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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화 -

 

 

 

 먹구름이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해서 그 고양이를 발견하지 못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어떤 고양이가 풀숲 사이에서 튀어 나와서는, '황소'의 꼬리를 덥석 물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황소는 화들짝 놀라서, 비명을 지르며 온 몸을 휘저었다. 하지만 그 고양이는 악착같이 매달려 있었다. 이리저리 휘날리는 녀석의 털은 들고양이답지 않게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녀석이 떨어지지 않자 황소는 더욱 펄쩍펄쩍 뛰었다.

 다른 고양이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모두 일곱 마리였다. 녀석들은 모두 악에 받쳐서 그르릉 대고 있었다. 나는 저 녀석들이 '미로' 무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나는 망루를 흘깃 돌아보았고 망루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리 중 한 녀석을 가리켰다.

 "저 녀석이 '샤넬'이야."

 무리 중 유난히 거드름을 피우는 녀석이 있었다. 다른 고양이들이 황소를 둘러싸는 동안, 녀석은 배를 땅에 대고 유유자적했다. 무언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Ir! Tho Hoppl Rei Minokos?"

 황소의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고양이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쫓아내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녀석들은 들고양이들답게 기세가 등등했다. 그는 주춤하며 물러섰다. 그의 주변 사람들이 어쩔 줄 몰라하며 웅성거렸다. 그동안 간지 삼촌은 자세를 낮추고 '샤넬'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살기등등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샤넬은 간지 삼촌을 본 체 만 체하며,

 "공격해!"

 하고 흉악한 기세로 외쳤다. 그러자 무리 중 몇몇 고양이들이, 딱딱하지만 날렵한 동작으로, 몸을 움직였다. 황소가 제자리에서 미쳐 날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녀석들은 황소의 배를 잽싸게 할퀴었다. 황소가 고통스런 울음을 내질렀다. 간지 삼촌은 괴성을 지르며 샤넬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샤넬은 여전히 유유자적했고, 고양이 두 마리가 어디선가 잽싸게 튀어나와서 삼촌의 앞을 가로막았다.

 "뭐지?"

 간지 삼촌은 이를 악물며 외쳤다. 망루도 "처음 보는 녀석들인데?" 하고 중얼거렸다. 저 무리는 계속 불어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생각할 겨를 없이, 그 고양이들은 간지 삼촌에게 다짜고짜 달려들었다. 한 녀석이 공중으로 도약하더니 삼촌을 향해 내려오며 앞발을 휘둘렀다. 그 공격은 얄궃게도 삼촌의 하나 남은 성한 눈을 향하고 있었다. 삼촌은 뒤로 펄쩍 뛰어 가까스로 피했지만, 나는 그 앞발의 발톱이 삼촌의 눈 언저리에 닿았음을 알았다. 삼촌의 얼굴에서 피가 흘렀다. 삼촌은 다시 한 번 이를 악물며, 그 녀석에게 달려들어 머리를 후려쳤다. 일대 혈투가 벌어졌다. 망루와 다시다는 삼촌을 도우기 위해 달려갔고, 나도 달려가서 이빨을 드러냈다.

 황소는 계속 상처입고 있었다. 황소의 꼬리를 문 고양이는 악착 같았다. 저러다가는 잘려 나갈 것만 같았다. 황소는 발길질을 하며 녀석들을 공격했지만 녀석들은 잽싸게 피했다. 황소가 덩치는 컸지만 속도에서는 상대가 안 되었다.

 큰 짐승들이 다시 일어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전율했다. 일은 단단히 벌어졌다. 검은 딱딱한 사람들이 '방패'를 다시 높이 들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달려가서, 맹렬히 짖기 시작했다.

 우리 보금자리의 사람들은 긴장하여 웅성거렸고, 몇몇 이들이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검은 딱딱한 사람들은 눈빛을 살벌하게 빛낼 뿐이었다. 나는 거의 울부짖듯 짖다가, 이번에는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여차하면 달려들 생각이었다.

 뒤 쪽에서, 발자국 소리가 났다.

 나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또 다른 고양이 두 마리가 나타났다. 한 녀석은 '크림' 녀석이었는데, 다른 한 마리는...

