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 5화 -

 

 

 

"우리 간(干) 모 씨께서 태어나고 얼마 안 되어, 내가 글을 하나 썼지."

 

"'글'이 뭡니까?"

 

"말을 '볼 수 있게' 한 것이라네."

 

"음...? 말을 '볼 수 있다'고요? 굳이 말을 '볼' 필요가 있습니까? 귀로 들으면 되는..."

 

"호호, 그럼으로써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다네."

 

"으윽. 과문한 저로서는 이해가 잘 안 되는군요."

 

"간지(干支)."

 

"...예. 말씀하십시오."

 

"지금 발바닥이 뜨겁지?"

 

"...무척 뜨겁습니다. 어떻게?"

 

"자네는, 정말 흥미로운 고양이야. 수승화강(水昇火降)이란 말도 모르면서, 자연(自然)스럽게 행하고 있다니."

 

"......"

 

"오늘은 큰 짐승들하고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렇게 화가 났을꼬?"

 

"......"

 

"화(火)가 발에 다 내려가 있으니 그렇게 싸돌아다니고 싶을 수 밖에 없겠지."

 

"...음."

 

"호호호! 아이고, 귀여워라! 귀여워 미치겠네! 꺄하하하!"

 

"...지, 진정하십시오."

 

"아이고, 숨이야. 하, 진정하자. ...간지, 내가 자네를 늘 생각하고[思], 헤아리고[量] 있음을, 잊지 말게."

 

 

 

 

발바닥이 뜨겁다.

 

한 녀석이 줄기 끝에서 온 몸으로 떨어지면서 날카롭고 긴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비명은 갑자기 중단되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애벌레들은 서로에게 반갑게 웃으며, 어깨를 밀치고, 등을 밟았다. 신음과 비명과 한숨이 작게, 아주 작게 터져나왔다. 간혹 참다참다 폭발한 녀석이 있었다. 아까 높은 곳에서 떨어진 녀석도 그 중 하나였다.

 

녀석들은, 낙오자(落伍者)였다.

 

큰 짐승들이 어느새 주위로 몰려와 있었다.

녀석들은 내가 조금이라도 약해지면 귀신(鬼神)같이 눈치챈다.

나를 집어삼킬 참이었다.

 

그리고...

 

그런 게 상관없는...

 

문득, 그 꼬마 녀석이 그렇게 힘들어 했던 게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조금만 더 잘 했다면,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하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그런 일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큰 짐승들이 나를 '보고' 따라할 것까지 생각하지 못한

내 불찰(不察)이다-

 

한 녀석이 나를 향해 아가리를 벌렸다.

그러자 다른 녀석들도 하나 둘 그 아가리를 쩍쩍 벌렸다.

 

이제, 나는...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

 

나는 천천히 다가가 물었다.

 

"아까... 네트워크(network)라고 했지?"

 

이게, 내 목소리인가. 굉장히 느리고 어눌하다. 아니, 내가 느린 게 아니라 주변이 느린 것 같기도 하고...

 

꽃잎 녀석(들) 중 하나가 반가워하며 대답했다.

 

"네!"

 

"...그게... 뭐지?"

 

그러자 녀석(들)이 땀을 삐질, 흘린 것 같았다. 응? 몰랐었어? 라는 기색이었다. 큰 짐승들의 날카로운 송곳니에서 침이 뚝뚝 떨어졌다. bbuuiilldd... 그 타액이 내 어깨를 적시고 돌았다. 비가 오는 것 같았다. 나는 계속 물었다.

 

"그게 뭔지, 알려 줘."

 

그러자, 녀석(들)이 일제히,

 

"우리는 대지(大地)를 통해 연결되어 있습니다!"

 

"......"

 

"아스팔트(asphalt)와 콘크리트(concrete)를 밟고 사는 인간들은 절대 모릅니다!"

 

"......"

 

"기억하세요! 몸과 땅은 하나, 신토불이(身土不二)입니다!"

 

그 때였다.

 

발바닥을 감싸던 뜨거운 화기(火氣)가 땅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이건 마치, 뿌리를 내리는 기분? 나는 식물인 것도 아니면서... 대지는 가히 무서운 기세로 나의 발 병(病)을 빨아들였다.

 

이제 확실(確實)하게 알았다.

 

어깻죽지에서 뭔가가 돋아나는 느낌이다. 이게 뭐더라? ...어, 이건... 날짐승들만이 가지고 있는, '자유'의 상징이다. 그 겁 많은 고양이가 유독 좋아하는 까치 녀석들도 가지고 있는-

 

사라졌다.

 

'날개'가 사라졌다. 왜, 왜지?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큰 짐승의 이빨이 나의 목을 물어뜯기 직전이었다.

 

어디선가 날아 온, 나풀나풀거리는 나비 하나가 큰 짐승과 나의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다. 녀석은 우아하고 사뿐하게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아, 나도 방금, 잠깐이지만 저런 '날개'가 있었다.

 

꿈이었겠지.

 

이제 나는 죽는다- 모두,

안녕

 

"삼촌-! 그 녀석, 그 애벌레(였던 것)을 봐!"

 

"......"

 

"눈을!"

 

가녀리고 절절한 외침이 귀에 꽝꽝 울렸다. 사위(四圍)가 아까보다 더욱 느려졌다. 귀가 지나치게 따가울 지경이었다마는, 발이 딛고 서 있는 공간(空間)은 자신을 수축시킴으로써 나에게 무한정의 시간(時間)을 허하고 있음이다, 마음이 가난한 자[者]에게,

 

애벌레(였던 것)이 자신의 눈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내가 있어 세상이 아름다웠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에, 내가 던져졌던 것입니다.

그걸 깨달은 순간, 나는 기어오르기를 멈췄습니다-

그리고 기꺼이 번데기가 되는 길을 택했습니다

 

나는 큰 짐승에게 말했다.

 

"이봐."

 

"......"

 

"'build'는 그만하고,"

 

"...?"

 

"땅에 발을 붙이고 살 생각을 하는 게 어떨까?"

 

"...이..."

 

"...이... 병(病)신(身)아."

 

큰 짐승들이 모두 사라졌다.

 

모든 시공간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숲은 그 모습 그대로 있었다. 내 앞의 노란 꽃은 바람에 흔들리고, 애벌레들이 악전고투를 벌이고, "여긴 아무 것도 없잖아!", "멍청아! 조용히 해! 밑의 녀석들이 듣잖아!" 라는 말이 꽃잎 위에서 들려오고,

 

나비 한 마리는 날고

 

...꿈이었겠지-

 

 

 

 

 

- 6화에서 계속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