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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暗行)

 

8화

 

 

 

 아저씨 신참은 무서운 고민에 휩싸였다.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창백하게 질려있는 최 대리의 얼굴을 보며, 아저씨 신참은 왠지 모를 죄책감을 느꼈다.

 

 아저씨 신참은 최 대리에게서 눈을 돌려, 이번엔 전무를 바라보았다.

 

 전무는 풍채가 상당한 사람이었다. 큰 키에 퉁퉁한 몸집에, 눈매는 날카로웠다. 아저씨 신참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니, 그러면 안 돼. 아저씨 신참은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가볍게 때리며,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전무가 말했다.

 

 “여기 빨리 진행 안 되면 안 되는데.”

 

 전무의 옆에서 시립하고 있는 서 과장이 재빠르게 대답했다.

 

 “네, 네,”

 

 “다른 업체 부르지.”

 

 “알겠습니다.”

 

 서 과장은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동안 전무는 아저씨 신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저씨 신참은 그 눈빛을 무던하게 맞받았다. 전무는 눈을 두어 번 깜박였고, 아저씨 신참은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이번엔 전무가 손으로 자신의 코를 한 번 쓰다듬었고 아저씨 신참은 무표정한 얼굴을 그대로 유지했다.

 

  “다... 통화가 안 됩니다.”

 

  여기저기 전화를 걸던 서 과장이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난감한 기색을 표했다. 전무는 눈썹을 찡그리며, 전무는 서 과장을 노려보았다. 서 과장은 죄인 마냥 고개를 숙였다. 아저씨 신참은 그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했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곧 답문이 왔다.

 

[오랜 친구]

우일 아저씨가 그놈들 차를 발견했어.

피곤할테니까 몸 관리 잘 해.

 

 아저씨 신참은 씩 웃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당황했다. 전무가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아저씨 신참은 웃음기를 지우고 머리를 긁적였다. 전무는 눈을 가늘게 떴고, 아저씨 신참은 헛기침을 했다. 전무는 서 과장을 향해 손짓하며,

 

 “자네. 혁명 좋아하지?”

 

 하고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서 과장은 “예?” 하고 반문했다. 전무는 느릿하게 말했다.

 

 “혁-명. 민초들의, 항쟁. 의적-단.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

 

 “......”

 

 “나도 그런 거 좋아해.”

 

 “...예전에 학생 운동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래. 누군가는 십자가를 져야지.”

 

 전무는 서 과장에게 말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모두에게 말하고 있었다. 아저씨 신참은 한 번 더 머리를 긁적였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청년들도 아저씨 신참을 따라 머리를 긁적였다. 서 과장은 자신도 머리를 긁적일 뻔했다가, 가까스로 참았다.

 

 전무는 정갈하게 넘긴 자신의 머리를 한 번 매만졌다.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피 흘리고- 고난받는, 예수님의 길을 따라간 거야. 나는.”

 

 “예, 예.”

 

 서 과장이 공손하게 대답했고, 전무는 이제 좌중을 둘러보며, 시원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촬영 좀 늦어지면 어때? 휴식하시라 그래.”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서 과장이 황급히 전무의 뒤를 따라갔고, 둘은 곧 사라졌다. 그리고 남아 있는 모두는 한동안 전무와 서 과장이 사라진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최 대리가 푸우웁- 하고 숨을 몰아쉬더니, 후우욱- 하고 내뱉었다.

 

 “후아아...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최 대리는 다소 과장된 몸짓으로 비틀거리며 객석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청년들도 이마의 땀을 닦았다. 아저씨 신참은 그제야 어깨를 움츠리며, 모두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홀에서 대기하고 있던 단역 출연자들이 웅성거렸다. 이들의 동요는 분노를 동반하고 있었다. 수철은 무슨 일인가 싶어 여기저기에 귀를 기울였다.

 

 수철은 졸린 눈을 비비며, 슬쩍 일어났다. 저쪽 공연장이 오늘의 촬영지라고- 어디서 주워들은 수철은, 그쪽으로 슬그머니 다가가서, 문틈으로 안을 엿보았다.

 

 왜 일을 안 하지?

 

 무슨 사정이 있겠지. 수철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핸드폰을 꺼내 게임을 시작했다. 그 때 단역 배우들을 관리하는 중간 관리자가 단역 배우들에게 와서 소리쳤다.

 

 “아. 양해의 말씀 드립니다.”

 

 모두는 일제히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서글서글한 인상이었지만 웃음기를 싹 지우고 조심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지금, 저기 촬영지에서 철거하는 업체가, 파업을 해서...”

 

 “파업?”

 

 “네. 그래서 늦어진다고 합니다. 해서...”

 

 “갑자기 왠 파업?”

 

 “이런저런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해서...”

 

 “아니,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아, 좀 조용히 해요!”

 

 불평하는 사람들과 제지하는 사람들로 좌중은 일순 웅성거렸다. 중간 관리자는 헛기침을 몇 번 했고, 동요는 서서히 가라앉았다. 중간 관리자는 한 번 더 헛기침을 하고, 그러지 않으려 했지만, 약간 더듬거리며 말했다.

 

 “대, 대기 시급은, 더 이상 없습니다.”

 

 잠깐 정적이 흘렀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한 사람이 날카로운 불평을 터뜨렸다.

 

 “노동자가 무슨 벼슬도 아니고! 다 잡아넣어라!”

 

 

 

 

 

 

 

 -

암행(暗行)

8화

2019.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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