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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화 -

 

 

 

"지금부터는 '소도구'가 필요하다."

 

"'소도구'?"

 

"그래. 잠시만 기다려 봐."

 

앵무새 녀석은 후두둑 날아서 우리 주인에게로 다가갔다. 그러곤 주인의 볼에 부리를 비비고 온갖 애교를 떨더니만, 'Pekori'라고 말했다. 그게 뭐지? 까마귀 녀석과 나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앵무새 녀석은 우리를 바위 밑에 앉아 있도록 지시했다.

 

"이 바위가 '무대'다."

 

"'무대'?"

 

아까부터 처음 듣는 말만 하던 앵무새 녀석은 우리가 한심하다는 듯,

 

"인간들은 '손'이 있어서, '손 쓸 수 없게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역설적이지?"

 

"...아하?"

 

나는 이상한 감탄사를 내뱉었고 까마귀 녀석은 '그게 뭐야?' 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내가 예전에 따르던 주인들이 하던 기묘한 행위를 기억해냈다. 그들은 갑자기[甲子起] 눈빛이 변하고 갑자기 손(digit)을 움직임으로써 오히려 지켜보던 사람들을 '손 쓸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걸 오히려 좋아했다. 표정이 싱글벙글하다가 갑자기 심각해지다가 하는 등의... 그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거의 신비로울 지경이었다. 나는 이런 나의 생각을 더듬더듬 말했고, 앵무새 녀석은 영어를 꺼냈다.

 

"그걸 '리액션(reaction)'이라고 한다. 액션이 있으면 리액션이 있..."

 

"골치 아픈 영어는... 사절."

 

어쨌든, 앵무새 녀석은 시작했다. 바위를 '무대'삼고, 저 정체불명의 무언가를 '소도구' 삼고, 우리를 '리액션' 삼아.

 

"아. 배 불러.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갔다. 감사합니다!"

 

"그 꼬마 녀석의 목소리군."

 

까마귀 녀석이 말했다. 그렇다. 지금 앵무새 - 흉내지빠귀 녀석은 나의 꼬마 친구를 흉내내고 있다. 목소리 뿐 아니라, 상체를 숙이고 마치 네 발 동물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탄성을 질렀다.

 

"가만. 이건 뭐지?"

 

녀석은 '소도구' 앞에서 멈춰 섰다. 저게 뭐지? 우리는 위치를 바꾸어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그 곳에, 한 녀석이 더 있다?

 

"...?"

 

그런데 저 녀석, 뭔가 좀 이상하다? 앵무새 녀석을 똑같이 흉내내고 있었다. 뭐야, 저게? 바본가? 나는 재빨리 '무대'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놀랐다.

 

아무도 없다.

 

제자리로 돌아 온 나는 그... Pekori를 다시 바라보았다. 잘은 모르겠는데, 저 녀석은 저 안에 들어가 있는 것 같다. 앵무새 녀석이 말했다.

 

"오호호... 나는 너무 예뻐."

 

"......"

 

"이렇게 예쁜 나, 얼마나 좋니?"

 

"......"

 

어째 기괴하다.

 

"그런데, 이렇게만 살면 안 되지..."

 

"......"

 

"그 고양이랑 엮여서 말야, 내 신세가 이게 뭐냔 말야."

 

"......"

 

"에잇. 잠이나 자야겠다."

 

그리고는 녀석은 풀썩 드러누웠다. 잠이나 자려는 모양이다. 그리고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이봐... 내 말을 좀 들어 봐."

 

"누구 목소리지?"

 

"모르겠는데?"

 

까마귀 녀석과 나는 서로 중얼거리며 의아해했다. 지금 이 목소리는 누워있는 앵무새 녀석이 내고 있는 것이긴 한데, 누구를 흉내내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스르르르... 하는 소리가 섞여 났다.

 

"잘 때가 아냐. 스르르르..."

 

"으응? 뭐야? 누가 날 깨워..."

 

"이봐..."

 

"꺅! 누구... 으악!"

 

"안심해. 잡아먹으려고 온 거 아니니까."

 

"배, 뱀이ㄷ...!"

 

"진정하고, 내 꼬리를 봐."

