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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화 -

 

 

 

 "C? 나는 C가 마피아일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해."

 

 I는 그렇게 말했다. B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I에게 물었다.

 

 "왜, 왜 그렇게 생각해?"

 

 "C는 연기를 못하니까."

 

 I의 대답은 본인이 느끼기에도 차가운 것이었다. 좌중 사이로 찰나의 정적이 흐르고, 곧 질타 어린 야유가 I를 향해 쏟아졌다. "어우, 매정해라." "야, 존나 팩폭 아니냐?" "그러지 마. C 상처받겠다."

 

 C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J는 C의 안색을 살폈다. C는 마치 장판을 분석하고 있는 듯한 눈빛으로 방바닥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C가 연기를 못한다고? 물론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퍼포먼스는 썩 잘 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연기'를 잘 하고 못 하고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

 

 좋은 배우가 갖춰야 할 덕목은 무엇일까. 일단 배우로서 훈련이 잘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은 맞다. 그건 기본이다. 하지만 '좋은 배우'라면, 당연히 기본을 갖추되 기본을 뛰어넘는다. 풍부한 감수성과 상상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J는 얼마 전의 일을 생각했다.

 

 봄의 햇살이 사위를 비추는 저녁이었다.

 

 "뭐하니?"

 

 J는 C에게 다가가 물었다. C는 대답했다.

 

 "이 꽃을 봐."

 

 "?"

 

 J는 C의 말대로 꽃을 바라보았다. 하얗게, 흐드러지게 핀 맨드라미였다. J는 "예쁘네." 하고 중얼거렸다. C는 거기에 한 술 더 떴다.

 

 "이 꽃이 인사하고 있어. '안녕?'"

 

 "......"

 

 남자답지 않다, 고 J는 생각했다. 이것은, 남자답지 않다. 모쪼록 이성과 능력이 행동의 주된 근거가 되어야 하는 남자라면, 이런 멘트는 닭살 돋는 감성일 뿐이다. 하지만 J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이것은 편견일 수 있다. 이성만을 강요하는 남자들이 실은 얼마나 비이성적인가.

 

 어쩌면 순수한 감성이 최고의 합리적 이성일 수 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J는, 다시 C의 안색을 살폈다. C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이번에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J는 잠깐 놀랐다.

 

 C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J는 이번엔 좌중을 살피는 척 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만약 내 생각대로 I가 마피아라면, I는 자신과 같은 마피아인 C를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차가운 말을 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방금의 C의 야릇한 미소가 설명이 된다. 아니면, I는 그저 자신이 마피아인 걸 감추기 위해 일부러 인민들을 변호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아까 I는 F에 대해서도, "얘는 마피아면 확 티 날 걸." 이라며 변호하는 척을 했다. 그 전에 H가 의심받았을 때도 그렇고...

 

 만약 I가 마피아가 아니라면...

 

 J는 고개를 흔들었다. 큰일났다. 생각이 미궁에 빠졌어. 내 생각에 확신이 없어졌어. 떨어지는 자신감... 이것은 무대에서는 쥐약인데. J는 한 번 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까 삼겹살을 구워먹을 때 먹었던 소주 몇 잔이 지금 올라오는 것 같았다.

 

 J가 그렇게 자신만의 미궁에 빠져있을 무렵, C를 은근히 살피는 이가 한 명 더 있었다.

 

 얼마 전, 연습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C는 독백 연기를 연습하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그 날도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아 절망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때, 연습실 문을 열고 한 여성이 들어왔다.

 

 "B? 이 시간에 웬일이야?"

 

 "셔틀 버스가 끊겼어."

 

 C는 문득 시계를 바라보았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각이었다. 그렇구나. 나는 기숙사에서 사니까 상관없지만, B는 학교 외부에서 자취를 한다. 택시를 부르는 수도 있지만 이 산골짜기까지 택시가 오면 꽤 요금이 많이 나가는 일이고... C가 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게?"

 

 "동방에서 잘 거야. 그래서 올라왔는데, 여기서 소리가 나길래..."

 

 "그렇군."

 

 "내가 연기 좀 봐 줄까?"

 

 "......"

 

 C는 긴장했다. 자신의 연기를 누군가 봐 준다는 것은 역시나 부담스러운 일이다. 사실, 관객 앞에서 연기할 때보다 지인 앞에서 연기하는 게 더 긴장된다. C가 머뭇거리자, B는 마치 그런 C를 격려하듯,

 

 "괜찮아. 그냥 보기만 할게."

 

 하고 그냥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긴 스커트가 경쾌하게 나풀거리다가 착지했다. 그리고 C는 B의 담백한 모습에 왠지 용기가 났다. 그래서 호흡을 가다듬고, "흐흠, 크흠!" 목을 풀고, 독백 연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뜻대로 되지 않았다.

 

 C는 연기를 마치고, 긴장하여 B를 바라보았다. B의 안색이나 표정을 살피는 게 두려웠다. 마치 자신을 비난하거나, 아니, B는 착하니까 그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하지만 나의 발연기에 받은 충격을 애써 감추는 듯한 이상한 표정을 지을거야... C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B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B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C는 더듬거리며 물었다.

 

 "어, 어때? 크리틱 해 줘. 어디가 잘못됐는지..."

 

 "......"

 

 B는 아무 말이 없었다. C는 다시 긴장했다. 하지만 그 다음 나온 B의 말은 의아한 것이었다.

 

 "내가 있다고 긴장했구나?"

 

 "응?"

 

 아니. 아닌데. 긴장은 늘 하는데. 나는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아도 긴장해. C는 그리고 순간, 자신이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B가 다시 한 번 말했을 때, C는 그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내가 밖에서 들었을 때, 세상에 이렇게 멋진 대사 처리는 처음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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