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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화 -

 

 

 

 대(大)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큰 짐승은 발악했다. 상처입고 절룩거리면서도 고양이 무리에게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처참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저 무리에 동조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서 있던 바다 녀석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나는 반가움의 표시로,

 

“여.”

 

하고 말했다. 녀석은 눈을 두어 번 꿈뻑거렸다. 나는 녀석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눈은 그저 고요했다.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바다가 말했다. 나도 눈을 두어 번 꿈뻑거린 다음,

 

“물어봐.”

 

“홍실 녀석은 왜 너를 좋아했던 거지?”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힘겨운 길고양이 생활, 그저 의지하고 싶은 존재가 필요했던 게 아니었을까?”

 

나는 대답했다. 그러자 녀석이 갑자기 박장대소했고, 하늘과 나루는 놀라서 녀석을 쳐다보았다. 녀석은 그렇게 한참을 웃더니,

 

“너는 저 녀석을 지키고 싶지?”

 

하고 고갯짓으로 하늘 녀석을 가리켰다. 하늘 녀석이 움찔했다. 나는 녀석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짐짓 하품을 하며,

 

“녀석은 임신했어. 너도 알잖아?”

 

라고 우회적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곧 태어날 생명들의 ‘아버지’가 바다 녀석이라는 얘기는 굳이 하지 않았다. ‘아버지’라는 개념은 신화다.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과정에 있어 수컷은 그 생명의 반쪽을 제공하는 역할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러나 나는 바다 녀석의 다음 대답을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나의 생명은 그때 이후로 끝난 거나 마찬가지야.”

 

“뭐?”

 

“알아? 저 녀석이 임신한 때부터, 나는 생명이 끝난 거야. 나는 이제 아무도 임신시킬 수 없어.”

 

그리고 바다 녀석이 하늘 녀석을 쳐다보는 그 눈엔... 그윽함이 담겨 있었다. 대체 이 녀석, 저 무리와 함께 하면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나는 아직도 큰 짐승을 괴롭히고 있는 고양이 무리를 바라보았다.

 

“너를 닮을텐데.”

 

하늘 녀석이 불쑥 말했다. 바다는 하늘을 바라보았고, 하늘 녀석은 빙긋 웃으며,

 

“엄하게 키워야겠어.”

 

바다 녀석은 다시 박장대소했다. 이 소란통에 어울리지 않는 맑은 웃음이었다.

 

그리고 더 큰 소란이 일어났다. 우리는 모두 시끄럽게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일대 사람 무리가 사방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 중 몇몇은 우리에게 돌을 던졌고, 모든 고양이들은 돌을 피해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저쪽 우두머리인 검은 녀석이 외쳤다.

 

“인간들이다! 포위당했어!”

 

저번에도 우리에게 돌을 던졌던 인간들이었다. 대체 왜 이 곳에 자주 출몰하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들을 바라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들의 뒤쪽에서 뭔가가 아른거리고 있었다.

 

“이, 이봐. 보이나?”

 

나루 녀석이 나에게 물었다. 나는 더 미간을 찌푸렸다. 아주 큰 것이었다. 나루 녀석은 낭패의 감정을 실어 이렇게 말했다.

 

“저런, ‘거대한 큰 짐승’, 은, 나, 나도, 처음 보는 것, 이다.”

 

“어쩌지?”

 

“기, 기억해?”

 

“뭘?”

 

“네, 네가, 그림자를 일으켜 세운 날 말이다.”

 

나루는 빠르게 말했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그건 어쩌다 한 번 그렇게 된 것... 그때 옆구리쪽에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나는 옆을 돌아보았다. 하늘 녀석이 내 옆구리에 머리를 대고 말없이 문지르고 있었다.

 

나는 이번엔 바다를 바라보았다. 녀석과의 뾰족뾰족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잘 이해할 수도 없고, 가끔 밉기도 했지만 미워할 수만도 없었던 녀석. 녀석이 퍼뜩 나를 바라보았다. 그 특유의 푸른 눈이 반짝였을 때, 나는 문득 엉뚱한 생각을 했다.

 

나루가 말했다.

 

“준, 준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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