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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행(暗行)

  19화 - 아가씨를 위한 장송곡 - (9)

 

 

 

 지원은 편의점에 들어서며 친구인 민지에 대해 생각했다. 민지는 말술인데. 아마 이런 경우에 민지는 캔맥주 두 캔을 구입할 것이다. 언젠가 지원은 민지에게 물었다. 

 

 "술은 언제부터 배웠어?"

 

 "고등학생 때. 아빠랑 종종 한 잔 했어."

 

 "아, 그래? 그런데 왜 나는 그때 몰랐지?"

 

 그러자 민지는 지원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리고 지원은 그제서야 자신이 멍청한 질문을 했음을 깨닫는다. 세상에는 잊고 싶은 기억이 있고, 그 바람이 너무 강렬하면 진짜로 잊은 듯 행동하게 된다.

 

 내 고등학생 시절은...

 

 "천 백원입니다."

 

 편의점 직원이 말했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지원은 현실로 돌아왔다. 지원은 계산하고, 따스한 캔커피를 두 손으로 꼭 움켜쥔 채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그렇게 많이 춥지는 않은 날이었다. 지원은 편의점 앞에 있는 테이블 하나를 골라 앉았다. 옆에 있는 테이블에서는 두 남자가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원치 않았지만, 어쨌든 지원은 그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와, 이 여자, 이 여자 봐."

 

 "왜, 왜."

 

 "몸매 죽이지 않냐?"

 

 둘은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지원은 커피를 후룩 마셨다. 그들은 지원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계속 말했다.

 

 "어우야. 치마가 존나 짧네."

 

 "형. 이 가슴 찐이야?"

 

 "어디 봐봐."

 

 "요즘 자연산을 찾기가 힘들어."

 

 "이거 뽕이네. 뽕이야."

 

 "뽕이야? 어떻게 알어?"

 

 "다 알지, 시발, 내가."

 

 "오. 우리 민태 형님!"

 

 한 남자가 어깨를 으쓱하자 다른 남자가 과장된 말투로 치켜세웠다. 지원은 다시 커피를 후룩 마셨다. 그들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총알 있어?"

 

 "조금. 너는?"

 

 "월급 다 떨어져간다... 시발."

 

 "갈래?"

 

 "아아, 시발..."

 

 "오우야. 이 여자 다리 봐라."

 

 "오우야. 각선미 죽이네."

 

 "야. 근데 이거 살스냐, 맨살이냐?"

 

 "그게 왜 궁금해! 푸하하하!"

 

 마지막 말은 두 남자가 한 말이 아니었다. 지원은 폭소를 터뜨리느라 캔커피를 입에서 조금 뿜어내었다. 지원은 황급히 커피를 닦으면서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두 남자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지원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엔, '민태'라 불린 남자가 따져들어왔다.

 

 "이봐요."

 

 "......"

 

 지원은 민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민태는 그 모습을 마주 바라보다가,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참 나. 지금 우리한테 시비겁니까?"

 

 "......"

 

 "기분이 매우 나쁘네요? 어떻게 하실래요?"

 

 어떻게 하길 바라는 거지? 지원은 문득 궁금했지만, 그것에 대해선 묻지 않기로 했다. 그때 삐까번쩍한 차 한 대가 그들의 옆으로 지나갔다. 지원은 그 차를 흘깃 바라보았다. 보조석에 있는 여자에게 잠깐 눈길이 갔다. 그리고 지원은 저 차가 일본의 전범기업에서 만든 차라고 되새겼다.

 

 "죄송합니다."

 

 지원은 천천히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민태는, "아, 죄송하면 다야? 지금 기분이 나쁘다고!" 하며 발광할 기색을 취했지만, 다른 남자가 말렸다. "형, 됐어, 그만해. 가자, 가자." 지원은 다시 한 번 사과했다.

 

 "재수가 없을라니까..."

 

 민태라 불린 남자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가래침을 한 번 퉤 뱉고, 맥주캔을 쓰레기통에 던져넣고, 또 뭐라고 투덜투덜거리며 자리를 떴다. 지원은 두 남자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일본에는 많은 수의 전범기업이 있다. 그리고 잊고 싶은 기억이 가끔 생각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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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暗行) - 

19화 - 아가씨를 위한 장송곡 - (9)

2020. 01.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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