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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화 -

 

 

 

 "내가 '그'하고 얘기해 놨어. 잘 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H는 말했다. F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D는 예의 그 부리부리한 눈빛을 빛내었지만, 아무 말이 없었다. B는 C의 눈치를 살피다가, 물었다.

 

 "그럼 104호는..."

 

 "그래. 뺏길 일 없어. 과 부대표로서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

 

 H는 대답했다. B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때 C가 손을 들고 물었다.

 

 "저기..."

 

 "......"

 

 찰나였다. H의 눈쌀이 아주 잠깐 찌푸려지는 것을, C는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눈치챈 것은 C뿐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이들은 눈치챘어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 걸까. C는 덜컥 겁을 먹고, 더듬더듬 말했다.

 

 "...내, 내가 저번에, 누군가의 실수로 '너희' 단톡방에서 쫓겨난 적이 있-"

 

 "아, 그건 우리 행정부장의 실수야."

 

 H는 C의 말을 잘라 대답했다. 여전히 귀찮은 듯한 태도였다. C는 입을 다물었다.

 

 "그럼 7주차 정모를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H는 선언했다. 모두는 삼삼오오 흩어졌다. C는 다소 풀이 죽은 듯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동아리방을 나섰다. 터덜터덜 걸어서, 학생회관 2층을 잠시 서성이다가, 발코니로 향했다. 바람이 쐬고 싶었다.

 

 밤바람이 C의 머릿카락을 찰랑찰랑 흔들었다. C는 눈을 감고 그 바람을 느끼며, 발코니 난간에 팔을 기대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C의 얇은 소매를 뚫고 팔에게까지 전달되었다. 나쁘지 않은 감각이었다.

 

 바람이 말한다. 살아가라고.

 

 "뭐하니?"

 

 문득 말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B가 서 있었다. C는 그저 대답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B는 C의 옆에 와 난간에 팔을 기대었다. 그리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C는 B의 옆얼굴을 바라보다가, 역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둘은 한동안 말없이 그렇게 서 있었다.

 

 "답답하지?"

 

 B가 불쑥 물었다. C는 다시 B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B는 다시 말했다.

 

 "뭔가... 답답하지?"

 

 "......"

 

 C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갑작스레 치솟아오르는 눈물이 그의 눈을 가렸기 때문이었다. B는 C의 울음기를 느꼈지만, 탓하지 않았다. 다만 말을 이어갔다.

 

 "이런 말이 도움이 될까?"

 

 "?"

 

 "저번에 J 병문안을 갔을 때, J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

 

 "J 몸은 좀 괜찮아?"

 

 "많이 나아졌어. 곧 돌아올 거야."

 

 "다행이네."

 

 "J가 그러더라. 항상 세상을 삼분(三分)해서 바라보라고. 우리는 늘 이분법적인 사고에 익숙해져 있다고."

 

 "...음? 조금 더 자세히 얘기해 줘."

 

 "그러니까, 우리는 늘 이분법적으로 사고한다는 거야. 남자와 여자, 아군과 적군, 선인(善人)과 악인(惡人), 공화당과 민주당, 얼라이언스와 호드."

 

 얼라이언스와 호드... C는 부지불식간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 말은 B가 센스있게 끼워넣은 말이었지만, 어쨌든 B의 전략은 먹혔다. B는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말야, 실제의 인민(人民)은, 저 둘에 완벽히 속해있지 않을 때가 더 많아."

 

 "......"

 

 "제 3의 가능성, 제 3의 상상력, 제 3의 세력은... 인민(人民)이지."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그래."

 

 밤바람이 다시 불어 와, C의 앞머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C는 다시 눈을 감았다.

 

 C는 감았던 눈을 떴다.

 

 "H가 마피아라면, 녀석은 사회자와 한통속일 가능성이 높아."

 

 좌중이 웅성거렸다. E가 놀라움으로 움찔했다. F는 그게 무슨 말인가 잠시 생각하다가, 불안하게 떨리는 손으로 무릎 담요를 끌어올렸다. B는 재빠르게 사회자의 눈치를 살폈다.

 

 녀석은, 녀석은,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B는 슬그머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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