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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피아 게임 II (The Mafia Game II) - 9화

 

 

 

 "아버지. 저기, 저기서 조금만 쉬었다 가요."

 

 "그럴까."

 

 장거리 운전을 하셔서 아버지는 마침 피로하신 참이었다. 아버지는 한적한 도로 옆에 차를 세웠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이 재빠르게 안전 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렸다. 바람이 내 머리를 거칠게 헤집었다. 나는 두 팔을 활짝 벌려 바람을 안았다. 

 

 "멋지네."

 

 아버지는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정말 멋진 광경이었다. 저 멀리 수평선 너머,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반대쪽에서 느지막이 지는 해는 밝은 주황색 햇살을 바다에게 서슴없이 퍼부어 주고 있었다. 파도가 찰싹거렸다. 갈매기들이 두 날개 벌려 활강하고, 백사장에는 앳된 모래들이 가득했다.

 

 나는 신발을 벗고, 두 발을 파도에 적셨다. 

 

 매섭게 차갑다. 우와, 우와. 나는 바지를 조금 더 걷어올리고 걸어들어갔다. 종아리 언저리까지 물이 찰랑거렸다. 이 날카로운 감각, 폐 속으로 깊게 찌르는 새벽 공기같다.

 

 "그러다 영영 못 본다." 

 

 내가 계속 걸어가자 아버지가 중얼거렸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물은 무릎 밑에 있었다. 나는 뒤돌아보며 헤헤 웃었다.

 

 "아버지, 아버지도 들어와 보셔요."

 

 "싫어. 젖는 거 싫어."

 

 나는 빙그레 웃었다- 그런데 왜일까. 아버지가 약간 작아보였다. 그리고 조금 흐릿한 것 같다. 나는 안경에 묻은 물방울을 닦았다. 여전히 흐릿했다. 왜지. 나는 우두커니 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아빠'라고 부른 적이 언제였는가 하는.

 

 바다에서 나온 나는 아버지와 같이 백사장에 앉았다. 아버지는 바다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나에게 물었다.

 

 "대학 생활은 할 만 하니?"

 

 "그럼요."

 

 "졸업하면 뭐 할 거야."

 

 "글쎄요. 전업 뮤지션은 생계에 도움 안 될 거고. 내가 뭐 기타에 목숨 건 것도 아니고. 그렇다면 회사에 들어가는 건데, 조직 생활을 제가 견딜 수나 있을지 모르겠어요."

 

 "견뎌. 다 도움이 된다."

 

 "물론 그렇겠지만..."

 

 그리고 우리는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갈매기가 끼룩끼룩 울었다. 

 

 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어차피 예술가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거지. 그 사람들이 대체로 다 조직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태반이 그렇지. 그런데 조직 생활을 안 해보고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겠냐."

 

 "흠."

 

 나는 고개를 돌려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눈은 바다의 파도를 담고 있었다. 나는 문득 또 그런 생각을 했다. '아빠'라고 부른 적이... 아, 이제 내가 어렸을 때의 그 거대하고 광포한 아버지는 없다. 아마추어 양육자, 자식 앞에서는 때때로 나르시시스트, 사회에서는 제 한 몸 건사하는 것도 힘겨워하는 연약한 인간... 나는 물었다.

 

 "아버지는 회사 다니시면서 뭐가 제일 힘드셨어요?"

 

 "나?"

 

 아버지는 곰곰 생각에 잠기는 눈치였다. 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잠자코 기다렸다. 해가 조금 더 기울었다. 아버지가 대답했다.

 

 "나는- 조직에 분란을 일으키는 자들이 가장 힘들었다."

 

 아버지다운 대답이었다. '조직에 분란을 일으키는 자들', 언제나 안정을 추구하는 평범한 소시민에게 성가신 존재들이다. 잠깐만, 그런데 그거 나 아냐?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다음 말에 나는 약간 충격을 받았다.

 

 "이를테면 이런 사람들이야.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들, 상사에게 아첨하고 아부해서 한 자리 하려는, 출세주의자들... 또... 자기 부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던지..."

 

 나는 아버지가 나처럼 제멋대로인 사람들을 이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버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거지?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어떻게 하셨어요."

 

 "그때 그때 다르다. 그냥 못 본 척 참고 넘어가기도 하고, 혼자 맥주 한 캔 마시면서 삭히기도 하고, 때로는 오락실 펀치머신을 두들겨 패기도 하고. 뭐, 그랬다."

 

 "헤-"

 

 파도가 철썩거렸다. 아버지는 여전히 그 파도를 보고 있었다. 나도 바다를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말했다.

