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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暗行)

 2화

 "뭐 해요?"

 서 과장은 어깨를 움찔했다. 마치 죄를 짓다가 들킨 기분이었다. 아니, 아니, '죄'가 맞지 않나? 이런 걸 '사찰'이라고 하는 거 아닌가? 서 과장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런대."

 서 과장의 의도는 들켰다. 놀란 거 티 났나? 한 남자가 쭈쭈바를 입에 문 채 능글능글 웃고 있었다. 서 과장은 손에 흐르는 땀을 바지에 몰래 닦으며,

 "일 하시는 거 잠깐 보러 왔습니다."

 하고 최대한 업무적인 말투로 대답하며 남자의 눈치를 얼핏 살폈다. 남자는 그저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쭈쭈바를 질겅질겅 씹으며 객석 의자에 털썩 걸터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약간, 젖히고 서 과장을 바라보았다. 무례한 자세였지만, 그걸 탓하기에는 남자의 분위기가 묘한 데가 있었다. 남자는 그 자세로 서 과장에게 말했다.

 "왜요? 일 잘 못 할까봐? 보면 뭐 알아요? 아, 의자 존나 푹신푹신하네."

 "......"

 "역시 돈이 최고구나. 나는 시발 맨날 존나 딱딱한 침대에서 자는데."

 "......"

 "아. 소개가 늦었죠. '진수 용역'의 최현수 대립니다."

 그는 쭈쭈바가 묻은 손을 바지에 슥슥 닦고는, 명함을 꺼내 서 과장에게 건넸다. 서 과장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명함을 받아 넣고, 이 남자를 다시 훑어보았다. 코는 약간 들창코에, 눈매는 작고 옆으로 길게 찢어졌고,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굵은 손톱에는 때가 잔뜩 끼었다. 이래저래 별 볼 일 없는 몰골인데...

 혹시 이 인간이 '그 인간'인 건 아니겠지?

 "미친 회사에서 미친 일거리를 줘서 애들이 좀 힘들어해요. 그렇지만 시간 내에 끝날 거예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서 과장을 향해 방긋 웃었다. 서 과장은 또 잠깐 움찔했지만, 업무적인 말투로,

 "예. 예.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 대답했다.

 "얘들아! 이제 좀 쉬어라!"

 남자는 서 과장의 말을 들었는지 말았는지 청년들을 향해 그렇게 외치고는, 쭈쭈바를 마저 쭉 빨았다. 그리고 빈 껍데기를 근처의 쓰레기봉투에 휙 던져넣었다. 그의 지시를 받은 청년들은 그제야 '휴.'하고 헐떡이는 숨을 내쉬었다. 청년들은 일손을 멈추고 목장갑을 손에서 빼고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리고는 제각기 아무 의자에나 터덜터덜 걸어갔다.

 그리고 그 동안 남자는 혼자 일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청년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그들은 의자에 주저앉다시피 앉아서 최대한 편한 자세로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아저씨 신참'은 이런 상황이 신기하기도 했고, '높은 사람'이 일하는데 내가 이렇게 쉬어도 되는가, 하고 조금 안절부절못했다.

 "아저씨. 담배 피우러 갈래요?"

 아저씨 신참을 불안에서 구해낸 이는 '택시 청년'이었다. 아저씨 신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위험한 추락을 겪을 뻔한 청년이 같이 서 있었다. 다른 한 청년은 의자에 누워 벌써 코를 골고 있었다.

 새벽 공기가 꽤 상쾌했다.

 "밤을 새는 건 힘든 일이야."

 담배를 피워 물며 아저씨 신참이 중얼거렸다. 택시 청년과 추락 청년도 담배를 피워 물었다.

 "몇 살이예요?"

 아저씨 신참이 둘에게 물었다. 두 친구 다 스물 여섯이라고 대답했다. 그렇구나. 한창 나이네. 아저씨 신참은 자신은 서른 넷이라고 대답했다. 꽤 동안이시네요. 택시 청년이 그렇게 말하며 싱긋 웃었다. 그런데 왠지 나이보다 더 늙어 보여. 추락 청년이 농담조로 그렇게 말했다. 뭐야, 동안인데 늙어 보인다고? 서른 넷 아저씨는 짓궃은 표정으로 반문했고, 두 청년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그리고 셋은 한동안 말없이 담배 연기만 만들어냈다.

 담뱃재를 털고 셋은 다시 오디토리엄으로 들어갔다. '대리'는 여전히 일에 열중이었다. 진척 속도도 꽤 빨랐다. 무대 세트는 이제 다리 정도만 남았다. 한 시간여만 바짝 일하면 될 것 같았다.

 "좀 더 쉬어!"

 대리가 그렇게 외쳤고, 아저씨 신참은 반가운 말을 들었다는 표정으로 의자에 걸터 앉았다. 두 청년은 아저씨 신참의 뒤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그들끼리 두런두런 대화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축구 얘기, 롤(LoL) 얘기, 뭐 그런 것들이었다. 아저씨 신참은 속으로 빙긋 웃으며 눈을 감았다. 악착같이 쉬자고. 잠깐 눈을 붙일 수만 있다면...

 "그런데. 그 얘기 들었어?"

 "무슨?"

 "요즘도 '암행어사'가 돌아다닌대."

 아저씨 신참은 눈을 떴다. 그리고 청년들의 대화에 귀를 쫑긋했다. 청년들은 그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대화를 계속했다.

 "암행어사? 지금이 무슨 조선 시대냐?"

 "야. 조선 시대보다 지금이 더 살기 힘든 거 아냐?"

 "응응. 쌉인정."

 "퍼킹 헬반도..."

"암행어사는 무슨 일을 한대?"

 "뭐라더라... 현장에 갑자기 막 불쑥불쑥 튀어나와서. 나쁜 일을 적발한다던데."

 "형이 왜 거기서 나와? 뭐 이런 거임?"

 "정체를 숨겨서 찾기가 힘들대."

 "암행어사면 대통령이 보낸 거야?"

 "아닐걸."

 "그럼 누가 보낸 건데."

 "무슨 연합? 이 있다던데."

 "자. 이제 바짝 마무리하자!"

 멀리서 대리가 외쳤다. 청년들은 그 말을 듣자마자 벌떡 일어났고, 자던 청년도 부스스 잠을 깼다. 아저씨 신참은 그 모습을 보며 천천히 목장갑을 꼈다. 힘내자. 이제 곧 일이 끝난다.

 빼앗겼던 휴식이 머지 않았다.

--

암행(暗行)

2화

2019.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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