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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화 -

 

 

 

 "D, 삼겹살 먹으러 갈래? G도 같이 가기로 했어."

 

 어느 추운 겨울, 캠퍼스를 거닐던 D에게 F와 G가 다가와 물었다. 마침 고기와 술이 땡기던 참이다. D는 고개를 끄덕였다. G는 그런 D를 보며 씩 웃었다. 셋은 그 길로 셔틀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마지막 교시가 끝난 시각이라, 정류장에는 벌써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셔틀버스가 도착했고, D와 F와 G는 만원 버스에 겨우 낑겨서 탈 수 있었다. 버스는 동해안의 해변을 달려 시내로 향했다. 셋은 시내에서 내려, 단골 고깃집으로 향했다. 고기를 주문하고, 술을 서로에게 한 잔씩 따라줬다. "첫 잔은 빈 속에 마셔야지!" F는 그렇게 외쳤고, 셋은 잔을 맞부딪히고 단숨에 마셨다.

 

 고기를 구우며 잔을 기울였다. 밖에는 땅거미가 내리고... 

 

 오늘은 술김에 고백할 수 있지 않을까?

 

 D는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술을 마셨다. F는 G에게 조금 가까이 붙어 앉아 있었다. 그건 조금 못마땅한 일이었지만, 뭐 어차피 우리는 허물없는 사이니까. '친구'와 '연인', 그 모호한 경계에, 우리는 있다. 셋이 함께 한 연극이 벌써 몇 작품인가. 방학 때 공연을 준비하며 합숙할 때는 얼마나 재밌었는지. 서로 볼 것 못 볼 것 다 본 사이다. 

 

 하지만-

 

 "D, 너는 좋아하는 사람 있어?"

 

 F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D는 내심 움찔했다. D는 그러나 본심을 숨기고 쓴웃음을 지으며,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하고 대답했다. "누군데, 누군데?" F는 눈을 빛내며 물었다. G는 그런 F를 제지하며, "야, 야, 얘가 얼마나 순정남인데. 너무 재촉하지마." 말하고 웃었다. 둘 다 모르는 것 같다. D는 고기를 한 점 주워먹었다. G는 그렇다 치고, F는 어떻게 모를 수 있지? 속상하다.

 

 "너는 있냐?"

 

 D는 F에게 물었다. F는 정말 티나게 움찔했다. G는 그런 F를 보고 설레이는 감정을 느꼈다. G는 알고 있다. D는 그런 G를 보며 다시 한 번 속상한 감정을 느꼈다. 그래, F는 G를 좋아해. 이건 내가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거야. 그러나 F의 대답은 다소 뜻밖이었다.

 

 "사실... 잘 모르겠어."

 

 으잉? D는 고기를 씹는 것을 멈췄다. 이게 뭐지? G를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아니면... 아직 그 교수를? 아니야, 그럴 리는 없어. 그때 얼마나 난리가 났었는데. 아마 F는 그때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을 거야.

 

 나에게 희망이 있는 건가?  

 

 D는 복잡한 머릿속을 털어버리려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취기가 슬슬 올라오고 있었다. 오늘은, 술김에 고백을... 술김에 고백을 하는 것은 비겁한 행동이라지만, 취중진담이라는 말도 있잖아? 

 

 "이제 가자."

 

 셋은 얼근하게 취해 고깃집을 나섰다. 각자의 집이 있는 동네로 천천히 걸어가며, 셋은 또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꽤 차가운 겨울 바람이 취기를 조금 날려주고 있었다. 까불거리는 입김과, 농담에 빵 터지는 웃음소리와, 또 한편으로는 밀려 있는 과제 걱정과, 영원히 학생으로 남고 싶다는 다소 유치한 소망과,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

 

 "간다. 푹 쉬어라."

 

 G의 집 앞에서, G는 그렇게 인사하고 들어갔다. D와 F는 G에게 마주 인사했다. 그리고 D는 지금 이 순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단 둘이 남았다. 단 둘이 남은 적이 한 두 번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어째 이상하다. 둘은 약속이나 한 듯이 F의 집으로 향했다. 

 

 나에게, 희망은 있는 거야.

 

 D는 마음을 굳혔다. F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D는 말했다.

 

 "할 얘기가 있는데."

 

 "?"

 

 F는 D를 돌아보았다. D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F는 D의 기색을 보고 긴장했다. 이 레퍼토리는... D는 말했다.

 

 "사실... 나, 너를-"

 

 "......"

 

 "...좋아한다."

 

 "......"

 

 "우리, 사귈래...?"

 

 "......"

 

 "줄곧 오래 지켜봐, 지켜봐 왔는데. 나는, 네가, 좋아."

 

 "......"

 

 "......"

 

 "거절할게."

 

 "......"

 

 "......"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

 

 "......"

 

 "...나는- 사실... 좋아하는 사람 있어."

 

 아. 그렇구나. D는 절망감을 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 D를 보며 F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아니야. 괜찮아. 간다."

 

 D는 휙 돌아섰다. F는 그런 D를 보며 복잡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D는 짐짓 씩씩하게 걷고 있었지만... F는 D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D는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맥주 한 캔을 사들고 바닷가로 향했다.

 

 파도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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