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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暗行

14화 - 아가씨를 위한 장송곡 - (4)

 

 

 

2019.5.30.

 어제 민수 오빠가 찾아왔다. 오빠는 술을 한 잔 했는지 조금 흐트러진 모습이었다. “술도 못 드시면서 왜 마셨어요?” 하고 내가 놀라서 물었더니, 오빠는 볼을 발그레하게 붉히고 귀엽게 웃었다. 나는 그 모습이 우스워서 깔깔 웃었다. 그리고 민수 오빠는 품을 주섬주섬 뒤적이더니 뭔가를 꺼냈다. 작고 귀여운 목걸이였다. “오다가 샀다.” 하고 오빠가 말했다. 나는 한 번 더 웃었다. 그리고 우리는 공원을 잠시 산책했다. 

 예쁘고 앙증맞은 목걸이다.


 2019.6.2.

 요즘 피시방에서 자꾸 거슬리는 손님이 있다. 그는 언제나 큰 야구 모자를 써서 눈을 가리고, 고개를 푹 숙이고 걷는다. 그리고는 구석진 자리에 앉아서 게임을 한다. 처음에는 낯을 좀 가리는 조용한 손님인가 보다 했다. 그런데 오늘,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길래 가져다 주었더니,

 “저기요.”

 하고 부른다. 

 “네?”

 “잠깐만 앉아 봐요.”

 나는 놀라서 “예?”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가 다시 고개를 푹 숙이고 말없이 있었다. 나는 당황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 도 해서, 바로 그 자리를 떴다.  

 대체 사람을 뭘로 보고...



 2019.6.3.

 예술이란 뭘까. 나는 예술 관련 학과를 전공하지도 않고 따로 공부한 적도 없다. 하지만 나는 예술을 좋아한다. 나는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 사장님은 피시방에서의 나의 선곡 센스를 늘 칭찬한다. 젊은 사람 같지 않단다. 어디서 이런 노래를 들어 알고 있냐며 사장님이 감탄할 때마다 나는 속으로 우쭐한다.

 그런데 진짜 예술이란 뭘까.

 


 2019.6.7.

 너바나의  라이브 영상을 보았다. 커트 코베인은 영상 속에서 언제나 다소 긴장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인지 그는 다소 침울하다. 그의 왼손잡이 기타 때문에 더 불안정해 보인다. 그는 확실히 낯설다. 그래서 매력 있다.



 2019.6.15.

 약속이 깨질 것 같은 이 불안함은...

 

 2019.7.4.

 날이 너무 덥다. 피시방은 에어컨을 최대로 틀어도 좀 후끈하다. 오늘도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했다. 그런데 조금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다. 정수기를 청소하려고 허리를 굽혔을 때, 뒤에서 사진 찍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 남자, 모자를 쓴 그 남자가 다소 움찔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불쾌하다. 하지만... 피시방에서는 이 정도 일은 감수해야 한다.



 2019.8.30.

 민수 오빠랑 같이 동물원에 갔다. 
 나는 우리에 갇힌 동물들을 한참을 쳐다보았다. 
 오랜만에 데이트였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동물들을 바라보다가 오빠를 바라보았다. 
 오빠는 요즘 이상하다.   



 2019.9.1

 우리에 갇혀 있지만
 언제나 야생의 들판을 꿈꾸는 아이들
 오늘도 눈물 흘리네
 오늘도 괜히 하품하고
 괜히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고
 우리를 한 번 들이받아 보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고래고래 악을 쓰기도 하네
 그래, 그래도, 꿈 꿔서 다행이야.

 <동물원>, 자작시

 민수 오빠에게 엽서로 보냈다. 



 2019.9.4.

 달빛 밤하늘 아래서, 민수 오빠에게 헤어지자고 선언했다. 오빠는 놀라서,

 “왜?”

 나는 울고 싶었다. 하지만 울음을 참고 말했다.

 “오빠는... 더 이상 내가 알던 김민수가 아니야.”

 “……”

 “요즘 무슨 일 있어?”

 “……”

 “왜? 뭔데... 아니, 아니다.”

 “……”

 “골백번도 더 물어봤지. 절대 대답 안 하겠지.”

 “……”

 “오빠는... 마치, ‘좀비’ 같아.”

 오빠가 움찔했다. 하지만 나는 휙 돌아섰다.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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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暗行)

14화 - 아가씨를 위한 장송곡 - (4)

2019.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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