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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교 대상: 킥보드 -

 

 

 

 이것은 마치 경운기 같다. 울퉁불퉁한 보도 블럭에 맞춰 통타이어가 통통 튄다. 그러면 킥보드 몸체도 통통 튀고, 내 볼살도 드르르 떨린다. 옆에서 지나가는 학생들이 킥킥 웃는다. 아, 쪽팔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근엄한 눈빛으로 킥보드를 몬다. 

 나는 무엇을 향해 질주하는가.
 
 언덕이 나타난다. 아주 완만한 언덕은 거뜬히 오르지만, 나의 경운기는 왠만한 언덕은 오르지 못한다. 결국 발의 힘을 빌려야 한다. 손은 킥보드를 운전하고, 왼발로 땅을 찬다. 손과 발의 환상적인 조화. 그러면 나의 경운기, 아니, 킥보드는, 기기기긱, 하는 소리를 내며 약간의 추진력을 받는다. 숨이 차고, 등과 허리에서 땀이 송골송골 난다.

 무엇을 향해 질주하긴. 배달 목적지를 향해서지.

 무슨 아파트를 산 꼭대기에 지어 놨담. 나는 투덜거리며 아파트 단지 입구로 들어선다. 심지어 단지 안에도 언덕이 있다. 다시 한 번 손과 발의 환상적인 조화를 발휘하여 언덕을 오른다. 나는 배달 목적인 119동을 향한다. 119동은 언덕 위 끄트머리에 있다. 119동 앞에 기어이 도착한 나는 킥보드를 현관 앞에 주차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1701호에 음식을 전달하고, 나는 휴, 하고 한숨을 쉬며 나온다. 

 몸이 느끼는 속도감에 균형을 맞출 요량으로, 아파트 단지를 나와 언덕을 내려갈 때는 걸어서 킥보드를 천천히 끌고 간다. 액정은 부서져 있고, 브레이크 페달은 뻑뻑하다. 게다가 전혀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되어 있지 않은 이 킥보드는 걸어서 끌고 갈 요량이면 자꾸 오른발로 킥보드 고정 지지대를 찬다. 그럴 때마다 나와 킥보드는 몸이 기우뚱한다.

 작은 앞바퀴가 길의 움푹 패인 곳에, 턱, 하고 걸린다. 그러자 이 킥보드의 뒷부분이 들리며 몸체가 빙글 돈다. 그리고 뒷바퀴가 내 발의 복숭아뼈를 강타한다. 

 “우욱...!”

 존나 아프다. 

 이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킥보드를 탈 때보다 걸어서 끌고 갈 때 나는 더 많이 다치는 것 같다. 이게 이 낡고 작은 킥보드 때문이다. 싼 게 비지떡이다. 중고 매물로 십 오만원에 싸게 올라와서 샀는데 이튿 날 되게 후회했다. 나는 통증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다시 킥보드를 끌고 간다. 

 언덕을 다 내려왔을 때 쯤, 한 킥보드가 언덕을 오른다.

 어떤 청년이 모는 저 킥보드는 내 것보다 훨씬 크고 우람하다. 아마 백 만원 이상 하는 킥보드일 것이다. 바퀴도 내 것 보다 두 배 이상 크다. 몸체에 붙은 라이트가 번쩍번쩍한다. 그 킥보드는 “언덕이 뭐임, 먹는 거임?” 라고 주장하는 듯이 언덕을 오른다. 가뿐하게 오른다. 전혀 지체하거나 망설임이 없다.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본다. 

 저런 거로 배달하면 훨씬 일이 수월하겠지. 그리고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을 거야. 나는 침울해진다.

 나는 조금 더 걸으며 핸드폰을 계속 확인한다. 배달 주문이 들어왔는지 보는 것이다. 아직 주문이 없다. 물이라도 사 먹자는 생각에 편의점에 가기로 한다. 편의점 앞에 킥보드를 주차해 놓고, 나는 편의점에 들어간다. 작은 생수 하나에 팔백 오십원이다. 되게 비싸다. 하지만 땀을 많이 흘리고 목이 타는 지금은 어쩔 수 없다. 나는 물을 계산하고 편의점을 나온다.

 어떤 꼬마 아이가 내 킥보드 앞에 서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이는 내 킥보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나는 생수 뚜껑을 따서 벌컥벌컥 마신다. 한 번 그러고 나니 생수 전체 용량의 육십 퍼센트가 사라졌다. 나는 입맛을 쩝쩝 다신다. 그 꼬마 아이는 계속 내 킥보드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묻는다.

 “뭐 하니?”

 내가 묻자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내 킥보드를 바라본다. 나는 물을 마저 마신다. 탈탈 털어 다 마시고, 빈 병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다. 아이는 나를 향해 묻는다.

 “아저씨. 이거 얼마 짜리예요?”

 “……”

 나는 대답하기 껄끄러워진다. 십 오 만원이라고 하려니 왠지 부끄럽다. 초라하게 느껴진다. 아이는 다시 킥보드를 바라본다. 나는 머리를 긁적인다. 아이가 다시 묻는다.

 “이거는 전기로 가는 거지요?”

 “...응.”

 “우와! 내 거는 발로 가는데.”

 “……”

 나는 아이 옆에 쪼그리고 앉는다. 아이는 그 작은 입을 열어 계속 말한다.

 “나도 이런 거 사달라고 그랬는데, 저는 아직 어려서 안 된대요.”

 “……”

 “저도 아저씨처럼 크면 이런 거 살 거예요.”

 “……”

 “저 그래서 맨날 우유 먹어요. 운동도 열심히 해요.”

 나는 하하, 웃는다. “그래. 쑥쑥 크렴.” 아이는 빙그레 웃더니, 인사하고 어디론가 후다닥 달려간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리고 나의 킥보드를 바라본다. 

 나의 낡고 작은 킥보드...

 핸드폰이 띠링, 하고 울린다. 주문이 들어왔다. 나는 한 번 기지개를 펴고, 킥보드 위에 올라탄다. 그리고 액셀러레이터를 힘차게 땡긴다. 나의 낡고 작은 킥보드는 곧 쌩쌩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을 향해 질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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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교 대상: 킥보드

 2019.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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