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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화 -

 

 

 

"그게 좋은 거야?"

 

나는 재차 물었고 그러자 녀석이 갑자기 - 약간 발작하듯이 - 말했다.

 

"그래! 삼촌, 늑대신 아줌마처럼 되는 거야!"

 

으음. 나는 입을 일 자로 앙다문 다음, 짐짓 곰곰이 생각에 잠긴 모습을 취했다.

 

"그래? 한 번 먹어볼까?"

 

녀석의 눈이 번쩍였다. 나는 '조각' 하나에 코를 대 보았다. 녀석의 동글한 눈동자가 좁아졌다. '조각'에서는... 시큼하고, 매혹적인 향이 났다. 애초에 이걸 '사과'라고 착각한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Pekori."

 

나는 중얼거렸다. 그러자, 녀석이 일순 움찔했다. 그러나 녀석은 이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응?"

 

하고 물었다. 나는 여전히 '조각'의 향을 맡으며,

 

"아, 'Pekori'라고 어디서 들었는데, 저기 있네."

 

나는 눈짓으로 어느 방향을 가리켰다. 녀석의 눈동자도 그 방향을 따라갔다.

 

"어, 진짜 저기 있네."

 

"반딱반딱 빛나네."

 

"저거 되게 신기한 거야."

 

"이제 알아. 물빛에 비췬 모습을 보는 것 같은 거지? 요즘은 맑은 물을 찾기가 영 힘들어서 원-."

 

"나 잠깐 갔다 올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은 씽, 하고 신나서 달려갔다. 향을 많이 맡아서 그런가 조금 어지러워, 나는 고개를 흔들고 기지개를 폈다. 저 멀리서 비둘기들이 옹기종기 모여 '모이'를 먹고 있었다. 이 시간쯤 되면 어떤 사람이 비둘기들에게 모이를 던져주곤 했다.

 

잠시 후, 녀석이 볼이 발그레해져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곤 '조각'의 개수를 확인했다.

 

"먹었어?"

 

"응."

 

"어때?"

 

"아무렇지도 않은데."

 

"...?"

 

녀석은 '이럴 리가 없는데...' 하는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내보였다. 나는 일순 비틀거리며,

 

"약간 어지러운... 하기도 하고..."

 

"아아! 비'듈'기 리포터입니다!"

 

그때, 우리의 비'듈'기 리포터가 도착했다. 꼬마 녀석과 나는 녀석을 바라보았다. 이제 '리포터'가 시작되는 것이다. 모이를 먹던 비둘기 녀석들 중 상당수가 푸드득, 하고 날아왔다.

 

리포터는 목을 가다듬고, 말하기 시작했다.

 

"속보입니다! 평소 많은 신망을 얻었던... 애꾸눈 고양이 '간(干) 모'씨가, 방금 금단(禁斷)의 열매를 먹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간 모 씨는 일명 '삼촌'으로 불리우던 고양이로, 큰 짐승과의 싸움에서 종종 이겨왔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러자, 비둘기 무리 중 일부가 - 기다렸다는 듯이 - 외쳤다.

 

"얼굴을 공개하라!"

 

"사형에 처하라!"

 

"가해자 수권(獸權) ㅅㅂㅋㅋ"

 

"'사과' 사범들은 다 죽어야 돼."

 

땀이 삐질, 하고 났다. 나는 꼬마 녀석을 찾았지만, 녀석은 언제 도망쳤는지 보이지 않았다.

 

"스커팅(skirting), 완... 료. 이게. 뭐냐..."

 

마침 까마귀 녀석이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다. 그리고 녀석은 적잖이 당황한 듯 했다. 다소 움츠리고 있는 내 주위로 비둘기 무리들이 둘러싸 시끄럽게 외치는 모습을 봤으니, 그럴 법도 하다. 나는 정신을 차리려 애쓰며 녀석에게 물었다.

 

"어... 어때...? 오감도(烏監圖)...?"

 

까마귀 녀석은 난처하다는 듯이 머뭇거리다, 겨우 대답했다.

 

"우리는. 도망쳐야 한다."

 

"?"

 

"까마귀 아해(兒垓)들... 중 일부도. 감염(感染)"

 

"......"

