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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화 -

(<생선 가게의 애꾸눈> 완결)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다.

 

 마루와 나는 어느 처마 밑에서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쪽 눈이 없는 것도 어느새 익숙해지고, 나는 약간 흘겨보는 듯한 모습으로 빗방울의 일렁임을 관찰하고 있었다. 마루 역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녀석은 그런 내 시선을 눈치챈 것 같았다. 녀석이 말했다.

 

 "나, 나는 떠난다."

 

 "...그렇군."

 

 불쑥 찾아왔던 때처럼, 불쑥 떠난다. 녀석은 대체 무얼 위해 사는가. 저번에 녀석은 나에게 '꿈'이 있냐고 물었지. 나는 물었다.

 

 "너는 꿈이 뭐지?"

 

 "꾸, 꿈?"

 

 녀석은 양 송곳니를 드러내며 씩 웃더니,

 

 "그저... '방랑', 할 뿐, 이지."

 

 "...그게 너의 꿈이라고?"

 

 "지, 지금을, 사는 것이다."

 

 "왜 한 곳에 정착하지 않지?"

 

 녀석은 잠시 곰곰히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나, 나는, 녀석처럼 되고 싶지 않으니까."

 

 녀석? 누굴 말하는 거지?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마루는 이번에도 내 기색을 눈치채고,

 

 "갑자기 사라진, 그 녀석 있잖아."

 

 "아."

 

 '바다' 녀석을 말하는 것이군.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녀석, '거대한 큰 짐승'과 함께 사라졌다. 어디로 간 걸까. 다시 만날 일이 올까. 나는 다시 물었다.

 

 "왜 그 녀석처럼 되고 싶지 않지?"

 

 "궁, 궁금한 것도, 많군."

 

 마루는 한 번 더 씩 웃은 다음,

 

 "나는, 새끼를 낳지 않아."

 

 "임신시키지 않는다고?"

 

 "그래."

 

 나는 물었다.

 

 "왜 새끼를 낳지 않지?"

 

 녀석은 이번에도 곰곰히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자신을, 너무 사랑하고, 너무 미워하니까."

 

 "......"

 

 알다가도 모를 대답이었다. 

 

 "외롭지 않아?"

 

 "아, 아니라면, 거짓말이겠지."

 

 나는 다시 녀석을 흘깃 보았다. 녀석은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그 특유의 맑은 눈빛 속에서 뭔가가 일렁이는 것 같았다. 나는 말없이 빗줄기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나는 입을 열었다.

 

 "하늘이 새끼들을 낳았어."

 

 "축하, 축하할 일이다."

 

 "그래."

 

 그리고 우리는 다시 말이 없었다. 

 

 빗줄기가 그쳐갔다.

 

 "그, 그럼, 간다."

 

 녀석은 그렇게 불쑥 말하고는,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나는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늘이 낳은 애기들도 좀 보고 가지."

 

 "돼, 됐어."

 

 매정한 녀석. 나는 작게 툴툴거리며, 반대 방향으로 뒤돌았다. 그러고는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녀석이 나를 불렀다.

 

 "이, 이봐."

 

 나는 몸을 휙 돌렸다. 녀석은 나를 바라보며,

 

 "다, 다시, 만나자구."

 

 하고 말했다. 이번엔 내가 씩, 웃으며,

 

 "다시 만날 걸 어떻게 알지?"

 

 하고 물었다. 녀석도 씩, 웃으며,

 

 "그, 그게, 인(因)과, 연(緣)이다."

 

 나는 파안대소했다.

 

 "푸하하, 알겠어."

 

 "그, 그래, 그럼."

 

 녀석은 다시 몸을 돌려 저벅저벅 걸어나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몸을 돌려 걷다가, 다시 뒤돌아보았다. 

 

 녀석의 작지만 매서운 몸집이 조금씩 작아지고 있었다. 

 

 생선 가게에서의 일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나는 그 생선 장사치처럼 애꾸눈이 되었다. 나는 내 눈을 '치료'해 준 그에게 감사한다. 그후, 하늘 녀석과 나는 하늘이 낳은 다섯 마리의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미로' 무리에 몸을 의탁했다. 그리고 길거리를 쏘다니며 '큰 짐승'들을 상대하는 일을 종종 하곤 했다. 마루 녀석을 흉내내는 것이다. 

 

 "있지. 나는 무서워."

 

 큰 짐승을 목전에 두고, 나는 '다시다'라는 녀석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건 어느새 내 입버릇처럼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느 으슥한 밤, 다시다 녀석이 지나가는 말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간지, 사실 너는 싸움을 즐기는 것 아냐?"

 

 녀석이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해서 충격은 조금 늦게 찾아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오랜만에, '그 녀석'을 떠올렸을 뿐이었다.

 

 

 

 

 

 

 

 --

 

 바다를 꿈꾸는 유랑극단 - 생선 가게의 애꾸눈 

 완결

 

 낮아짐 이야기제작소 

 

 

 

 

 

 

 

 

<바다를 꿈꾸는 유랑극단>은

4막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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