 나는 저렇게... '예쁜' 고양이는 처음 본다고 생각했다.

 저 녀석이... '미로' 구나. 녀석은 우리들의 혈투를 마치 감상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눈에서 불똥이 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미로는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결국 발견하지 못했군."

 하고 말했다. 크림은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너도 대단하다. 그 일을 아직까지..."

 미로는 피식, 코웃음을 치며,

 "쥐 주제에, 나를 능멸했으니. 분명 여기 어디서 엿보고 있을텐데..."

 하고 두리번거렸다. 그 모습이 어이없게도 무척 우아했다. 나는 입을 떡 벌리며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함성 소리가 들려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나는 다시 검은 딱딱한 사람들에게로 휙 몸을 돌렸다.

 그들이 함성을 지르며, 우리 보금자리 사람들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쿵, 쿵, 쿵, 하며 일정하게 열맞춰 오는 발자국 소리.

 우리 사람들의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겁을 먹고 있는 것이다. 나는 검은 딱딱한 사람들에게 고래고래 짖었다. 내 눈에서 눈물이 흩뿌려지고 있었다.

 한 사람이 나를 걷어찼다.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너무 가까이 접근한 모양이다. 나는 공중에 붕 떠올랐다가, 털썩, 하며 땅에 곤두박질쳤다. 이거,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입에서 거품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콜록거리며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맹렬히 짖었다.

 누가, 좀, 도와 줘!

 목이 쉰 것 같았다. 내 생애 이렇게 간절하게 짖어 본 적이 없다.

 

 다른 인간이 나에게 '방패'를 휘둘렀다. 나는 그걸 피하다가, 돌뿌리에 걸렸는지 그대로 나자빠졌다. 하지만 쓰러져 있을 틈이 없었다. 나는 다시 벌떡 일어나서, 송곳니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목이 완전히 쉬어 버렸다.

 그 인간이 약이 올랐는지 이번엔 다시 발길질을 했다. 나는 그 발에 맞고 다시 몸이 붕 떠올랐다. 땅에 곤두박질치며, 나는 누구라도 좋으니 한 번만 도와달라고, 다시 고래고래 외쳤다. 입에서 거품이 보글보글 끓어올랐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어느 틈에, 나는 폴싹 쓰러졌다.

 

 저 멀리에서, 노랫소리가 들린다.

 처음 듣는 노래다. 뭐라고 하는 거지? 나는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 흥얼거림만이 계속 귓전에 맴돌았다. 따뜻하고, 슬픈 음색이었다. 나는 계속 귀를 기울였다.

 알이... 알이랑...

 알아리가 낳았네...

 따뜻하고... 슬펐다.

 

 보고 싶다. 나의 주인.

 "정신이 들어?"

 배 쪽에 고통이 밀려왔다. 나는 낑낑거리며 눈을 떴다. 망루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녀석의 얼굴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그리고 온 몸은 홀딱 젖어 있었다. 아. 그렇구나. 비가 오고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려 했다. 그러자 다시 배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맞아, 아까 걷어차였었지. 나는 다시 폴싹 주저앉으며,

 "싸움은?"

 "다 끝났어. 안심해."

 그렇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너, 얼굴이 왜 그래?"

 하고 물었다. 그러자 녀석이,

 "별 거 아냐."

 하며 헤헤 웃었다. 오랜만에 보는 웃음이었다. 그 날은 눈이 오는 날이었다. 나는 다시 비틀비틀 일어나서, 앞발을 들어, 녀석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고양이가 물에 젖으면 얼마나 비참한 지 알아?' 그러자 녀석이, 샐쭉 웃었다.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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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를 꿈꾸는 유랑극단

 3막 23화

 2019.04.08.

 낮아짐 이야기제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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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해야 해서, 이번 편은 유독 힘들었습니다.

 이래 봬도 이게 여섯 시간 동안 쓴 글이예요 ㅠ_ㅠ

 이제 다음 편을 끝으로 <바다를 꿈꾸는 유랑극단> 3막이 마무리됩니다.

 시원 섭섭하네요. 아, 힘들었다 ^^;;;

 

 늘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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