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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未濟) 사건

 - 5화



 조그맣고 낡은 빌라의 현관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무릎을 짚고 숨을 골랐다. 천둥 소리가 우르릉 들려왔다. 소나기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어긋난다.

 그 아저씨는 내가 녹음 테이프를 들어 보길 원했다. 직접 듣고 판단하라는 것이다.

 나는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계단을 오르고, 굳게 닫힌 문을 열쇠로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비명을 지를 뻔 했다.

 가까스로 비명을 삼키고 아빠를 잘 살펴보았다. 아빠는 몸을 잔뜩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아빠가 몸을 뒤척이더니 약하게 잠꼬대를 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내 흉내를 내고 있네. 나는 이 아저씨를 깨우기 위해 앉았다가, 멈칫했다.
 
 조금 술 냄새가 났다.

 나는 아빠의 어깨를 흔들었다.

 "아빠. 방에 들어가서 자."

 내가 깨우자 곤히 잠들었던 모습과는 다르게 아빠는 부스스 하며 깨어나서는,

 "왔니?"

 그렇게 물으며, 몸을 일으켜 앉고는, 으아아아, 하고 기지개를 폈다.

 "술 먹었어?”

 내가 묻자 아빠는 겸연쩍다는 듯 머리를 벅벅 긁으며,

 "속상해서.”

 "왜?”

 "안 좋은 일이 좀... 회사에서.”

 "......”

 "...화 안 내니?”

 "으우엄...”

 나는 약간 이상하게 말꼬리를 흐렸고 아빠는 나를 약간 이상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글쎄. 나도 내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잘 모르겠다. 비가 와서 그런가?

 "무슨 일인데?"

 "...아."

 아빠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술기운 때문인지, 아빠의 어깨가 좌우로 조금씩 흔들렸다. 나는 잠깐 기다렸다가, 곧 예상 답안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몰래 술 먹고 일하다가 볼트 하나를 빼먹었다거나..."

 "......"

 "그게 상관한테 걸려서 엄청 혼나고..."

 "......"

 "상관이 막 짜르겠다고 그러고..."

 "......”

 아빠가 움찔했다. 그리고 나는 눈만 꿈뻑거리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빠는 입을 앙다물고 있다가 고개를 조금 숙였다. 나는 이럴 때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모른다. 나는 눈을 더 빠르게 깜빡였다.

 이윽고 아빠가 대답했고 예감은 확신이 되었다.

 "술 먹어서 그런 건 아냐. 하지만 해고 대상자에 오른 건 맞아."





 아빠와 나는 술잔을 부딪혔다. 술이란 건, 생각보다 훨씬 쓰고 독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오늘 왜 사람이 술을 마시는지 조금 알 것 같다는 이상한 생각을 했다. 나는 냉장고로 가서 남아 있는 소주 두 병을 모두 들고 왔다.

 "오. 우리 민지. 이제 본격적으로 마실려고?"

 내가 봉인지를 모두 벗겨내자 아빠는 약간 혀가 꼬부라진 소리로 놀렸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한 잔만 더 마시면 토할... 딸꾹!"

 "그런데 왜 뜯니?”

 아빠가 술을 들이킬 때 그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인생 별 거 없어.”

 “으하하하!”

 “나를 애 취급... 딸꾹!”

 나는 심통난 표정으로 아빠의 잔에 술을 따랐다. 그러나 내 손은 마치 수전증 걸린 것마냥 비틀비틀 흔들렸고 소주가 약간 옆으로 흘렀다. "취했네, 취했어!” 아빠가 또 놀렸다. 나는 난감했다. 살면서 이런 적이 없었다.

 빗소리는 창문을 두들기고... 이상하게 술이 계속 넘어가고...

 “아빠 같은 전문가를 짤라? 미친 거 아냐?”

 “그래. 맞다! 회사는 미쳤어! 그러니까 망하지!”

 얼굴이 시뻘개진 부녀는 이제 고래고래 악을 쓰고 있었다.

 “아빠! 다 필요 없어! 사장 나오라그래!”

 “야! 김정필! 나와! 나와!”

 “김정피이이이일!”

 나는 버럭 소리를 지르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가, 후회된다. 회전 목마가 경주마처럼 달리는 회전 목마에, 나는 경주마의 기분이 이런, 우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아빠가, 쓰러졌다. 그 모습은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웃겼다.

 세상은 원래, 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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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제(未濟) 사건
 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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