 

"?"

 

"맛있겠지?"

 

"그건... '사과'?"

 

"그래... 이거 한 번 잡숴 봐..."

 

"마... 맛있어요?"

 

"맛이 문제가 아냐."

 

"그러면...?"

 

"이 사과를 먹으면, 너의 수생(獸生)은 앞으로 번쩍번쩍 빛날 것이다."

 

"......"

 

"지금 이대로 살기 싫지? 한 번 뿐인 수생인데 말이야."

 

"......"

 

"자기 자신이 너무 불쌍하지 않니?"

 

"......"

 

"이걸 먹어. 그러면 모든 게 해결된다."

 

어... 엄청난 몰입감이었다. 까마귀 녀석과 나는 '손'이 없지만 충분히 몰입하고도 남았다. 그리고, 앵무새 녀석은 "여기까지."라고 말했다.

 

"여기까지?"

 

"그래. 여기까지."

 

"뭐야. 저 '사과'를 먹는지 안 먹는지 보여줘야 할 것 아냐."

 

"안 돼. 그건 다음 시간에."

 

"......"

 

까마귀 녀석은 더 따지려 했지만 내가 앞발을 들어 제지했다.

 

"멋진 시공간이었다. 흉내지빠귀."

 

"고마워. 이 맛에 산다."

 

나는 빙긋 웃은 다음, 이제 까마귀 녀석에게 그만 쉬자고 제안했다. 녀석은 날개를 푸득거린 다음, 다소 툴툴거렸지만 까마귀 무리에게 '이제 해산'이라고 지시했다.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아까 늘어지게 낮잠을 잤지만 지금 또 잠깐 자고 일어났다. 달이 하늘에 휘영청 걸려있었다. 느릿느릿 걸어, 호수에 도착했다. 그리곤 앞발을 모아 다소곳이 앉았다.

 

뛰어든다(dive?).

 

역시, 한 마리의 돼지가 달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녀석의 눈을 바라보았다. 귀신(鬼神) 들렸다. 그 심연을 바라볼 필요도 없었다.

 

저 호수 밑바닥에... 사체가 얼마나 되려나...

이 비참함은 언제까지 계속되는가.

 

비극(悲劇)이 가득하군...

 

아, 왔나. '비극'이 뭐지?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다.

 

너는 어떻게 과거로 돌아와 나에게 말을 걸 수 있는 것이지?

 

시공간이란 어디까지나 인간들의 사고방식이지. 그들만큼 무지(無知)한 자들이 있을까?

그들의 사고방식대로 사고하지 마라.

 

좋아. 뭐. 알았어. 그런데... 그렇다면 내가 겪을 일에 대해 왜 그렇게 속 시원히 이야기해 주지 않는 거야?

 

이야기 해 줄까?

 

...아니, 아니다. 하지 마. 재미없을 것 같아.

 

그래. 바로 그거다.

 

좋아. 나중에 또 보자.

 

나는 대화를 종료하고, 우리의 임시 보금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또 잠이 들었다.

 

참새들과 까치들이 발랄하게 지저귀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어느새 아침이 되었다. 어지간히도 잤다. 그리고 나는 귀를 쫑긋했다. 녀석이 오고 있었다.

 

"삼촌, 잘 잤어요?"

 

녀석이 활기차게 인사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게 뭐야?"

 

녀석은 그 작은 발에 어떤 '조각'을 안고 있었다. 그리고 볼도 불룩했다. 녀석은 그걸 내놓으며, 말했다.

 

"이거 먹어봐요. 사과 조각이야."

 

"흐음. 옛날 생각나는 군."

 

"잡숴 봐."

 

"맛있나?"

 

"맛이 문제가 아냐."

 

"으음?"

 

"이걸 먹으면, 삼촌은..."

 

"......"

 

녀석은 뜸을 들였다. 뭔데 그래. 나는 짐짓 태연하게 기다렸다.

 

잠시 후, 녀석이 아주, 비, 비, 극(劇)... 극... 비극...?

...아주, 극(劇), 적(的)으로 말했다.

 

"이걸 먹으면, 삼촌, 당신은 말이야..."

 

"......"

 

"전지(全知)하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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