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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화 -

 

 

 

 H는 더 이상 변론을 포기했다. 인민 재판이 시행됐을 때, 그는 다시 한 번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최종 변론을 할 때의 호기어린 말들은 진실이 밝혀진 후에 부메랑처럼 자신을 덮쳐오리라는 걸, 그는 직감했다. 그는 자신의 멍청함을 탓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H가 마피아로서 퇴장했다. [현재, 인민 5 : 마피아 1]

 

 "마피아의 밤이 찾아왔습니다."

 

 사회자는 선언했고, 모두는 고개를 숙였다. 한 명 남은 마피아는 고개를 들었다. 그는 진중하게 생각에 잠겼다. 누구를 죽여야 하지? 이제 마피아 진영은 열세에 몰렸고, 누구를 죽이든 이 게임에서 이길 확률은 적어 보인다. 그는 사회자를 흘깃 돌아보았다. 

 

 어쨌든, 게임에 참가한 입장으로서, 최선을 다하겠어.

 

 "낮이 밝았습니다. 모두 고개를 들어주세요."

 

 모두는 고개를 들었다. 사회자는 "마피아에 의해 희생된 인민은- C입니다!" 하고 선언했다. [현재, 인민 4 : 마피아 1]

 

 "C?"

 

 D는 고개를 갸웃했다. F도 그런 D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B도 눈을 꿈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D가 외쳤다. 

 

 "일종의 보복성 살해인가! C가 비밀을 폭로했기 때문에?"

 

 "그렇다곤 해도... 너무 치졸한 걸?"

 

 F는 많이 진정되어 있었다. F는 차분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C가 비록 폭로전으로 양상을 이끌긴 했지만... C한테는 미안한데, C보다 더 위험한 건 E잖아? 아니면 B라든가." 

 

 "......"

 

 모두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E를 향했다. E는 그들의 시선을 마주하다가, J처럼 머리를 긁적이며,

 

 "나... 죽음의 위험에서 벗어난 거야?"

 

 라고 조금 얼빠진 말을 했다. E는 다시 한 번 머리를 긁적였고, D는 실눈을 뜨고 E를 바라보며 말했다.

 

 "수상한데."

 

 "뭐가?"

 

 "...하긴, 마피아가 자신을 처형할 리는 없을 테니까."

 

 "......"

 

 E는 눈을 꿈뻑거렸다. 무슨 말이야, 그게?

 

 "E는 예전부터 연기를 참 잘했어. 참 천연덕스럽고 자연스럽게 연기했지."

 

 "......"

 

 "아마 지금도, 마피아로서의 자신과, 인민으로서의 자신, 두 가지의 인격에 자연스럽게 몰입하면서 그때 그때 필요한 것을 꺼내쓰고 있을 수도 있어."

 

 "......"

 

 E는 입을 다물었다. B가 말했다.

 

 "그게 함정일 수도 있잖아? E를 의심하게 만들기 위한."

 

 "야. 그렇게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어."

 

 D가 대답했다. 하지만 B는 지지 않았다.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지는 말자는 얘기야. 너무, '의심'하지 말자. 믿음과 의심 사이에, 진실이 있어."

 

 F는 B의 말을 귀기울여 들었다. '믿음과 의심 사이에 진실이 있다-'

 

 같이 무대에 올라가는 동료들 사이에, '믿음'이란 소중한 것이다. 내가 뒤로 넘어지는 장면을 연기해도 동료가 나를 받아줄 것이라는 믿음. 서로 감정이 격해져 싸우는 장면을 연기할 때도 합을 맞춰줄 것이라는 믿음. 믿음은 산소처럼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이 파국은, 그 믿음을 악용했기 때문에 생겨났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의심'이었다. 진중하게 게임에 임하던 J가 옳았던 것이다. 전적으로 '믿는다'는 것은, 광신교도의 믿음과 같다. 세상에 수많은 사이비 종교가 판치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 엄격했던 부모님은, 한 가지 진실만은 나에게 깊이 각인시켜 주었다. 

 

 세상에, 신은, 단 하나밖에 없다. 그외의 모든 것은 '우상'이다.

 

 F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사이, E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존재론적인 물음이었다. 마치 스펀지처럼 배역을 흡수하는 자신의 연기력은 스스로도 공히 인정하고 있었다. 그것은 배우로서는 좋은 덕목이었지만, 관객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공연을 하고 숙소로 돌아와서는 술을 퍼마시고... 

 

 술 마시느라 형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인간 말종...

 

 도둑, 부랑아, 거짓말쟁이...

 

 어머니는 어느날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마 네가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희대의 사기꾼이 되었을 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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