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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

 

 

 

나는 균형을 잃고 자빠지면서 그제서야 사태를 파악했다

녀석이 내 등을 민 것이다

다리를 뻗어 균형을 다시 잡으려 했다

그러나 의외로 땅이 발에 닿지 않았다

찰나의 순간이 영겁이 되고

나는 다리가 찢어져 죽을 각오로 다리를 뻗었다

 

이런, '육시'를 할...

 

 

 

"'던전(dungeon)'에 온 것을 환영한다. 이방인이여."

 

나는 머릿속이 여섯 개의 조각으로 갈라져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깨어났다. 잠깐 꿈을 꾼 것 같다. 잊고 있었던 어떤 고통이 다시 상기(想起)된 것 같다. 나는 앞발로 머리를 감싸며 눈 앞에 있는 큰 짐승에게 물었다.

 

"나는 인(人)이 아니야."

 

그러자 녀석은 웃으며 대답했다.

 

"상관없다."

 

"설명을 조금 더 부탁해도 될까."

 

나는 버릇처럼 전투 태세로 재구성했던 근육을 풀고 녀석에게 부탁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녀석은 조금 더 친절한 자세로 말했다.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유정물(有精物)은, 각자가 무수히 많은 방(房)을 가지고 있다."

 

음, 방(房).

 

"그래."

 

"이 방들로 누군가를 초대하기도 하고, 내쫓기도 하고, 침입하기도 하고, 막기도 하며, 방들을 경영(經營)하다가-"

 

하고, 녀석은 말을 멈췄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왜 말을 멈춰."

 

그러자 녀석이 이번에는 곤란하다는 웃음을 지었다.

 

"더 이상은 영업(營業) 기밀(機密)이다."

 

얼씨구.

 

"그래, 좋아. 내 '친구'들 중에는 필요할 때 신령(神靈) 비슷한 것을 발휘하는 녀석이 있다. 평소에는 다소 까탈스럽고 약간 냉소적인데, 녀석이 신령을 드러내면 거의 신비롭기까지 하지. 나는 모든 생명체는 내면에 다양한 영(靈)들을 간직하고 있다고 믿는다. 아마 그런 것과 비슷한 것이겠지."

 

"푸하하! 너다운 생각이다."

 

녀석은 호탕하게 웃었다. 나도 한 쪽 눈을 다소 찡그리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부터 녀석에게 질문 폭풍을 하겠다는 선전 포고의 의미를 담아 날카롭게 울음 소리를 발한 다음,

 

"여기는 어디지? 아까 '던...' 뭐라고 했지?"

 

"'던전(dungeon)이다. 다른 말로는 지하(地下) 감옥(監獄)이라고 하지."

 

나는 움찔했다. 지하에서 겪었던 지난 날이 떠올랐기 때문은 아니다. 녀석의 고갯짓을 따라 나도 위를 바라본 것이다.

 

"감옥이, '지옥 같은' 이유는... 저것들 때문이지."

 

결국 나는, 비명을 질러야 했다.

 

무수히 많은 '눈'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것은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고, 어떤 것은 멸시(蔑視)하고, 어떤 것은 무심하면서도 냉소적인 웃음을 띤 눈들... '하늘'의 모든 것이 눈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 같다. 온 몸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곧 몸이 떨리기 시작하자, 큰 짐승 녀석은 아주 잔인하게 말했다.

 

"저 눈들이 앞으로 너를,

온갖 의도를 담아,

시(視)하고,

감(監)하고,

찰(察)할 것이다."

 

나는 몸이 옆으로 기우는 것을 느끼며,

 

"아... 그러니까, 이 곳은... 지옥(地獄)이군..."

 

"그래."

 

"...지은 죄가 많아 지옥에 떨어졌군..."

 

나는 자기 혐오를 담아 말을 내뱉은 다음, 그대로 쓰러지려 했다. 그러나 녀석의 다음 말이 나를 붙잡았다.

 

"너무 절망하지 마라. 너는 지상(地上)에서도 거의 한 평생을 지옥 같은 삶을 살았다. 귀신들의 모의는 네가 갓 어른 고양이가 되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 후 벌어진 수많은 웃기는 일들을 상기해 봐라. 네가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

 

"그만큼 너는 인력(引力)이 컸던 것이다."

 

"......"

 

"아이쿠, 이 답답한 괭이야.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해 줄까? 너는 중요한 자원이란 뜻이다. 물론 중요하지 않은-"

 

"...누구에게?"

