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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피아 게임 II (The Mafia Game II) - 6화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 외롭거나 무서우면, 불을 켜고 잤어."

 

 "...그랬군."

 

 나는 녀석에게 그렇게 넋두리 비슷한 것을 털어놓고 있었다. 녀석은 그저 자신의 기타를 껴안은 채 고개만 끄덕거릴 뿐이었다. 괜찮았다. 되도 않은 위로를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가만 들어주는 녀석이 있다는 것이 더 좋을 때가 있다. L과 나는 그렇게 불 꺼진 야외공연장에 앉아 있었다.

 

 "찜닭 왔다!"

 

 우리 동료 중 하나가 학생회관에서 나오며 우리에게 외쳤다. L은 그 친구를 보며 대답했다.

 

 "어, 그래. 갈게."

 

 "...뭐야, 니네."

 

 "뭐가?"

 

 "니네 사귀냐?"

 

 "시끄러."

 

 L은 상대의 억측을 간단하게 일축하고는 무대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기타를 케이스에 집어넣으며 나에게 말했다.

 

 "뭐해? 찜닭 먹으러 가자."

 

 나는 그저 가만 녀석을 바라보고 있다가,

 

 "먼저 가. 난 화장실 갔다 갈게."

 

 L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도 무대에서 훌쩍 뛰어내린 다음 학생회관 화장실 쪽으로 향했다. 그러다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녀석이 나를 쳐다봤나? 아니다. 녀석은 그저 휘적휘적 식당 쪽으로 걸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화장실 안으로 들어선 나는, 문을 걸어잠그고, 치마를 들어올렸다.

 

 찰칵.

 

 [야외노출] 새벽 한 시, 학교 화장실에서-

 

 사진을 올리자 금세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 오늘도 섹시하십니다.

- 저랑 언제... ㅎㅎ

- 맛있겠다 쩝

 

 미안하지만 나는 니들한테 별로 관심이 없단다. 하지만, 이 반응은 족히 마음에 드는군.

 

 괜히 변기 물을 내리고,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나왔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머리를 빗은 다음, 연달아 울리는 댓글 알림을 확인하며 화장실을 나섰다. 그리고 잠시, 물밀듯이... 물밀듯이 후회감이 쏟아져 들어왔다. 아, 이 미친 년. 아무래도 이건 중독인 것 같다. 나, 이대로 괜찮을까?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식당으로 들어섰다. 벌써 동료들은 찜닭을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

 

 "빨리 와. 네 것까지 먹어버린다."

 

 L은 그렇게 말하며 그릇에 얼굴을 쳐박을 기세로 닭을 뜯고 있었다. 나는 살포시 웃은 다음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당면 약간을 떠서 밥에 올려놓고 깨작거렸는데, 갑자기 L이 말했다.

 

 "아. 그래. 너 혼자 살지?"

 

 나는 엉겁결에 대답했다.

 

 "어, 어."

 

 그러자 녀석이 충격적인 말을 했다.

 

 "기숙사에서 살아보는 건 어때?"

 

 안 돼! 나는 속으로 외친 다음, 고개를 흔들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냐. 혼자 사는 게 편해."

 

 나는 그렇게 녀석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며 당면을 호로록 입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L이 나를 계속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흠칫 놀라 다시 L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그저 다시 그릇에 얼굴을 쳐박고 있을 뿐이었다.

 

 "잘 먹었다! 2차 갈래?"

 

 "택시 불러."

 

 어느새 모든 닭의 살을 발라버린 동료들이 트름을 꺽꺽 하며 다음 행선지를 논의하고 있었다. 시내로 나가서 술이나 하자는 계획일 것이다. 어차피 나도 집으로 가려면 이제-

 

 "나가자. 쟤도 집 바래다 줘야지."

 

 L이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그 배려에 감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택시 한 대가 학교로 도착했고 우리 넷은 택시에 낑겨 탔다. 택시는 밤바다의 해변을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창문을 열고 차내로 쏟아져 들어오는 밤바람을 만끽했다.

 

 "기사님. 저기, 저기서 일단 세워주세요."

 

 L이 택시 기사에게 말했다. 내가 사는 집 근처였다. 택시가 멈춰섰고 나는 내렸다. 모두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잘 자. 우리 꿈 꿔." "푸하하하!" "야. 쟤랑 L이랑 썸 타잖아!" "시끄러."

 

 "술 좀만 마셔. 내일 해장할 때 불러."

