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 21화 -

 

 

 

 E는 집 근처의 작은 공원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늦가을의 밤, 귀뚜라미들은 고즈넉하게 울고, 바닷가 동네의 맑은 밤하늘에서는 별빛이 쏟아져 내렸다. 다소 쌀쌀하지만 운치 있는 저녁이었다. E는 한 쪽 다리를 벤치에 올려놓은 자유분방한 자세로 막걸리를 홀짝거렸다.

 

 뒤쪽에서, 하이힐 소리가 또각또각 들려왔다.

 

 "역시 여기 있군."

 

 E는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I였다. "옆에 앉아도 될까?" I는 물었고, E는 고개를 끄덕였다. I는 원피스 치마를 잘 갈무리하며 E의 옆에 앉았다. E는 다시 막걸리를 입에 대었다.

 

 "안주도 없이."

 

 "딱히 먹을 게 없어서."

 

 E는 그렇게 대답했고, I는 자신의 핸드백에서 맥주 한 캔을 꺼냈다. E는 "오." 하고 입술을 오므렸다. I는 "술은 오랜만이야." 라고 말하며 맥주 캔을 따서 한 모금 축였다. E는 엷게 미소를 지으며,

 

 "과 대표님, 요즘 공사가 다망하시죠."

 

 I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 모금 마셨을 뿐인데 알싸히 취기가 올라왔다. I는 한 모금 더 마신 다음,  

 

 "망할 놈의 박 교수."

 

 난데없는 욕설에 E는 푸하하, 하고 웃었다. I도 슬그머니 웃었다. E는 씨익 웃으며,

 

 "그런 정치 교수는-"

 

 "학교에 잘 보이려고 안간힘을-"

 

 "실익이 없어-"

 

 "등록금이 아까워-"

 

 둘은 말잇기 놀이를 하듯 말을 주고받았다. 좋은 콤비, 둘이 같이 한 연극이 벌써 몇 작품인가. I는 싱긋 웃으며,

 

 "어제, '그'한테 연락이 왔어."

 

 E는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뭐래?"

 

 "더 이상 104호 문제를 왈가왈부하지 말래."

 

 "...싫다면?"

 

 "박 교수에게 고자질하겠지."

 

 "네 남자친구는 뭐래?"

 

 "......"

 

 I는 대답하지 않았다. E는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뭐 잘못 질문했나? 잠시 후, I는 대답했다.

 

 "헤어졌어."

 

 "...언제?"

 

 "한 일주일 됐나."

 

 "...그랬군."

 

 "위로는 안 해도 돼. 사실 속시원하거든."

 

 "......"

 

 뭐, 너는 강하니까. 위로 따위 필요없을지도 모르지.

 

 E는 막걸리를 다시 들이켰다. 어느새 두 병째, 다 먹었다. E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춥다. 슬슬 들어가자."

 

 하고 일어나며, 잠깐 걸어나갔다. 그러다가 고개를 갸웃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I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I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자세로, E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은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고, 목울대가 조금씩 일렁이고 있었다.

 

 별빛이 눈에 내려앉은 것 같다.

 

 "갈게."

 

 잠시 후, I는 그렇게 말하며 일어났다. E는 한 번 손인사하고 돌아섰다. 등 뒤로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가 났다. E는 한 번 흘깃 고개를 돌려, I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뭐. 강한 녀석이니까.

 

 

 

 

 

 

 

 

 

 --

 

 

 

 

 

 

 

 

 

 

 --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