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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행 - 10화 - 下




 부드러운 침묵이 저녁 노을처럼 내려앉았다. 여름 바람은 모두의 머리칼을 간지럽혔고, 바람이 가져다주는 청량함은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술은 많이 마시지 않았지만 모두의 눈빛에는 많은 감상이 담겨 있었다.  

 “선배님들은... 왜 연극을 하세요?”

 분위기에 이끌려, 수철이 담담히 질문했다. 우일은 빙그레 웃었다. 희영과 지원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본인들도 한때 마음 속에 품었던 질문, 하지만 아무도 답을 알려주지 못했던, 때로는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 사치라고 느껴졌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당신은 왜 공부합니까. 당신은 왜 회사에 다닙니까.

 당신은 왜 연극을 합니까.

 “사실, 나는, 재밌어서 했어. 하지만-“

 모두는 희영을 바라보았다. 희영은 무릎을 모으고 앉으며,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나는... 저는, 그렇게 실없는 사람이 아니예요.”

 “알아.”

 지원이 대답했다. 희영은 지원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인 후,

 “...저는 뭔가를 배울 때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책을 읽을 때... 사람들에게서, 여러 경험들에서, 일할 때...”

 “누나, 진짜 대단한 것 같아요.”

 이번엔 수철이 맞장구를 쳤다. 희영은 웃으며,

 “하지만 주위로부터 타박도 많이 들었어요. 언제까지 그렇게 철없이 살 거냐고. 목표라든가, 계획이라든가, 빨리 정해서- 빨리 취직하고 빨리 결혼하고, 빨리 적금을 붓고... 등등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
 
 “...주위에서 그렇게 말하는 걸 듣다보면,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들어요. 하지만, 저는 그럴 때마다, 그 생각을 떨치기 위해 노력했어요.” 

 우일이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희영의 두 눈에 눈물이 아른거렸다. 희영은 안경을 벗어서 눈물을 슬며시 닦으며,

 “나는 이미 내 인생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렇게 말하고 희영은 민지를 바라보았다. 민지는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지었다. 그러자 희영도 웃으며, 말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 도구가 나에겐 연극이예요.”

 희영의 말을 들은 수철은 하늘을 바라보며 곰곰 생각에 잠겼고, 우일은 장난스레 웃으며 희영에게 말했다.

 “하지만 낯선 차에 함부로 올라타고 그러면 안 돼.”

 “헤헤. 알아요. 고마워요.”

 희영이 활짝 웃었다. 지원도 엷게 웃었다. 그리고 지원은 양손을 가지런히 모으며,

 “저는... 어렸을 때부터 대본 쓰고 개인 방송 만들고 이런 걸 좋아했습니다. 음악 듣는 것도 좋아하고, 기타도 조금 배웠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제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들을... 무대 위에서, 또는 영상으로 구현하는 것입니다-“

 “네.”

 지원이 잠시 말을 멈추자 수철이 계속 하라는 의미로 맞장구를 쳤다. 지원은 물컵을 들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물컵을 쥔 손이 파르르 떨렸다. 민지는 침을 꼴깍 삼켰다. 지원이 목이 타는 듯 물을 꿀꺽꿀꺽 마시고는,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저는... 아무렇게나 구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무렇게나?”

 우일이 묻자, 지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득력’ 이 있어야 합니다. ...설득력 있는 언어를 구현하는 것.”

 “……”

 하고, 지원은 다시 물을 마셨다. 이번엔 물컵을 쥔 손이 떨리지 않았다. 지원은 물컵을 내려놓고, 

 “그것이 저의 ‘신앙’이기도 합니다.”

 하고 말을 마무리했다. 다소 무겁고 진지한, 하지만 밝은 기운이 좌중을 감돌았다. 모두는 각자 생각에 잠긴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가운데 희영은 방긋방긋 웃었고, 민지는 엷게 웃었다. 지원은 희영을 따라 무릎을 모으고, 자기 자신에게 침잠해 들어갔다. 

 “고맙습니다.”

 수철이 지원과 희영에게 인사했다. 희영은 손을 들어 답례했고, 지원은 깜짝 놀라 수철을 바라보았다.

 저녁 노을이 부드러운 침묵처럼 내려앉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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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행 - 10화 - 下 

 2019.08.26.

 

 낮아짐 이야기제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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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 한 달만에 글을 올리네요. 죄송합니다. ㅠ_ㅠ

 사실은 제가 그동안 썼던 단편선을 묶은 책을 준비하고 있어서 약간 바빴습니다. 

 <낮아짐 이야기제작소 단편선>에는 그동안 블로그에서 공개한 단편 이야기 중 다섯 편이, 

 그리고 책에서만 공개되는 한 편의 미공개 단편, <민원 빌라 미스테리>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책이 예쁘게 나올 것 같아요. 기대해 주세요! :D

 언젠가는 <바다를 꿈꾸는 유랑극단>과 <암행>도 책으로 낼 수 있겠죠?

 그때에도 역시 책에서만 공개되는 스핀 오프(spin-off) 격인 이야기가 수록될 예정입니다. ^^

 

 저희 낮아짐 이야기제작소

 후원 계좌는 신한은행 110-482-020765 최종원입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도전하는 낮아짐 이야기제작소가 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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