서 빛이 났다.

 

 잠시 후, 모두는 평상에 걸터앉았다. 과일과 맥주. 그들의 오늘 양식이었다. 우일이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운을 뗐다.

 

 "저번에 내가 그 차 바퀴에 펑크를 낸 건, 단독 행동이예요. 너무 화가 나서..."

 

 우일은 말을 마치고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자 민지가 슬그머니 웃으며,

 

 "괜찮아요. 안 걸리면 돼요."

 

 수철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일동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고, 그것은 수철을 더욱 당황하게 했다. 우일은 말을 이어갔다.

 

 "늘 그렇듯, 우리에겐 자금이 필요합니다. 다행히 우리를 후원해주는 좋은 분들이 있긴 하지만..."

 

 희영이 대답했다.

 

 "이번에 저 번역 일이 하나 떨어져서, 그거 마치면 당장 융통할 정도는 되겠는데요?"

 

 하지만 우일은 기쁘지 않았다. 우일은 맥주를 다시 한 모금 마시고, 크, 하고 숨을 내뱉은 다음,

 

 "희영 씨도 시집 가야지."

 

 하지만 희영은 지지 않았다.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면서요?"

 

 우일은 쓰게 웃었다.

 

 전체주의라는 늪에 빠지거나, 허무주의라는 폭풍우에 몸을 싣는 것은 이제는 구식이다. 삶은 싸워 쟁취할 만한 것이며, 억압은 이 젊은이들의 집념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다. 미디어가 제시하는 관념에 굴하지 않는다. 좋든 싫든 언론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집단임을 간파한다. 좋은 책을 읽는다. 좋은 영화를 찾아 본다. 대중 영화는 유튜브로 대충 훑어본다.

 

 여러 생각들이 찰나에 스쳐 지나갔다. 우일은 머릿속을 정리하려 애쓰며,

 

 "날씨 좋네요. 그쵸?"

 

 하고 말했다. 우일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한여름, 하늘은 파랗고, 하얀 구름은 뭉게뭉게 지나간다. 지원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평화롭습니다."

 

      

 

 

 

 

 

 --

 암행(暗行)

 10화 - 上

 2019.07.30.

 

 낮아짐 이야기제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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