 

나는 많이 회복되는 것을 느끼며 질문했다. 그러자 녀석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총사령관(總司領官)."

 

"총사령관?"

 

되묻는 내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 어떤 눈의 시선이 '갑자기' 훅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앞으로 계속 겪어야 한다고? ...'빌어먹을'.

 

"총사령관...이 누구시지?"

 

"나를 이 곳으로 보내신 분. 덕분에 틈만 나면 미워하고 싶은 분이다."

 

"친절하게, 친절하게."

 

"으하하, 알았다. ...처음에는 나도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 곳에서 인내(忍耐)하고 연단(鍊鍛)하면서, 그의 깊은 뜻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지."

 

"...으음."

 

"나는 정금(正金)같은 'character'를 얻게 되어 다시 부름 받게 될 그 날을 소망한다. 그 'character'와 'charisma'... 굉장히 설레는 일 아닌가."

 

"...잘 되길 바란다."

 

"고맙다."

 

나는 문득 지금 이 상황이 웃기다고 생각했다. 만약 지상에서 만났다면 무턱대고 싸웠을 지도 모를 녀석과 나는 지금 이 곳에서 녀석과 덕담을 주고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야 인지한 건데, 녀석의 목소리가 쿵쿵 울려대는 목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매우 자연(自然)스럽게 들린다.

 

"그래서 이 곳에서 이런 일을-."

 

"그래. 너 같이 귀신들이 끌고 온 억울한 녀석들이 있다. 그런 녀석들을 찾아가서, 조금이라도 도와주며 덕을 쌓고 있다. ...잘 '보이려고'."

 

총사령관에게. 알았다.

 

"그럼 나는 이제 뭘 해야 하지? 총사령관이 나를 다시 꺼내주기만을 기다려야 하나?"

 

그러자 녀석은 빙긋 웃으며,

 

"이봐. 네가 지난 날, 지하로 굴러 떨어졌을 때 어떻게 그 곳을 빠져 나왔는가를 상기해 봐라."

 

"음?"

 

나는 잠시 앉았다. 곰곰히 생각했다. 그때 분명히, 도와주는 '친구'가... 우연히 나타났고, 또 우연히 어떤 '사람'이 자주 근처를 지나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 나름의 도움을...

 

"'요청.'..."

 

녀석이 이번엔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그래. 역시-. '요청'해라. 총사령관과의 인격적(人格的) 협상이다."

 

"...으음."

 

"자, 이제 간다. 잘 해 봐라."

 

자, 잠깐만... 뭐, 뭘 잘 해? 이러고 떠나면 어떡해? 그러나 나의 바람과는 달리 녀석은 홀연히 사라졌다. 나는 잠시 적막감에 빠졌다. 큰일... 진정하자. 생각을 정리하자. 정확하지는 않지만, 세상에는 약 십만(100,000) 종류의 큰 짐승이 있다는 얘기를 예전에 얼핏 들었다. 그런데 정말, 이 곳 지옥에서의 연단 때문일까, 저 녀석은 꽤나 독특한 녀석임에는 분명하다.

 

...협상이라.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일단 야물딱지게 해 놓아야

협상할 때 유리하겠군.

그런데 뭘 하지?

 

내가 가까스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녀석이 갑자기 나타났다.

 

"깜짝이야, 임마."

 

"으하하. 한 마디 안 하고 간 게 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뭐지?"

 

"그 분이 너를 가만 팽개쳐 두지는 않으실 것이다. 그러실 리가 없지."

 

"어? 그게 무슨 말-..."

 

그러자 녀석은 입을 앙다물고, 꽤나 진지하게 말했다.

 

"이곳 지옥까지, 너에게 천군천사(天軍天使)들을 보내실 것이다."

 

"천군천사... 어떻게 그 분들을 알아볼 수 있나? 혹시, '날개'라도!"

 

나는 다급하게 물었다. 그러나 녀석은 잠깐 뜸을 들임으로써 그 짧은 순간 나의 복장을 뒤집어 놓았다. 내가 녀석의 코를 한 대 '어루만져' 줄까 말까 고민하고 있을 때, 녀석은 겨우 대답했다.

 

"그 분들은 시(視)하거나, 감(監)하거나, 찰(察)하지 않는다."

 

"...그럼?"

 

"그 분들은... 견(見)한다."

 

나는 한 쪽 눈을 부릅떠 녀석을 바라보았다. 녀석이 말을 맺었다.

 

"있는 그대로. 너의 '친구'가 되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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