 

 나는 그렇게 화답하고는 돌아섰다. 그리고 택시는 다시 출발했다. 그런데 곧 끽, 하고 멈춰서는 소리가 들렸다.

 

 "야!"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L이었다.

 

 "불 끄고 자. 가위 눌린다!"

 

 나는 눈만 꿈뻑거리며 녀석을 바라보았다. 곧 다른 친구들이 소란스럽게 지껄였다. "뭔 소리야?" "거 봐. 내가 둘이 사귄댔지." "L 저 녀석, 로맨틱한 면이 있네." "아, 시끄럽다고, 이것들아."

 

 "......"

 

 집에 들어서자, 컴컴한 어둠이 나를 맞이했다. 나는 머리를 빗어올리며 스위치를 더듬어 불을 켰다. 가방을 대충 던져놓고,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화장 지워야하는데, 씻어야하는데, 하는 생각만 반복하며 그대로 몸을 파묻었다. 환한 형광등 불빛이 감은 눈 위로 쏟아져내렸다.

 

 불 끄고 자라고?

 

 나는 힘겹게 침대로 몸을 옮기고, 잠을 청했다. 피곤한 하루였다. 잠이 곧... 불 끄고 자야지. 아니, 아니지. 그냥 이대로 잠들자... 몸을 한 번 뒤척였다. 불 끄고 자라고? 거지같은 놈... ...불을 꺼 볼까? 아니, 귀찮아. 한 번 더 몸을 뒤척였다.

 

 잠이 안 온다. 빌어먹을.

 

 나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한참을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아주 긴 밤이었다.

 

 그후, L 녀석은 모종의 이유로 휴학했고, 우리 밴드도 자연 해체되었다. 녀석과의 연락은 뜸해지다가 어느새 완전히 사라졌다. 대체 뭘 하고 다니는지. 들리는 얘기로는 '산재 밴드'(재밌는 표현이다. 아마 되게 정치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밴드였던 모양이다.)에 들어갔다는 소리가 있었지만, 뭐 알 길이 없었다.

 

 그런데 녀석이 오늘, 나타난 것이다. 예의 그 부리부리한 눈빛을 하고.

 

 "나는 '의사'니까요."

 

 녀석이 그렇게 말했을 때, 사람들은 저 말이 사실일까 아닐까 의심하는 기색이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저 말은 사실이다. 그냥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저 녀석은 저런 스릴을 즐기는 녀석이다. 보통 사이코가 아니다.

 

 내가 그렇게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나는 흠칫 녀석을 쳐다보았다.

 

 나를 보고 있었다.

 

 녀석이 나를 보고 있었다. 이번엔 틀림없이,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일순 두근거리는 감정을 진정시키며 그 눈빛을 마주 바라보았다. 녀석은 눈으로 묻고 있었다.

 

 요새는 불 끄고 자냐?

 

 망할 놈.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한 순간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아, 진짜, 망할. 이게 뭐야. 나는 머리를 빗어넘기며 말했다.

 

 "헤헤. 재밌네. 독특한 전략이네."

 

 그러자 녀석이 웃었다. 웃어?

 

 "다음 투표 때, L 학우님을 가장 먼저 죽여봐야하나?"

 

 N이 그렇게 말하자, S가 "왜요? N 학우님, 마피아예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N은 펄쩍 뛰며 대답했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수상하잖아요. 자기가 의사라고 너무 떳떳하게 밝히니까."

 

 "다른 학우님들 생각은 어떠세요? 조용히만 있지 마시고."

 

 N이 침묵을 지키고 있던 다른 학우들에게 의견을 종용했다. 그들은 서로서로 눈치를 보았다. 그러다가 한 학우, O가 대답했다.

 

 "저도 한 표요. L을 제일 먼저 죽여봐요."

 

 착 가라앉은, 낮은 목소리였다. 약간 음침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자 좌중의 분위기가 L을 죽이자는 쪽으로 기울어가는 것 같았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꼬고 있는 다리가 약간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P는 황급히 다리를 반대로 꼬며 말했다.

 

 "잠시만요. 제가 의견을 하나 낼게요."

 

 모두의 시선이 P에게로 쏠렸다. P는 그 시선들을 담담히 받아내었다.

 

 "L 학우님은 의사 아니예요."

 

 "왜요?"

 

 S가 물었다. 나는 S를 바라보며, 말을 마무리했다.

 

 "제가 의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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