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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화 -

 

 

 

"뭐하나 했더니 여기서 시간을 죽이고 있네 ㄷㄷ"

 

나는 눈만 꿈뻑거리며 녀석을 바라보았다. 오랜 노숙 생활을 녀석과 겪으면서 느꼈던 것이지만 녀석은 언제나 털이 정결하고 깨끗했었다. 지금도... 물론 그러하였다. 나는 녀석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눈, 심연을 오래도록 바라본 적이 있다.

 

"가자, 뭐 해."

 

녀석이 말했다. 내가 여전히 머뭇거리자 녀석이 나의 등을 툭 쳤고, 첫 걸음이 툭 움직였다. "ㅋㅋ" 녀석이 웃었다. 아까부터 녀석의 말은 부분부분 잘 못 알아듣겠다. "ㅅㅂ... 인생은 큰 짐승처럼... ㅎㅎ" 그 위화감에 나는 다시 멈칫했다. 녀석이 멀뚱히 바라보았다.

 

"......"

 

"아이고, 이 답답아."

 

"...으엉?"

 

"네가 그러니까 허구헌날, 그 모양 그 꼴인 거다."

 

"......"

 

"한 쪽 눈은 날아갔지, 꼬리는 어따 팔아먹었지, '개'고생은 직쌀나게 하지, 알아주는 사람은 없지."

 

"......"

 

"그러지 말고 가자, 극락으로."

 

나는 내 마음의 어딘가가 확 낮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자, 어, 갑자기[甲子起] 높아진다.

 

"그래."

 

애써 마음을 추스리며 말했다. 녀석은 웃었다. 우리를 주시(注視)하던 '거대한 큰 짐승'도 웃었다- 웃은 것 같다.

 

잘잘했했다다......

 

"... 때, 땡큐, 서."

 

영어(英語)로 대답한 다음, 몸을 완전히 돌려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지 마!"

 

뒤에서 뭔가가 소리쳤다. 내 귀가 움직였다.

 

"가지 마! 너 가면 죽는다!"

 

너라니, 지긋한 나이의 삼촌한테...

 

"어차피 십 리?"

 

"...응?"

 

"십 리 정도도 못 가서, '발 병(病)' 난다! 내가 귀신 종이 오백 원 건다!"

 

나는 기어이 뒤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그건 종이 아닌..."

 

"가지 마! 가면 나락이야!"

 

"......"

 

걸음을 완전히 멈췄다. 나의 조그만 친구가 슬픔과 분노가 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야말로 엉거주춤, 어정쩡한 자세가 되어버렸고, 그 모습 그대로 중얼거렸다.

 

"가지 않는 게..."

 

"이런 멍청한 자식!"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렸다. 마치 사방에서 들리는 것 같은 그 소리에 나는 움찔하여 그 눈치만 바라볼 뿐이었다. 마치 한 여름의 태양 같다. 나는 앞다리를 벌벌 떨며 어디 있는지 모를 녀석의 눈치만 살폈다.

 

"밉다 밉다 하니까 미운 짓만-"

 

당황하지 말고

이럴 때는,

그 눈...

심연(深淵)을...

 

 어?

 

 

나는 바다 녀석에게 물었다.

 

"이봐."

 

"왜?"

 

"...그 눈깔 말야."

 

"뭐!"

 

"눈깔."

 

"뭐? 내 눈ㄲ... 눈?"

 

"그래, 어디다 '팔아먹었어'?"

 

"뭐라는 거야, '짝눈병신'이."

 

"...아, 으하하, 옛날에 우리가 잡아먹던 생선 있잖아?"

 

"뭐? 동태?"

 

"고등어야, 밥팅아."

 

"......"

 

"네 눈깔 꼭 고등어 눈깔 같...

 

갑자기 녀석이 꼬리를 휙 치켜세웠다. 나는 말을 멈추어야 했다.

 

나는 몸을 휙 돌려 달려갔다.

 

"잘 했어요! 삼촌!"

 

나를 애타게 바라보던 작은 꼬마가 외쳤다. 나는 한 걸음에 달려 녀석을 끌어안았다. 이 힘에 겨워 우리는 우당탕탕 나뒹굴었다. 녀석이 목이 메어 외쳤다.

 

"잘 했어!"

 

"으하하하!"

 

"잘 했어! 이 멍청아!"

 

그래, 그래.

 

그런데...

 

 

 

 

 

"자면서. 아주 난리 'blues'를 춘다."

 

"으으으..."

 

나는 욱씬거리는 머리를 앞발로 쥐어감싸며 일어났다. 왜 아프냐, 이거...

 

"지금 상황은?"

 

"한바탕 꿈."

 

까마귀 녀석이 간단하게 정리해줬다. 그렇다. '꿈'이다. 오랜만에 '꿈'을 꾼다.

 

"비몽사몽(非夢似夢)이군..."

 

"'밤이 선생이다'. 좋은 꿈으로 귀결될 것."

 

"으음..."

 

"빨리 몸 핥고. 정신 차려. 곧 전서구(傳書鳩) 도착함."

 

"전서구? 누가 보내는?"

 

"너의 '늑대 신'."

 

화들짝 정신이 들었다. "으음?" 그때부터 나는 부랴부랴 몸을 핥고 정성스레 단장하고 우리 주인들이 주었던 이파리로 몸을 부비고 앞발을 모은 단정한 자세로 전서구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 사이 까마귀 녀석은 주위에 있던 몇 마리의 까마귀들을 울음소리로 불러모았다. "지금부터 일어나는 일. 잘 지켜보라."

