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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화 -

 

 

 

 기숙사 건물에는 '기도실'이 하나씩 있다.

 

 기독교 학교인 이 학교에서, 학생들이 조용히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준 것이다. 기도실에 들어서면 단정하고 깔끔하고 약간 어둑한 내부가 눈에 띈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깨끗하게 빤 방석이 몇 개 있다. 그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를 올린다. 

 

 내면의 고통, 삶의 고충, 죄책감, 연정(戀情), 미래에 대한 불안함, 때로는 이기적이고 때로는 이타적인 이야기까지, 학생들의 기도의 소재는 대략 그러했다. 때로는 기도실 안쪽에서 울음소리가 흘러나오고, 때로는 조용히 '명상'을 하는 이들도 있다. 

 

 F는 기도실에서 흐느끼고 있었다. 

 

 엄격한 부모 밑에서 자라, F는 자연스레 종교에 반감을 가지곤 했었다. F는 가정과 학교 내에서 겉돌았다. 고등학생 시절엔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고, 소위 '일진' 그룹에 속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F는 자기보다 약한 누군가를 괴롭히는 일은 싫어했다. 그런 성향은 그녀를 일진 그룹 내에서도 겉돌게 만들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이를 좀 더 먹고, 부모 곁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하다 보니, 그제서야 그녀에게도 종종 '신앙심'이란 게 생겼다. 사실 별 거 아니다. 생각보다 세상이 빡세다는 걸 깨닫고, 인간 관계의 복잡함을 깨닫고, 과제를 잔뜩 내주는 교수님들이 가끔 미웠고, 외로운 타향살이에 지쳐 종종 부모님이 그리웠고, 그리고...

 

 순수하다고 믿었던 사랑이 배신당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실컷 울고 나니, 조금 진정이 되었다. F는 눈물을 닦고, 어둑한 기도실에서 나왔다. 화장실에서 얼굴을 깨끗이 씻고, 조금 산책이라도 할까 싶어 기숙사를 나섰다.

 

 밝은 햇빛이 나무 잎사귀들 사이로 쏟아져 내렸다.

 

 F는 약간 기분이 전환되어, 캠퍼스 내부를 조금 걸었다. 몇몇 학생들이 F를 향해 가볍게 인사해주었다. F는 마주 인사하며, 그래도 세상엔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다시금 되새겼다. 쉽게 잊는 것이지만...

 

 저 멀리, J가 양반 다리를 하고 벤치에 앉아 있었다. 

 

 F는 J에게 다가갔다. J는 그저 멍하니 앉아 있었다. F는 J에게 물었다.

 

 "뭐해?"

 

 "...오, F."

 

 J는 다소 느리게 반응했다. 늘 민첩 쾌활한 J에게 이런 모습도 있구나. F는 자신의 길고 샛노란 머리를 귀옆으로 넘기며 J의 옆에 앉았다. J는 F를 흘깃 바라본 다음, 대답했다.

 

 "기도를 하고 있어."

 

 "기도...?"

 

 양반 다리를 하고 기도를 한다고? 그건 좀 무례한 거 아닌가? F는 그런 생각을 하며,

 

 "기도는 예배당이나 기도실에서 하는 거 아냐?"

 

 하고 물었다. J는 미소를 지으며,

 

 "어느 시인이 그런 말을 했지.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 숨을 천천히 들어마시기만 해도."

 

 "...그렇구나..."

 

 "흐흐."

 

 "그럼, 누구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어?"

 

 F가 묻자, J는 F를 빤히 바라보았다. 조금 갑작스러워서, F는 다소 당황했다. J의 눈은 맑게 빛나고 있었다. J는 대답했다.

 

 "비밀이야."

 

 J는 씩 웃으며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F는 심장이 콩닥거리는 것을 진정시켰다. 휴, 위험했다. 이 녀석, 혹시 꾼 아냐? 아니, 아닐거야. 그러기엔 눈이 너무 맑았어. 

 

 "104호는 어떻게 될까?"

 

 F는 재빨리 화제를 바꿨다. J는 잠깐 곰곰이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결국 여론전인데, 문제는 내부의 적이야. 원래 외부 투쟁보다 내부 투쟁이 더 극난한 법..."

 

 "......"

 

 "내부에서, 학교 당국과 내통하는 세력이 있다. 그 녀석들은 겉으로는 우리 과를 위하는 척 하면서 사실은 자신들만의 이득을 챙기고 있지."

 

 "이득이라면?"

 

 "차기 총학생회장 선거에 대비한 정치적 입지 구축."

 

 "호오..."

 

 "인트라넷에 들어가 보니까 벌써 우리 과에 대한 비난 여론이 조성되어 있어. 하지만 우리는, '피해자'라고. 눈 뜨고 코 베이게 생긴."

 

 F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비난'이란 말은, 너무 무섭다. F는 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지...?"

 

 J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봤자 일부일 뿐이야. 너무 겁먹지 않아도 돼. 대개의 민심은 우리 과를 지지하니까. 그러니까 너도 약속해."

 

 "약속?"

 

 "응."

 

 "무슨 약속?"

 

 J는 눈을 결연히 빛내며, 말을 마무리했다.

 

 "'미움받을 용기'를 꺾지 않겠다는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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