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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未濟) 사건

- 4화



 "기자... 님은 아니죠?"

 내가 토끼눈을 뜨며 묻자 아저씨는 옷매무새를 바로 잡으며,

 "아닙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어딘가 쭈뼛쭈뼛하는 자세를 취했다. 약간 바보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부연 설명을 하기로 했다.

 "얼마 전에 어떤 기자... 들이 지원이 엄마에게 이상한 질문을 하는 바람에."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어정쩡한 자세와는 다르게 시원스런 말투로 이야기했다.

 "저는 박지원 선생님의 친구입니다.”


친구?

설마, 지원이가 같이 있었다는 중년의 남자가 이 사람? 나는 다시 한 번 찬찬히, 아저씨를 살펴보았다. 약간 빛이 바랜 티셔츠, 해진 청바지, 낡아서 밑창이 떨어질 것 같은 운동화... 그럼에도 어딘가 단정하다는 인상을 준다. 그리고 지원이와, 소위, '원조 교제'를, 콜록, 할 여력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사랑’이란 뭘까? 아- 궁금하다.”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는, 물었다.

 "저를 찾아오신 이유는요?"


아저씨는 그런 나를 차분한 눈으로 바라보고는,

 "드릴 게 있습니다."

 아저씨는 품을 뒤적거렸다. 뭘 꺼내나 했더니 카세트였다. 카세트 역시 꽤 오래 된 물건인 듯 곳곳이 낡아 있었다.  


“저는 박지원 선생님의 음악 방송을 듣다가, 중간 중간 녹음도 하는데요..."

 아저씨는 말을 흐리고는, 버퍼링 걸린 듯이 옴짝 달싹하다가, 그냥 재생 버튼을 눌렀다. 카세트가 약간 삐익거리더니 위윙하고 돌아갔다.

 
 -
[배경 음악 : 4 non blondes - What’s Up]

[진행]
열대야가 계속되네요. 잠이 잘 오지 않으시죠~? 저도 지금 대야에 찬 물 담아서 발 담그고 있는데, 히히~ 흠, 그래서 오늘은, 급하게 신설된, 이 더위를 날려 버릴, 납량특집 코너 시간입니다! 두둥! 아무도 기대 안 하고~ 하하, 네, 오늘 대망의 첫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 시작합니다!

[배경 음악 Fade Out]

[배경 음악 : 음산한 분위기.mp3]

[나레이션]
 태풍이 몰아치는 날이었다.
 날라가는 우산을 붙잡으며,
 나는 빗속을 뚫고 CD를 사러 갔다.
 바람은 사방에서 불어 와
 우산은 몇 번이나 뒤집어졌다.
 레코드 가게에 도착했을 때
 착한 주인 아저씨는 나에게 수건을 주고,
 따뜻한 차 한 잔도 끓여 주었다.
 매장에는 '백 스트리트 보이즈'의 음악이 감미롭게 흐르고,
 나는 차를 마시며 잠깐 앉아 있었다.
 주인 아저씨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음악이 버벅거렸다.
 CD가 튀는 것 같았다.
 그럴 수도 있지.
 나는 차를 후룩 마셨다.
 그 때, 뭔가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
 무슨 소리지?
 그건 동물의 울음소리였다.
 가게 안 쪽에서 들리는...
 나는 아저씨가 없는 틈을 타
 안 쪽으로 들어가 봤다.
 문 틈으로 얼핏 보이는 그것은...
 [효과음: 쿵.wav]
 뭐하니?
 나는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주인 아저씨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효과음: 심장 박동.wav]
 아, 아뇨. 그냥, 이상한 소리가 나서...
 뭘 봤지?
 하고, 주인 아저씨가 웃었다. 나는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벼, 별로... 아무 것도...
 ......
 죄송해요... 저 이제 가 볼게요...
 -
 
 아저씨는 카세트의 멈춤 버튼을 눌렀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나는 툴툴거렸다.

 "...하여튼 호기심은..."


"선생님 나이 답지요."

"그게 지원이의 실종과 관련이 있을까요?"

"저도 확신은 못 하겠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사실입니다."

"CCTV 같은 것을 확인해도 좋을 텐데..."

"저희는 상가 내 CCTV를 확인할 권한이 없습니다."

 라고 말하는 아저씨의 말투는 딱 부러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테이프를 선생님께 드리겠습니다. 집에 가서 자세히 들어보셨으면 합니다."

 아저씨는 빗물이 묻지 않게 테이프를 손등으로 가리며 나에게 건넸다. 나는 테이프를 얼른 받아서 가방 속에 집어 넣었다.

 "그럼, 나중에 또."

아저씨는 휙 돌아섰다. 나는 약간 다급하게 물었다.

 "그런데 뭐하시는 분이세요?"

 그러자 아저씨는 다시 뒤돌아 봤다. 그리고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그냥, 뭐, 연극합니다."




 
 --
 미제 사건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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