 

곧 입에 서신(書信)을 문 비둘기가 도착했다.

 

"너희 중, 글을 읽는 녀석이 있나?"

 

전서구 녀석은 먼 거리를 달려왔을 텐데도 전혀 지친 기색없이 머리를 치켜든 채 말했다. 우리 중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좋아. 글 깨나 읽는 내가 대신 읽어주겠다. 특히 너, 고양이 녀석, 잘 들어라."

 

"네."

 

나는 머리를 조아렸다. 곧 전서구 님은 서신을 - 이파리에 잎맥으로 글씨를 쓴 - 땅바닥에 놓고 읽기 시작했다.

 

"친애하는 나의 친구, 간지(干支), 아니, 이제 '동네 삼촌'이라 불러야 하나? 호호.

어쨌든 이 아줌씨는 그대가 무척 보고 싶네.

요점만 말하겠네.

지금 그대가 있는 곳의 들개들이- 오늘 밤 민가(民家)를 습격할 조짐을 보이고 있네.

닭과 병아리들의 피해도 크겠지만

그것들의 주인들의 피해도 만만치 않으리라 생각되네.

내가 기회가 되는 대로 들개 녀석들을 달래고 나름의 먹을 것을 마련하고

또 푸드 코트(food court)를 조성할 계획도 있으니

일단

그대와 그대의 일행들은 녀석들의 습격을 방지하게.

잘 하리라 믿네.

 

p.s.

그대의 곁에 앵무새 한 마리가 있지? 녀석에게 일의 행방을 묻게.

녀석은 대답할 걸세. 워낙 말하고 싶어하거든.

 

"요즘은 늑대 신님도 영어를..."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까마귀 녀석은 재빠르게 우리의 행동을 결정했다.

 

"저 녀석에게, 빨리!"

 

그 소리를 듣고 우리 일행은 재빨리 앵무새 녀석에게로 달렸다/날았다.

앵무새 - 흉내지빠귀 녀석은 우리가 갑자기 오자 깜짝 놀라,

 

"뭐... 뭐냐?"

 

"묻자."

 

"?"

 

"네가. '말하고 싶은 게'. 있지?"

 

까마귀는 다그치듯 말했다. 그러자 앵무새는 까마귀를 아주 인상쓰며 노려보더니,

 

"'두 말하면 잔소리'다. 나는 말하고 싶은 게 아주 천지(天地) 삐까리다."

 

"좋아. 말해라. 우리에게. 해당되는 것을."

 

"누구의 뜻이지?"

 

"뭐?"

 

까마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앵무새는 질문을 이어갔다.

 

"내가 말해야 한다면 그건 누구의 뜻이냐. 말해라."

 

"그런 것도 따진다고?"

 

"우리가 '병신(病身)'인 줄 아나?"

 

어? 발 병(病)?

 

"...'늑대 신'님. 이다."

 

"...늑대 신이 누구야?"

 

앵무새는 새침하게 말했고 우리는 어안이 벙벙했다. 까마귀 녀석은 이 신성모독에 곧 그 까만 깃털이 붉으락푸르락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조마조마하여,

 

"우리를 도와주고 계신 신님이다. 너는 누구의 뜻을 받들지?"

 

하고 물었다. 앵무새는 내 말에 찡그렸던 미간을 풀었다. 그리곤 나를 보더니,

 

"나는 나의 주인만을 받들 뿐이다."

 

주인이라 함은... 지금 어깨를 빌려주고 있는 인간을 말하는 건가? 이런 성향은 '댕댕이'들의 성향과 비슷하군.

 

"말하라면 말할 것이지, 감히 흉내나 낼 줄 아는 금수 주제에..."

 

까마귀 녀석은 여전히 화(火)를 감추지 못하여 말이 많아졌다. 나는 앞발을 녀석의 머리에 대어 진정시킨 다음,

 

"좋아."

 

하고, 스커트(skirt)를 두르고 있는 나의 주인에게 다가갔다.

 

"Umij?"

 

주인은 약간 놀란 기색이었다. 나는 '그녀'의 볼에 내 볼을 가져다대었다. 주인은 여전히 놀라고 있었지만 곧 밝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호. 놀랍군. 눈이 하나밖에 없는 병신 주제에."

 

앵무새 녀석이 감탄하여 말했다. 우리는 애써 기대를 감춘 눈으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나의 주인을 기쁘게 했다. 아주 좋다."

 

"그렇다면..."

 

"그래."

 

우리는 이제 기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녀석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목을 가다듬었다.

 

잠시 후, 전혀 엉뚱한 목소리가 저 목에서 나왔다. 굉장히 예쁜 목소리였다. "예쁜 목소리네." 하고 나는 같이 있는 감상자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말을 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아름답진 않아." 푸하, 아직도 화가 나 있나, 물론 나도 조금 화가 나 있긴 하지만... 나는 다시 앵무새를 바라보았다. 앵무새는 계속 말하고 있었다.

 

예쁘면 됐지. 만족한다.

 

"...'이, 빌어먹을, 삼촌, 이 '개'새끼.'"

 

"......"

 

나는 눈만 꿈뻑거렸다. 예쁘면 됐지. 아름답진 않지만.

 

까마귀 녀석이 아주 잔인하게 상황을 정리해주었다.

 

"너의 작은 친구, 그 꼬마 녀석의 목소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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