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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화 -

 

 


 할 말이 있는데.”
 
  코코는 슬그머니 나에게 다가오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비스듬히 젖히며 녀석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나의 무언(無言)의 질문에 대답했다.
 
  “일단 저 쪽으로 옮겨서 이야기하자.”
 
  녀석은 저쪽 으슥한 곳으로 고갯짓을 했고 나는 느릿느릿 일어났다. 다른 녀석들이 우리에게 잠깐 시선을 돌렸지만 이내 자신들만의 관심사로 돌아갔다.
 
  앞장서 걷던 녀석은 적당한 거리에서 멈췄다.
 
  “여기가 좋겠군.”
 
  “할 말이 뭐지?”
 
  그러자 녀석은 나를 흘깃 돌아보며,
 
  “질러 말하지. 요즘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는 그 인간들 얘기야.”
 
  나는 내심 움찔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좋은 사람들인 것 같은데.”
 
  “그렇겠지. 그런데 그 인간들 중에... 내가 아는 인간이 하나 있어.”
 
  “누구지?”
 
  “키 크고 삐쩍 마른 인간 있잖아.”
 
  그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색하지 않고,
 
  “어떻게 알지?”
 
  “...내가 주인의 곁에 있었을 때...”
 
  ‘주인이라. 녀석이 아직도 주인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니. 나는 한 쪽 눈을 꿈벅이며 내가 경청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했다. 녀석은 아주 약간 머뭇거렸지만 이내 말을 이어가며,
 
  “그 인간이 종종 주인과 같이 있었어.”
 
  “‘친구같은 건가.”
 
  “그런 걸 믿는다면.”
 
  흥미로운 이야기이긴 하다.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다가,
 
  “네가 보기에,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지?”
 
  녀석은 빠르게 대답했다.
 
  “주인과 닮았지.”
 
  “너의 주인은 어떤 사람이었지?”
 
  그러자 이번에 녀석은 잠자코 생각에 잠겼다.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모양새를 보니 곤란한 질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녀석의 대답을 기다렸다.
 
  녀석은 갑자기 신경질적으로 기지개를 피고는,
 
  “...‘양아치같은 놈이었어.”
 
  하고 대답했다. 거친 대답이었지만 녀석의 묘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차마 숨기지 못한 감정이 눈에 새겨져있었다. 녀석은 느릿느릿 걷기 시작하며 말을 이어갔다.
 
  “내가 아기일 때는 주인도 나를 잘 대해줬어.”
 
  나도 녀석을 따라 걸었다. 녀석이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나에게 물건을 집어던졌어.”
 
  “이런...”
 
  나는 맞장구를 쳤다. 녀석이 또 잠깐 말이 없었다.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나는 녀석의 생각을 방해하지 않으려 애쓰며,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그리고 또 무슨 짓을 했지?”
 
  “...이를테면, 이런 거야.”
 
  라고 대답하며 녀석은 우뚝 멈춰섰다. 나도 멈춰섰다. 녀석은 내 등 뒤 너머를 고갯짓으로 가리키며,
 
  “저길 잠깐 봐봐.”
 
  나는 시키는 대로 했다. 몸을 돌려 녀석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본 것이다. 아무 것도 없었다. 풀숲만 우거져 있을 뿐이었다. 나는,
 
  “뭐가 있는-”
 
  하며 입을 뗐으나, 내 몸이 기우뚱하고 기울었다. 나는 균형을 잃고 자빠지면서, 그제서야 사태를 파악했다. 녀석이 내 등을 민 것이다. 나는 다리를 뻗어 균형을 다시 잡으려 했다. 하지만 의외로 땅이 발에 닿지 않았다. 풀숲이 너무 우거져 있어서 이런 곳인지 몰랐다. 나는 한없이 떨어졌다.
 
  이리저리 부딪히며 한참 후에야 닿은 땅에 나는 볼품없이 나동그라졌다. 벌떡 일어나서 위를 쳐다보니, 녀석은 까마득하게 높은 곳에 있었다. 나는 녀석을 보며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녀석은 무심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이런 식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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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를 꿈꾸는 유랑극단
 3막 9화
 2018.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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