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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화 -

 

 

 

 "H, 최종 변론을 시작하시죠."

 

 사회자가 말했고 H는 헛기침을 큼큼, 했다. 그리고 사회자는 그런 H를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저 녀석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애초에 머리가 좋은 녀석도 아니고, 그저 욕심만 가득한 놈, 그래서 우리 편으로 끌어들였던 건데. H는 말했다. 

 

 "여러분. 이걸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

 

 좌중은 모두 의아한 표정으로 H를 바라보았다. 사회자도 쟤가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나 쳐다보았다. 그런 모두의 심정과는 상관없이 H는, 기뻤다. 모두의 시선이 쏟아지는 이 순간, 이 행복하고 황홀한 순간이여. 

 

 진실 따윈 중요하지 않아.

 

 "이걸, '마녀 사냥'이라고 합니다."

 

 "...뭐라고?"

 

 E는 실눈을 뜨고 반문했다. H는 입꼬리를 올리고,

 

 "여러분은 모두 저 교활한 E의 언변에 속아넘어가, 나를 여론 재판에 내몬 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사회자와 한통속이라니요? 제가 뭐 사회자 녀석과 비밀 연애라도 한다는 겁니까?"

 

 사회자는 어깨를 으쓱였다. 제법인데. 좋아. 잘 하고 있어. H는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의 그런 피해 망상이 우리 '공영과'를 결국 이 지경으로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은 곧잘 104호를 '뺏긴다'고 표현했지만, 아니죠, 관리 주체가 '총학생회'가 되는 것 뿐입니다. 여러분이 반발하는 바람에 여론만 안 좋아지고... 여러분은 너무 자기 중심적이예요."

 

 "......"

 

 B는 울컥했다. 자기 중심적? 뚫린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구나. B는 당장 뭐라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주장의 근거가 될 만한 게 없었다. 엄밀히 얘기하면, E의 주장은 모두 '추정'일 뿐이었다. H가 저렇게 나오면 저 말도 저 말대로 존중해줘야 한다. 물적 증거가 없는 이상...

 

 "피해 망상?"

 

 불쑥 말한 것은 C였다. C답지 않은, 날카로운 말투였다. 모두는 이제 C를 주목했다. H는 자신에게 쏟아지던 시선을 빼앗겼다는 기분에 입맛을 다셨다. C는 바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핸드폰이었다. B는 C가 손을 떨지 않는 것에 주목했다. C는 핸드폰을 방바닥에 던져놓으며 말했다.

 

 "그게 비밀 연애였어..."

 

 "무슨 소릴 하는거야?"

 

 H는 물었고, C는 큭큭큭 하고 웃었다. 그러더니 급기야 폭소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푸하하하!"

 

 "...C?"

 

 E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C를 불렀다. 옆에 있던 B가 E를 제지했다. 괜찮아. E는 B를 보고, 눈빛으로 의아함을 표현했으나 일단 잠자코 있기로 했다. C는, 말했다.

 

 "내가 별로 좋은 연기를 보여주지 못한단 이유로... 뒤에서 내 얘기를 하던 놈들 때문에, 나는 특이한 버릇 하나를 가지고 있어."

 

 "특이한 버릇?"

 

 F가 물었다. C는 F를 바라보며, 모두에게 말했다.

 

 "나를 욕해도 좋아. 앞으로 상종하지 못할 녀석이라고."

 

 C는 이제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자포자기의 심정이 묻어나는, 허탈해 보이기까지 하는 웃음이었다. E는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B는 자신의 스커트를 빠른 속도로 만지작거렸다. G는 무표정했지만, 허벅지가 상당히 경직되어 있었다.

 

 C는 말했다.

 

 "나는, 평소에, 모든 대화 내용을 캡처한다."

 

 "...뭐라고?"

 

 "다시 말할게. 나는 모든 온라인 대화 내용을 캡처해 둬."

 

 "...모두?"

 

 "응. 하나도 남김 없이 모두. 공적인 단톡방부터 사적인 대화까지."

 

 F는 사색이 된 얼굴로 C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C는 웃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C는 대답했다.

 

 "앞서 말한 대로야. 뒤에서 내 얘기 하던 놈들 때문에 생긴, 버릇."

 

 "......"

 

 "일종의 '피해 망상' 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지. 편리하고. 하지만, 아니야."

 

 "그렇다면?"

 

 "왜 거의 모든 조직마다 '왕따'가 생기는 지 알아?"

 

 C는 반문했고, 그 순간 E는 벼락을 맞은 듯 얼어붙었다. 우리는 은연중에 C를 무시하고 등한시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런 공기를 조성하는 녀석들은, 언제나 한 명의 집어삼킬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 천박한 영혼들... C는 자신의 질문의 의도를 모두 이해하리라 믿으며, 말을 마무리했다.

 

 "나는 저 녀석들의 단톡방에서 모든 대화 내용을 캡처해뒀다. 쫓겨나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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