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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暗行)

1화

  그들은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서, 찰나의 쪽잠을 자고 있었다. 날이 춥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눈치없는 모기들이 그들의 팔이며 목에 달라붙었다. 그들은 신경질적으로 모기를 쫓으며, 필사적으로 잠을 청하고 있었다.

  "아저씨... 택시 좀 불러주세요..."

  그들 중 한 청년이, 오늘 처음 온 신참에게 부탁했다. '아저씨'라고 불리긴 했지만, 이 신참은 이들 청년들보다 고작 네다섯살 정도 많아 보였다. '인력 급구!'라는 말에 이 '아저씨 신참'은 당일치기로 오늘 일에 참여했다. 허름하지만 매우 큰 대공연장에서 세트를 철거하는 일이었다. 이 철거 회사의 '대리'라는 사람은 일하는 내내 투덜거리며 욕을 하더니, 어느 순간 사라졌다. 다음 일터 - 어느 방송국 세트장 - 에 미리 가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청년들에게 일을 마친 후 택시를 타고 오라고 지시했다.

  새벽 두 시. 택시는 잘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 신참'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하다가, 겨우 대답했다.

  "요즘 택시 잡는 어플이 있던데... 그거 말하는 거예요?"

  "아저씨... 그거 안 써 봤어요?"

  청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힘없이, 하지만 생각보다는 '안 싸가지 없게' 반문했다. 아저씨 신참은 머리를 긁적이며,

  "안 써 봤어요. 지금 깔게요."

  하고는 부랴부랴 핸드폰에 어플을 설치했다. 그동안 이들은 다시 잠 아닌 잠에 빠져들었다. 이들은 빨리 택시가 오길 바랄 것이다. 그래야 빨리 다음 일터로 이동해서 일을 착수할 수 있고 그래야 빨리 끝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이들은 택시가 천천히 오길 바랄 것이다.

  이윽고, 택시 한 대가 그들의 곁으로 왔다. 청년들은 모두 택시에 타자마자 시트에 몸을 파묻었다. 택시는 이십여 분을 달려 방송국에 도착했고, 그들은 비틀비틀 내려서 방송국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세트 철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아직 녹화가 안 끝났기 때문이었다.

  한 청년은 조금 기운을 회복했는지, 아저씨 신참에게 음료수나 뽑아 먹자고 제안했다. 아까 택시를 잡아달라고 했던 청년이었다. 아저씨 신참은 모자를 눌러쓰며 방긋 웃었다. 둘은 방송국 복도에 있는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으며 주변 사람들을 구경했다. 다양한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쉴새없이 지나갔다. 미녀들도 상당히 많았다. 눈이 돌아가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피곤함이 다시 그들을 잠식했다. 저 쪽에서는 드라마 엑스트라 촬영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단역 배우들이 벤치에 누워 쪽잠을 자고 있었다.

 음료수를 마시며, 아저씨 신참은 청년에게 물었다.

 "몇 시간 째 일하는 중이예요?"

 청년은 목이 타는지 벌컥벌컥 음료수를 들이키고는, 끼고 있던 목장갑으로 이마의 땀을 닦고,

 "가만 있자... 어제 새벽부터니까... 이제 이십사 시간 정도 되었네요."

 "왜 퇴근 안 해요?"

 "일이 많대요. 사람은 없고."

 "......"

 "아까 한 친구가 도망 가서... 그래서 아저씨가 온 거예요."

 아저씨 신참은 속으로 뜨악했다. 아까 그 대리라는 사람의 쌍판을 처음 봤을 때부터 직감해야 했어. 빌어먹을.

 녹화는 이후 두 시간 이상 더 진행되었다.

 그동안 어느 정도 피로를 회복한 청년들은 이제 철거를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일인 듯, 망치로 철골의 접합 부분을 해체하는 그들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아저씨 신참은 그들이 분해한 것을 날라서 정리하는 일을 주로 했다. 철골들은 하나같이 상당히 무겁고, 녹화장의 에어컨은 꺼졌다. 그들의 얼굴에는 어느새 땀으로 흠뻑 젖었다.

 쉬는 시간 없이 두 시간여의 일을 진행 후, '대리'가 나타났다.

 "좀 먹고 하자."

 그는 삼각 김밥이며 우유며 콜라 등을 사 왔다. 그들은 일을 잠시 중단하고 먹을 것을 먹기 시작했다. 그동안 아저씨 신참은 대리에게 질문했다.

 "몇 시까지 철거해야 해요?"

 "빨리 해야 해요. 다음 녹화 있대. 늦어도 아침 아홉 시 전?"

 미치겠군. 아저씨 신참은 속으로 욕을 하며 삼각 김밥을 입 속에 우겨넣었다.

 잠시 후, 끝날 것 같지 않은 일이 계속되었다. 사오십명은 올라가는 무대 세트를 고작 다섯 명이서 철거하고 있었다. 그나마 대리라는 사람은 설렁설렁 일하며 꾀를 부렸다. 아저씨 신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순간, 방송국에서는 한 직원을 그 녹화장으로 급파했다.

 그는 넥타이를 고쳐 매며 녹화장으로 허겁지겁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에 한 상사가 그에게 물었다.

 "서 과장. 어디 가?"

 "오디토리엄 삐(B)요!"

 "뭐 그렇게 급해?"

 "그... 그 인간이 왔대요!"

 그 인간? 상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 말하는 거야? 하지만 서 과장은 간단히 목례하고는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서 과장이 녹화장에 도착했을 때, 녹화장에 있던 무대 세트는 절반 정도 철거된 상태였다. 그들은 세트 위에 올라가서 작업을 시작하고 있던 참이었다. 공중에 매달려 있는 철골들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서 과장은 행여 그들이 자기를 볼까 봐, 조명이 비치지 않는 곳에서 숨을 죽인 채 그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저들 중에... 누구지? 네 명 다 꽤나 젊어 보이는데.

 그들 중 세 사람은 모자를 쓰고 있었고, 강한 조명에 그늘이 져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일에 열중하느라 - 정확히는 일에 매몰되어 - 서 과장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한 청년이 공중의 철골을 조정하다가, 뒷걸음질로 무대 중간의 움푹 파인 곳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저대로라면 추락할 것이 분명했다. 서 과장은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가,

 "앗!"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여기서 내 존재를 들켜서 좋을 것 없다. 청년은 계속 뒷걸음질하고 있었다. 아저씨 신참은 그것도 모른 채 청년의 맞은 편에서 철골을 붙잡고 있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만 더 가면? 서 과장은 가슴이 콩닥거렸다.

 "조심해."

 누군가가 그 청년의 어깨를 황급히 붙잡았다. 서 과장은 그 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저씨 신참은 그와 청년을 번갈아 보다가,

 "어. 큰일날 뻔했네."

 하고 말했다. 청년도 그제야 사태를 파악했다.

 "고마워."

 아저씨 신참은 위험한 일을 막은 그를 다시 쳐다보았다. 아까 그 택시 청년이었다. 아저씨 신참은 빙긋 웃었다. 저 친구, 꽤 쓸만한 걸. 뭐하는 친구일까.

 아저씨 신참은 다시 모자를 눌러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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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

1화

2019.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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