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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未濟) 사건

 

- 1

 

 

 

 소주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 안색은 아마 창백했을 것이다... 안쓰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지원이 엄마에게 죄송스런 마음을 느끼며, 자리를 일어나, 공손히 인사하고, 카페 문을 열고, 거리를 걸어서, 오늘따라 책가방이 무겁다고 생각하며, 집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현관문 앞에서 나는 스르륵 누웠다.

 

 누운 채로 이를 바득바득 갈다가,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아빠가 집에 도착했을 때 아빠를 문 앞에서 마중한 딸은 반가움보다는 가슴 철렁함을 선사한 것 같았다. 아빠가 주방에서 부지런히 복작대더니, 저녁상에 근사한 게 올라왔다. 나는 눈이 동그래졌다.

 

 “웬 삼계탕이야?”

 

 "너 몸보신하라고."

 

 "나 안 힘들어."

 

 "그러는 애가 문 앞에서 쓰러지냐."

 

 "좀 피곤해서 그래."


 라고 말하는 내 목소리는 갈라졌다. 아빠는 씁쓸하게 웃으며,

 

 "많이 먹어."

 

 "아빠 먼저."

 

 우리는 말없이 삼계탕을 먹기 시작했다. 내가 종종 "맛있네."라고 중얼거리고, 아빠가 "소주가 필요한데."라고 중얼거리면 내가 째려보는 것 말고는 우리는 별로 말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아빠의 손에 눈길이 갔다. 온통 굳은살 박히고 부르튼 손... 나는 문득 울음기를 느꼈다. 울까? 그러나 머릿속의 뭔가가 나를 가로막았다.

 

 "세상엔 나쁜 사람들도 참 많은 것 같아."

 

 나는 그렇게 툭 내뱉었다. 아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조심해라. 그런 놈들 안 만나게..."

 

 "개새끼들..."

 

 "아빠 앞에서 개새끼가 뭐냐."

 

 "아빠도 욕해."

 

 "육시럴 놈들..."

 

 "찾을 수 있을까?"

 

 "수색 시작했다니까, 찾겠지."

 

 "아빠, 그 얘기 들었어?"

 

 "?“

 

 "경찰이 부실 수사하고 있다는 거?”

 

 “경찰이 왜 부실 수사를 해.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이건 내 생각인데...”

 

 나는 말을 멈추고, 진지한 눈으로 삼계탕을 노려보다가,

 

 “학교에서 못 하게 막고 있는 것 같아.”

 

 “수사를?”

 

 “.”

 

 “그걸 왜 막아.”

 

 “물론 막진 않지. 그냥 가출일 것이다라는 식으로 말할 뿐이지.”

 

 “그게 결국 막는 것이다?”

 

 “.”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여자의 육감."

 

 "푸하하하!"

 

 아빠가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뾰로통한 얼굴로 말했다.

 

 "나를 애 취급하지 마요."

 

 "네가 무슨 여자냐, 아직 애 아니냐.“

 

 아빠는 계속 웃음을 비실비실 흘렸고 나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밥이나 먹어.”

 

 하고 다시 말없이 밥을 퍼먹었다. 아빠는 웃음을 멈추고는 헛기침을 큼, 하고 했다. 나는 냉장고로 가서 소주 한 병을 꺼내왔다. 그리고 소주병 마개에 붙어 있는 봉인지(封印紙)를 뜯었다. 봉인지에는 내 도장이 찍혀 있다. 그리고 내 도장이 어디 숨겨져 있는지는 나밖에 모른다. 나는 헛기침을 크흠, 하고 말했다.

 

 “오늘만 허락하겠어.”

 

 아빠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무래도 부연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았다. 하지만 오늘따라 아빠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는 이유를 댈 수는 없었다.

 

 “그동안 아빠가 잘 참았으니까.”

 

 “딸 키운 보람이 있어.”

 

 아빠는 싱글벙글하며 소주잔을 가지러 갔다. 그리고 잠시 후, 아빠는 잔을 가득 채우고는, 한 입에 털어놓았다.

 

 “‘흩어지면 죽는다~ 흔들려도 우린 죽는다~’”

 

 몇 잔이 들어가자 아빠는 흥에 겨웠는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노래를 듣다가, 괜히 심통 난 얼굴로 물었다.

 

 “당에 들어간 건 어때? 좋아요?”

 

 아빠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럼! 정치란 중요한 거야! 우리 삶을 이루는 공기 같은 거지! 이 아빠는 그걸 알았다!”

 

 “어우. 됐거든요.”

 

 “우하하하!”

 

 그러고는 아빠는 또 잔을 채우고는 홀랑 털어버렸다. 나는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젓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 먹은 그릇을 싱크대에 놓고, 선풍기를 아빠 쪽으로 돌린 다음, 욕실에 들어가서 양치하고, 다시 나와서,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오냐!”

 

 인사하고, 방에 들어가서, 방문을 닫았다.

 

 방바닥에 스르륵 누운 나는 몸을 웅크렸다.

 

 불을 켜지 않은 방은 어두웠다. 나는 이런 아늑한 어두움이 좋았다. 이런 곳에서는 잠도 잘 온다.

 

 거실에서는 아빠의 노랫소리 계속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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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제(未濟) 사건

 1화

 

 낮아짐 이야기제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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