 

 "명심해라. 세상에 아무리 꼴불견같은 자들이 많아도, 그런 꼴을 차마 못 보고 지나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

 

 "분명히 있다. 분명히."

 

 "......"

 

 해는 이제 완연히 기울어서 어둑어둑해졌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가자."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일어났다. 나도 일어났다. 차로 향하다가, 다시 한 번 바다를 바라보았다.

 

 또 올게.

 

 L은 눈을 감고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차피 지금은 눈을 감으나 뜨나 밤이다. '마피아의 밤'이다. 한 사람이 죽는다. 내가 죽을 수도 있다. 나는 내가 '의사'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쉬운 표적이다.  만약 죽는다면, 그 바다에 가야겠다. 어쩌면 자기도 모르는 고통에 빠질 학생들은 뭐 그다지 내 알 바 아니다. 알아서들 하겠지. 다만 나는 학교가 저지르고 있는 꼬라지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을 뿐이다. 

 

 그러나, 내가 아직도 이 학교에 필요한 존재라면-

 

 "마피아의 밤이 끝났습니다. 모두 고개를 들어주세요."

 

 모두는 고개를 들었다. 채플 안이 밝아졌다. 사회자는 말했다.

 

 "마피아에 의해 살해당한 인민은, 'K' 입니다!"

 

 K는 깜짝 놀랐다. 이런, 조기 탈락이라니. 이게 '마피아 게임'의 비정함이라지만. 사회자는 말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모두 K학우님과 작별의 인사 나누셔요!"

 

 그러자 K는 헤헤 웃으며 말했다.

 

 "거참. 좋은 추억 하나 만들고 싶어서 왔는데. 조금 아쉽네요."

 

 모두는 위로어린 시선을 보내주었다. R은 한 마디 덧붙였다.

 

 "아까 저희를 위해 공연기획학회원들에게 따지셨을 때, 내심 고마웠어요."

 

 K는 순박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동안 말이 없던 T가 물었다.

 

 "형님. 졸업하고 뭐하실 겁니까?"

 

 "나요? 전동 킥보드 수리점이나 차릴 겁니다."

 

 "헐헐, 그렇군요."

 

 "뭐, 쓸데없는 소리지만, 우리나라는 앞으로 차가 줄어들고 전동 킥보드가 늘어나게끔 해야 해요. 그래야-"

 

 "자, 여기까지!"

 

 사회자가 제지했다. "어우- 야박해!" S가 항의했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K는 자신의 짐을 챙겨들고 채플의 거대한 문으로 향했다. 그 거대한 몸집은 다소 쓸쓸해보였다.

 

 한편, 이 상황을 주시하던 E는 일단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좋아, 일단 L은 살렸다. 저 아저씨한테는 미안하지만... 미안해요, 나중에 '소주' 한 잔 살게요. 

 

 "E, 그런데 말야."

 

 "어?"

 

 C가 문득 E에게 물었다. E는 눈을 꿈뻑거리며 물었다.

 

 "무슨 일인데?"

 

 "아. 그게, 뭐랄까... 이건 좀 철학적인 문제인데..."

 

 "?"

 

 "U한테 알려줘? 지금 마피아가 아무도 없다는 걸?"

 

 "음."

 

 E는 곰곰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결론은 빠르게 내렸다.

 

 "알려주지 말자."

 

 "그래?"

 

 이 대화를 듣고 있던 F는 화들짝 놀랐다. F는 E를 바라보며,

 

 "그래도 돼?"

 

 E는 대답했다.

 

 "뭐, 그래야 U도 더 집중하지 않을까?"

 

 "......"

 

 "결과적으로는 속이는 것이지만..."

 

 F는 눈을 크게 뜨고 E를 계속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눈꼬리가 약간 올라갔다.

 

 "E."

 

 "...응."

 

 "어떻게, 같은 편을 속일 수 있어?"

 

 "......"

 

 "뭐랄까, 이거, 말은 U를 위한 척하지만, 사실은 U를 못 믿는 거지? 그저 장기판의 말 같은 거지."

 

 "......"

 

 "너도 알잖아? 배우를 속이는 연출, 배우를 속이는 감독은 최악이야."

 

 E는 F의 시선을 담담히 받아내었다. 하지만 속에서는, 지금의 술 한 잔을 간절히 갈망하고 있었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바로 그거야. 저 냉장고를 열고...

 

 어머니는 어느날 내게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감쪽같이 속일 수가 있니."

 

 "......."

 

 어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나를 노려보며 말을 마무리했다.

 

 "'전쟁은 속임수'라고 손자병법에서 그랬지만..."

 

 "......"

 

 "아무래도 너는, '전쟁 기계 (war machine)' 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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