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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화 -

 

 

 

"너... 어떻게 우리 보금자리를 알았지?"

 

"설명할 시간 없다. 저 녀석 지금 상태가 어... 얘기 안 해도 된다."

 

나는 '넷' 녀석을 바라보았다. 주위의 모든 것을 파멸시킬 기세로 으르렁거리고 있는 덩치 큰 들개를 바라보며 침착함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았다. 여기로 달려오기 전, 오랜 잠에서 깨어난 영수(靈獸)님을 만나고 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꼬리를 내리고 도망갔을 것이다.

 

"살기(殺氣)..."

 

'셋' 녀석이 말했다. '하나' 녀석과 '둘' 녀석, 그리고 나까지 모두 네 마리의 짐승들은 '넷' 녀석과 대치하는 형국으로 마주 보고 있었다.

 

"그건 기(氣)가 보이지 않아도 알아. 딱 봐도 다 물어뜯을 기세잖아. 갑자기 왜 저러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 녀석이 넷 녀석을 주시한 채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셋 녀석은 부연설명했다.

 

"자신을 향한 살기(殺氣)라고."

 

나를 제외하고 모두는 충격에 휩싸였다. "자신을 향한? 미친 거 아냐!" 둘 녀석이 비명같은 외침을 질렀다. "셋, 동물은, 자... 자신을 죽이는 짓은 하지 않아." 하나 녀석이 애써 침착하게 일렀다.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니다. 돼지들이 호수로 뛰어드는 모습을 종종 목격했었다. 나는 눈을 돌려 다시 넷 녀석을 바라보았다.

 

해치(獬豸)님의 말이 맞았다.

 

 

 

"달려오느라 예(禮)를 차리지 못함을 용서하십시오."

 

"그래."

 

"지금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요?"

 

"귀신(鬼神)들이 몰려왔다. 허나 걱정 마라. 잡귀(雜鬼)다. 게다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당히 약해졌다."

 

"제가 듣기로는... '큰 짐승'과 '귀신'의 혼종(混種)이라고 합니다."

 

"큰 짐승? 나는 그런 거 모른다. (하품하며) ...내가 잠을 너무 오래 잤나?"

 

"...외람된 말입니다만, 풍채도 그렇고 전혀 여기 계실 영수(靈獸)님이 아니신 것 같습니다."

 

"요 녀석 봐라, 내 눈을 봤군."

 

"...죄송합니다."

 

"쫓겨났다."

 

"예?"

 

"한양(漢陽) 도성(都城)에서."

 

"'한양'?"

 

"나중에. 일단 가라."

 

"제가 가서 무엇을... 저는 축귀(逐鬼)는 할 줄 모릅니다."

 

"축귀는 내가 한다. 너는 가서 그것들과 리(離)를 유지해라."

 

"......"

 

"그리고, 보자... '큰 짐승', 혹 고것들이 '큰 짐승'이 된 것인가?"

 

"......"

 

"(혼잣말하듯) 그런 것 같지?"

 

"......"

 

"나는 요지경(搖池鏡)을 찾으러 천마지(天馬池)로 간다! 가라, 늦지 않게 도착하겠다!"

 

"알겠습니다."

 

"고양이! 명심해라. 리(離)야말로 - 그야말로 - 소중한 것이다!"

 

 

 

"...죽인다..."

 

넷 녀석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하나 녀석이 발끈하여 외쳤다.

 

"이 자식이 보자보자하니까!"

 

하나 녀석은 곧 땅을 박차고 달려들을 기세였다. 그 순간(瞬間), 나는 또 머릿속이 핑, 하고 돌았다. 이거, 안다. 영상(映像)이다. 나는 흘깃 꽃나무를 바라보았다.

 

두 녀석이 맞붙는다 - 혈투를 벌인다 - 핏방울이 비산한다 - 헉헉거리는 숨소리 - 하나 녀석이 이긴다 - 그러나 둘 다 죽는다

 

삼촌, 이거 우리가 한 시뮬레이션(simulation)이야.

 

"기다려."

 

나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하나 녀석이 멈칫했다.

 

"왜?"

 

"다가올 때까지."

 

녀석은 눈만 꿈뻑꿈뻑했지만 금방 무슨 말인지 이해한 눈치를 보였다. 곧 우리는 거의 목석(木石)이 되어 기다렸다. 나는 다시 말했다. "맞붙지 마. 기다리자." "다가오면 죽여야지." "하나, 넌 너무 급해. 저번에 그 사람도 그래서 죽였지?" "셋, 닥쳐."

 

"크르르르..."

 

넷 녀석이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분명 살기등등한 눈이었지만, 그 이면의 당혹감을 읽을 수 있었다. 왜 덤벼들지 않는가. 나는 죽고 싶단 말이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당혹은 방향성을 오해한 분노로 바뀌었다.

