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 24화 -

(3막 완결)

비가 그친 후, 맑은 햇살이 우리를 비추었다.

나는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의 걸음걸이는 가뿐했다. 표정도 많이 밝아져 있었고, 수척했던 얼굴에도 살이 붙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서 알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그와 나란히 걸으며, 나는 망루 녀석을 잠깐 돌아보았다. 녀석은 그저 무심한 눈길로 걸어갈 뿐이었다. 다만 녀석의 얼굴엔 이제 몇 개의 상처가 생겼다. 나는 녀석에게 위로의 눈길을 보낸 후, 이번엔 뒤를 돌아보았다.

큰 짐승 한 녀석이 따라 오고 있었다.

저번의 싸움 이후, 줄곧 우리를 따라다니는 녀석이다. 녀석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마음이 착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발바닥에서 줄곧 땀이 나는 것만 같았다. 우리가 녀석을 쫓아내려 하면, 녀석은 겁을 먹고 도망간다. 하지만 어느새 또 저렇게 나타났다.

좁은 산길을 걸어, 정상에 도착했다.

높고 파란 하늘 위로, 새 녀석들이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꽃들은 화들짝 피기 시작했고, 새싹들은 자신들을 알리기 위해 땅 위에서 솟구쳐 나왔다. 그리고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면,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난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 언젠가는 '바다'에 가닿겠지. 나는 눈을 감았다. 실바람이 불어 와 코 끝을 간지럽혔다.

"치열했어."

망루 녀석이 중얼거렸다. 나는 눈을 뜨고, 녀석을 바라보며,

"간지 삼촌이 그러는데, 이런 싸움은 언제나 있어 왔대. 아주 오래 전부터."

망루 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삼촌한테 들은 적이 있어. 사람들도, 동물들도, 많이 죽었다고."

말을 맺을 때, 녀석의 말꼬리가 미세하게 흔들렸지만 아마 녀석은 모를 것이다. 녀석은 그저 무심한 눈길로, 적막한 땅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우리는 산길을 걸어 내려왔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네 발 달린 괴물이었다. 그 괴물의 위에는 다시다가 올라가 있었다. 녀석은 평온한 자세로 앉아서 나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비가 그친 후, 나비들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나비는 마치 고양이라는 생물을 처음 본다는 듯 다시다의 코 앞에서 나풀나풀 날아다녔다.

비가 왔을 때, 황소를 괴롭히던 그 고양이들은 모두 어디론가 사라졌다. 자유로워진 황소는 다시 돌진했고, 검은 딱딱한 사람들의 위세는 단번에 꺾였다. 그들은 결국 물러났고, 덕분에 우리는 보금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당분간은 그렇다는 얘기다. 나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저 큰 짐승을 다시 흘깃 돌아보았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았던, 세 사람이 나타났다. 그들은 웃으며 서로 뭐라고 말을 나누었다. 그러다가 그들은 나의 '생명선'을 붙잡고 있는 그에게 뭐라고 말을 했다.

"Yoor, Di Rojik?"

"...Reliis..."

그는 뭔가 망설이는 눈치였다. 그 세 사람은 그런 그의 반응이 재밌다는 듯 웃으며, 괴물의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그러자 다시다가 펄쩍 뛰어내려서는, 그들 중 한 사람의 무릎 위에 올라갔다. 이들은 떠나려는 모양이다. 어디로 가는 걸까? 나는 사람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Hil Tio."

그렇게 말하며 내 생명선을 세 사람들에게 건네 준 그는, 무릎을 구부려 내 머리를 쓰다듬고는, 어디론가 달려갔다. 잠시 후, 그는 무언가 가득 들어 있는 커다란 주머니를 가지고 다시 나타났다. 그는 그 주머니를 괴물의 안에 싣고, 자신도 들어가 앉았다. 나는 망루 녀석을 돌아보며,

"어디로 가는 걸까?"

하고 물었다. 망루 녀석도 고개를 갸웃했다.

"모르겠는데?"

"남쪽으로 가는 거야."

대신 대답해 준 동물은 어디선가 나타난 간지 삼촌이었다. 우리는 삼촌을 돌아보았다. 삼촌은 상처를 많이 입었지만, 이 곳 사람들이 삼촌의 상처에 무언가를 발랐고 그는 조금 회복된 기색이었다. 망루가 삼촌에게 물었다.

"남쪽...?"

"아마 그리 멀리 가지는 않을 거야. 내 '친구'가 그러는데, 이 곳 남쪽에서, 저들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대."

"혹시 '바다'로 가는 걸까요?"

나는 불쑥 물었다. 삼촌은 "잘 모르겠는데?" 하고 말했다. 나는 한 쪽 입술을 올리며 곰곰 생각하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내 생명선은 어느새 다시 그가 잡고 있었다. 그가 나에게 뭐라고 말을 했다. 나는 귀를 쫑긋거리며 그의 말을 듣다가, 그의 발 밑으로 다가갔다. 그가 나를 들어 올려 품에 안았다.

나는 망루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녀석은 나를 보며,

"너도 가?"

"응. 나도 가."

"...그래."

"너도 가자."

"......"

"가자."

녀석은 바로 결정하지 못하고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고민하다가, 삼촌을 흘깃 돌아보았다. 삼촌은 고개를 끄덕이며,

"언젠가는 또 만나겠지."

하고 말했다. 그래도 녀석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허공만 노려보고 있는 녀석에게, 나비가 다시 날아왔다. 나비는 녀석의 코 끝에서 맴돌았고 녀석은 그런 나비를 약간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잠시 후, 녀석은 풀쩍 뛰어 올라 내 옆에 앉았다. 삼촌은 어디론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네 발 달린 괴물이 부르릉, 하며 온 몸을 떨더니,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도 긴장되는 마음에 잠시 몸을 떨었다. 망루 녀석이 그런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언제부터 바다를 그렇게 좋아하게 된 거야?"

하고 물었다.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대답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배시시 웃었다. 녀석은 그런 나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네 명의 사람과, 세 마리의 동물과, 한 마리의 큰 짐승은, 바다를 향해 질주했다.

 

--

바다를 꿈꾸는 유랑극단

3막 24화 (3막 완결)

2019.04.12.

낮아짐 이야기제작소

 

늘 고맙습니다.

 

4막에서 뵈어요. ^^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