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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화 -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다.

 

 E는 이를 악물었다. 우산 같은 걸 쓸 틈이 없다. 현관에서 허겁지겁 신발을 신은 E는 그대로 기숙사를 뛰쳐나갔다.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가 E의 얼굴을 마구 때렸다. E는 눈가를 훔치며 달렸다. 

 

 길 위, '과속금지'라고 도료가 칠해져 있는 곳에서는 과속을 하면 안 되었다.

 

 도료를 밟은 E는 균형을 잃었다. 달리던 속도 그대로 E는 앞으로 날아올랐다. 그 찰나의 순간이 영겁처럼 느껴졌다. 배우로서 신체 훈련을 한 게 도움이 되었을까. E는 공중에서 반사적으로 낙법 자세를 취했고, 덕분에 얼굴과 땅이 맞부딪히는 일만은 막을 수 있었다.

 

 팔꿈치와 무릎이 조금 까진 것 같다.

 

 아파할 틈이 없다. 주위의 학생들이 웅성웅성거렸다. E는 신음을 흘리며 다시 일어났다. 무릎을 대충 툭툭 털고 E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학생 회관이 멀게만 느껴진다.

 

 학생 회관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저 멀리, '그'가 우산을 쓰고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미 끝났다는 얘기다. E는 입술을 깨물고, 주먹을 쥐었다. '그'가 E를 발견했다.

 

 "E? 왜 빗속에 서 있어?"

 

 "교목실에서, 왔었지?"

 

 "......"

 

 "J가 입원한 틈을 타서... 참 대단한 양반들이군."

 

 "오버하지 마. 나는 그냥 인터뷰에 응했을 뿐이야."

 

 "하!"

 

 E는 코웃음을 쳤다. 비를 너무 많이 맞았나. 거친 입김이 입 주위에서 까불거렸다. E는 한 번 더 눈가를 훔치며,

 

 "다음 채플 설교가 예상이 돼. '우리 학교에 사탄의 자식들이 있다'."

 

 "......"

 

 "너는 한 번 악의 구렁텅이에 빠졌었지만, 이제 회심하고 회개한 그리스도인."

 

 "......"

 

 "멋져. 멋진 포지셔닝이야." 

 

 "E, 내가 그렇게 잘못했나?"

 

 "할 말 있으면 해 봐."

 

 '그'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우산을 약간 비껴들고, 말하기 시작했다.

 

 "'너희'는, '너희'는 말야, 늘 음험하고 위험해. 사람들을 선동하고 내면의 치기를 부채질하지. 그래봤자 부질없는 짓, 헛된 몸부림일 뿐이면서, 선량하고 성실한 이들을 끌어들여.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왔던 이들에게 예술이란 이름의 '마약'을 먹여. 그래, 그것은 마약이야. 이 세계를 좀먹는 마약."

 

 "......"

 

 "그리고는 하는 짓이 모였다 하면 매일 술이나 진탕 마시고, 술에 취해서 밤거리를 쏘다니기나 하고, 겉멋에 취해 여자나 꼬시러 다니고. 그러고는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못한다 한탄하고."

 

 "......"

 

 "'너희'는 너무 한심해. 충격적으로 한심해."

 

 "......"

 

 "간다."

 

 '그'는 E를 지나쳐 걸어갔다. E는 그저 무기력하게 서 있었다. '그'의 말이 옳아서? 아니다. 저것은 궤변이다. 하지만 그저 무기력할 수 밖에 없었다. E는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빗방울이 E의 앞머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진심은 늘 무기력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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