 

녀석은 훌쩍 뛰어올라 우리의 코 앞에서 착지했다. 하나 녀석은 움찔해서 다시 송곳니를 드러내보였고 둘 녀석은 조금 뒤로 물러섰다. 셋은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가만 서 있었다. 나는 말했다.

 

"녀석이 목덜미를 공격하려 하면, 뒤로 뛰어."

 

"지금 공격해야..."

 

"안 돼."

 

하나 녀석은 매우 놀랐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셋 녀석은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지금 넷 녀석은 자기가 죽고 싶어하며 동시에 그런 자기 자신을 깨닫지 못한다.

 

"냄새 나... 어머, 씹할 것들."

 

나를 포함하여 우리는 모두 충격에 휩싸였다. 넷 녀석의 목에서 전혀 엉뚱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그 꼬라지로 평생 냄새나 풍기면서 살아, 이 보지 똥구멍 같은 것들아."

 

"......"

 

"...'빌어먹을' 개년."

 

셋이 움찔했다. 거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고 있었다. 나는 처참한 기분을 느끼며, 그림자를 들어올렸다.

 

오랜만이군.

그래.

무엇을 잡아먹을까.

아니. 내 옆에 있는 이 암컷 들개를 감싸.

음? 이런 건 오랜만이군.

 

곧 내 그림자는 셋 녀석의 주위를 둘렀다. 음? 저거, 스커트(skirt) 모양처럼 되었다. 어쨌든 저건 셋이 지금 느끼고 있는 수치를 가려줄 것이다. 역시, 셋은 빠르게 진정되기 시작했다.

 

"젠장, 못 참겠어!"

 

결국 하나 녀석이 넷 녀석의 목덜미를 향해 아가리를 확 들이밀었다. 넷 녀석은 살짝 피했고, 하나의 이빨은 딱, 소리를 내며 허공에서 부딪혔다. 이번엔 넷이 같은 공격을 가했다. 하나도 흠칫 뒤로 피했다. 약간씩 뒤로 물러난 두 녀석은 다시 서로에게 아가리를 쏘아붙이려 했다. 나는 훌쩍 뛰어올라 앞발로 넷 녀석의 코를 때렸다.

 

불의의 공격에 놀란 넷 녀석이 다시 뒤로 물러났다.

 

나는 넷 녀석을 향해 온 몸을 곧추세운 다음, 짧을지언정 꼬리를 들어올리고, 저번에 나의 친구 녀석이 그랬던 것처럼 신령(神靈)을 실으려 애쓰며,

 

"'나가라'!"

 

하고 외쳤다. 축귀(逐鬼)다. 그냥 흉내내 본 것이다.

 

효과는 없었다.

 

아주 없지는 않았다. 넷 녀석은 조금 더 뒤로 물러났다. 표정이 요상하게 일그러졌다.

 

"크르르르... 고양이!"

 

 

 

"왜 리(離)가 소중한 것입니까?"

 

"흠? 재밌군. 귀신들은 '울' 밖으로 쫓겨난 한(恨)이 맺혀있기 때문이다."

 

"우리 밖으로?"

 

"정확히는 체계적으로 오도한 것이다. 귀신은 어느 날 갑자기 '들리는' 게 아니다. 귀신들의 모의는 끈질기다. 그들에게 올바른 거리감(距離感)을 인식시켜, 강이나 바다로 보내 성불(成佛)하게 한다."

 

"어떻게 거리감을 인식시키는 것인지 여쭤봐도 되겠..."

 

"공포감을 심어줌으로써."

 

"......"

 

"그들이 애써 외면하는 그것 말이다."

 

 

 

넷 녀석은 다시 훌쩍 뛰어올랐다. 이번엔 뒤쪽이었다. 물러나는 건가? 눈동자가 상당히 흔들리고 있다. "으으으... 육시(六屍)를 할!" 넷 녀석은 짓눌린 듯한 신음소리를 내고는 다시 뒤로 돌아 더 멀리 물러났다.

 

"다가가자!"

 

나는 외쳤다. 모두는 어안이 벙벙해서 외쳤다.

 

"맞붙지 말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다가가자고?"

 

"이대로 놔두면 저 녀석을 놓치게 된다!"

 

이해시킬 시간은 없지만 세 들개는 그런 나의 사정을 이해했다.  우리는 재빠르게 몸을 움직여 넷 녀석에게 다가갔다. 넷 녀석은 우리를 보고 기막혀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저 녀석이 주구장창 말했던... 빌런들 중 하나인가 보군? 뭐지? 귀신?"

 

"맞아."

 

셋 녀석이 물었고 나는 대답했다. 셋 녀석은 침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귀신에게 '들렸다'는 게 이런 거구나... 무시무시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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