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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화 -

 

 

 

 "잠깐 쉬었다 합시다."

 

 논쟁은 결판이 나지 않았고, 급기야 두 번째 밤이 찾아오기 전에 '휴식 시간'을 갖자는 의견이 누군가의 입에서 나왔다. 이렇게 열띤 논쟁이 일어날 수 있었던 데에는 E의 진지한 태도가 그 방아쇠 역할을 한 것 같았다. 모두의 눈빛에서 '재밌다'는 감격이 뿜어져 나왔다.

 

 "담배 피우러 갈래? 베란다 나가서 피우자."

 

 F는 D와 G에게 제안했다. D는 "난 끊었잖아." 하고 대답했고, F는 "다시 시작해."라고 제안했다. "뭘 다시 시작해." D는 툴툴거렸지만 G와 함께 F를 따라 베란다로 나갔다. 차가운 밤공기가 셔츠를 파고들었다. F는 담배를 입에 물고, 다소 추운듯 가디건을 여미며 G의 담배에 불을 붙여 주었다.

 

 "너는 언제 전과(轉科)할 거야?"

 

 G가 D에게 물었다. D는 으아아, 하고 기지개를 켜며,

 

 "이번 학기말에."

 

 "너는 어차피 이미 영혼은 '공영(공연영상학)'이잖아."

 

 "소속감을 분명히 하고 싶어."

 

 신변에 대한 수다를 주고받았다. F는 싱긋 웃으며 베란다 창 너머로 방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다들 삼삼오오 흩어져서 과자를 먹거나 맥주 한 잔씩을 하거나 수다를 떨고 있었다. J는 쇼파에 걸터 앉아 곰곰히 생각에 잠긴 눈치였다. 아마 마피아가 누군지 추리하고 있는 듯 했다. F는 그 모습을 보며 또 웃었다. 쟤는 참 미스테리해. 머리가 좋은 듯 하면서 또 한편 되게 순진하고...  

 

 F는 얼마 전 J와의 일을 생각했다.

 

 그날, 나는 울고 있었나? 그랬던 것 같다. 강의실 옆 복도 계단에서 혼자 숨죽이고 있었던 것 같다. 자꾸만 떨쳐내려 해도 들리는 음성, '더러운 년...' 그날따라 힘이 들어, F는 수업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복도에 숨어있었다. 겸사겸사 핸드폰을 충전하려는 것도 있었고...

 

 아래층에서 누군가 올라오는 소리가 났다. 뚜벅뚜벅...

 

 F는 황급히 눈물을 닦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척 했다. 그러다가 그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을 때 그제야 아는 척을 했다. J였다. F는 웃으며,

 

 "J, 왜 계단으로 와?"

 

 하고 물었다. J는 흐흐 웃으며,

 

 "나는 엘리베이터 안 써. 갑갑해서."

 

 "......"

 

 아,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무슨 사정이 있나보다. F는 문득,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J는 F를 흘깃 바라보다가, 쾌활하게 말했다.

 

 "F, 이따가 저녁이나 같이 먹을래?"

 

 "......"

 

 F는 고개를 끄덕였다. J는 "오예, 밥 약속 잡았고." 하고 쾌재를 부르더니, "그럼 이따 봐." 하고 다시 걸어올라가, 문을 열고 사라졌다. F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저녁 밥때가 되어, F와 J는 구내 식당 입구에서 다시 만났다.

 

 둘은 식판에 밥을 받고 어느 한적한 자리에 마주 보고 앉았다. "감사합니다, 세상의 모든 하느님." J는 그렇게 기도하고, 곧 밥을 먹기 시작했다. F는 그 모습을 보며 싱긋 웃었다.

 

 조금 밥을 먹다가, F는 물었다.

 

 "J, 너는 꿈이 뭐야?"

 

 "으-응? 꿈?"

 

 J는 밥을 오물거리더니, 곧 대답했다.

 

 "먹고 마시고, 내 일을 즐기며 사는 것. (전도서 2:24)"

 

 "...그게 다야?"

 

 "그걸로 충분하지."

 

 담백하고 경쾌한 대답이었다. F는 문득 생각했다. 왜 J 앞에서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할까? 만약 J가 남자라면 한 번쯤 짝사랑해 볼 정도로... F는 J를 바라보다가,

 

 "J, 너는 자살을 시도해 본 적 있어?"

 

 라는 말이 입에서 스르르 나왔다. F는 그런 자신에게 깜짝 놀랐고, 곧 그런 자기 자신을 책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J의 대답은 이번에도 경쾌했고, 이번에는 동시에 진중했다.

 

 "없어."

 

 "...한 번도."

 

 "단 한 번도."

 

 그렇구나. 갑갑해서 엘리베이터도 이용하지도 못할 정도로 속사정이 있는 양반이, 그러나 살면서 자살을 시도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어떻게 그럴 수 있지?"

 

 F가 물었다. J는 그런 F를 잠시 빤히 바라보다가,

 

 "나의 자살은 다른 누군가의 자살을 부르니까?"

 

 "......"

 

 "나는 그렇게 생각해."

 

 예민해. 확실히 J는 예민해. 삶, 죽음, 종교, 철학, 감수성, 논리... J는 이런 것들에 예민하다는 게 느껴져. F는 한 번 더 물었다.

 

 "'죽음'이란 뭘까?"

 

 "......"

 

 "미안해. 오늘따라 이런 질문을 해서. 오늘 내가 좀 센티멘털하거든."

 

 J는 손사래를 치며,

 

 "괜찮아."

 

 하고 말하고는 헤헤 웃었다. 그리고는 특유의 그 커트머리를 긁적이는 몸짓을 하며, 대답을 마무리했다.

 

 "'죽음'이란, 항상 각오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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