 

"무서운 아해와, 어, 빌어먹을, 무서워하는 아해와..."

 

"......"

 

"난리(亂離)."

 

"......"

 

"자. 내가 포위망을 뚫을 테니. 달려라. 저 숲에서 보자."

 

그리고는 녀석은 목이 터져라 울부짖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걸걸한 녀석의 울음소리가 신령(神靈)을 실어 터지자 거의 사자후(獅子吼)를 방불케 했다. 비둘기 녀석들이 움찔, 하고 물러났고, 나는 몸을 가속시켜 재빠르게 움직였다. 한 녀석의 옆으로 돌아, 잠깐 멈춘 다음, 뒤의 녀석이 쪼기 전에 도약하고, 착지 후 반대로 몸을 튕겨냈다. 디시 포위당하기 전에 몸을 힘껏 수축시켜 두 녀석의 다리 사이로 밀어넣었다.

 

"달려!"

 

까마귀 녀석이 외쳤다. 그러잖아도 달릴 셈이었다. 흘깃 뒤를 돌아보니 녀석은 비둘기들과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깃털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녀석은 흘깃 날아오른 것 같기도 하다. 달렸다. 봤다. 공중전도 살벌했다. 녀석은 그 와중에 거의 쉰 목소리로 외쳤다.

 

"숲에 가서. 꽃을 찾아!"

 

 

 

허락받은 햇살만 통과하는 숲 속에서도, 이 고양이 한 몸 누일 곳은 있었다.

 

나는 아무렇게나 자빠진 다음 따땃한 햇살을 온 몸으로 느끼며 방금 전의 일에 대해 생각했다. 짤뚱한 꼬리가 까딱거렸다. 심장이 터질 듯이 달렸기 때문에 나는 어쩌면 감긴 한 쪽 눈이 충격으로 다시 떠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다. 나는 충동적으로 몸을 뒤집었다. 다질(多質)의 성격 때문에 항상 마음의 여유를 상비하려 하지만, 여건이 어째 영 허락되지 않는다. 어쨌든 이건 필생의 의무다. '사과' 따위 먹으면 나는 난리난다.

 

시야에 노란 꽃 하나가 들어왔다.

 

이름은 잘 모르겠다. 노랗고 가녀린 꽃이었다. 화려한 꽃들이 많지만, 저이는 그저 수수하다.

 

꽃을 찾으라고 했었지.

 

나는 몸을 데굴데굴 굴려 그 꽃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꽃잎들이 나를 향해 환영의 몸짓을 보내 왔다. 흐음. 이런 적은 처음이라. 나는 인사했다.

 

"Hey."

 

그러자 녀석들이 까르르 웃었다. 나는 의아했다. 내 표정이 웃겼나 보다. 녀석들이 더 크게 웃더니, 말했다.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들 하니?"

 

"네에! 사실 얘기 다 들었어요."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방금 전의 일을 말하는 거지? 내가 말이 없자 녀석은 설명이 필요하다고 느꼈는지,

 

"우리 네트워크(network)는 대지를 통해 다 연결되어 있어요."

 

"그랴. 다만 너희는 타고난 정적 기질 때문에..."

 

나는 또 말을 멈췄다. 녀석(들)은 소리없이 웃는 듯 했다. 뭣이 좋은겨. 나는 앞발로 이마를 비비며, 물었다.

 

"그 녀석이 너희들을 찾으라고 했어. 너희가 무슨 해답이나 방도를 알고 있는 건가?"

 

"^^"

 

"...어떻게 이런 난국 속에서 들개들의 습격을 막아야 하지? 너무 가혹한 거 아냐?"

 

나는 하마터면 자기 연민에 빠질 뻔 했다. 다시 앞발로 이번엔 눈을 비빈 다음, 녀석들의 대답을 기다렸다.

 

녀석(들)이 대답했다.

 

"저희가 보여드릴 건... 그냥 요거!"

 

"?"

 

꽃잎 중 하나가 몸짓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오, 보았다. 아주 작은 애벌레 무리였다.

 

필사적으로, 기어올라가는,

그러다 떨어지고 밟히는,

 

비극(悲劇)의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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