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암행(暗行)

6화

 서 과장은 창 밖으로 새벽 정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벽은 뭔가 신비로운 매력이 있다. 빛이 어둠을 몰아내고 있는, 스릴 넘치는 혁명의 시간이다. 혁명이야말로 가장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아닌가. 한 때 새벽마다 모여 혁명을 결의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는 젊었다. 홀로 세상의 모든 악(惡)과 상대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 있다.

 평범하다는 것은 안전하다는 것이다.

 서 과장은 핸드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한동안 신호음이 울렸지만, 상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서 과장은 작게 한숨을 쉰 다음, 이번엔 다른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도 신호음이 한참 울린 후에, 상대는 전화를 받았다.

 "어. 서 과장. 무슨 일이야."

 막 잠에서 깬 목소리였다. 서 과장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지만, 정돈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예. 죄송합니다. 진수 용역에서 요청이 왔습니다."

 상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다음은 달그락거리는 소리, 졸졸거리는 소리, 타닥타닥거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서 과장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한참 후에, 상대가 말했다.

 "진수 용역? 거기가 어디지?"

 "저희가 하청 준 철거 업체입니다."

 "근데 왜?"

 "사실은... 거기서..."

 다시 통화감이 멀어지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삐빅삐빅거리는 소리, 쉭쉭거리는 소리, 강아지가 왈왈거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한참 후에, 상대가 말했다.

 "왜?"

 이제 서 과장은 대답해야 했다. 그래서 그냥, 눈을 질끈 감았다.

 "휴식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어? 뭐라고?"

 "휴식... 말입니다."

 "휴식? 누가 못 쉬게 했어?"

 "......"

 "좀 자세히 얘기해 봐."

 "...예. 근로기준법 기준... 여덟 시간 이상 근무했을 경우, 한 시간의 휴게 시간."

 "......"

 "그들은 지금 이십 육 시간째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

 "예."

 "우리가 이십 시간 일 시켰나? 아니지?"

 "아닙니다."

 "계약서에 어떻게 돼 있어?"

 "자정부터니까..."

 "그래. 그건 지들 사정이야. 알지?"

 "......"

 "끊어."

 "그..."

 전화가 끊겼다. 서 과장은 이번엔 조금 크게 한숨을 쉰 후, 다시 새벽 정경을 바라보았다.

 세상의 모든 악과 상대하기엔, 나는 평범하다.

 잠시 후, 서 과장은 쌍욕을 내뱉으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끊었던 담배가 절실히 생각나고 있었다.

 '아저씨 신참'은 어안이 벙벙해 있었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느리게, 목장갑을 벗었다. 그러면서 다른 이들의 눈치를 살살 살피고 있었다. 청년들도 다소 어안이 벙벙해 보였다. 그리고 좋은 쌍판을 가진 '대리'의 표정은... 음...

 "다시 확실하게 해 두면, 이 휴식 시간 요청은 저희 진수 용역에 하시는 겁니다. 맞죠?"

 대리는 마치 어떤 공식석상에 선 사람처럼 진중한 어투로 물었고, 아저씨 신참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리는 한참 생각에 잠기더니,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원래의 말투로 돌아와서는,

 "나는 아저씨 좋아. 인상이 좋아 보여."

 라고 말했다.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아저씨 신참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리는 그의 정체를 심연까지 꿰뚫어보겠다는 듯 눈을 빛내며,

 "어쨌든, 얘기 해놨으니까, 답변 올 거요. 그럼 이제 둘 중 하나지. 돈 다 못 받고 여기서 철수하거나, 휴식 시간 보장받거나. 물론 전자가 훨씬 더 가능성이 크지만. 그리고 이 바닥에 소문 쫙 나고."

 "......"

 "원래 이런 짓 많이 하고 다닙니까?"

 아저씨 신참은 대답하기 곤란했다. 그래서 그냥 얼버무리기로 했다.

 "...제가 인성이 좀 뒤틀려서... 변덕도 심하고..."

 "......"

 "......"

 "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똘끼 충만이구만."

 

--

암행(暗行)

6화

2019.06.04.

낮아짐 이야기제작소

반응형

'미완(未完) > 암행(暗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암행(暗行) - 8화  (0) 2019.06.22
암행(暗行) - 7화  (0) 2019.06.16
암행(暗行) - 5화  (0) 2019.06.05
암행(暗行) - 4화  (0) 2019.06.05
암행(暗行) - 3화  (0) 2019.06.0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