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마피아 게임 II (The Mafia Game II) - 11화

 

 

 

"잘 잤어요?"

 

U는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며 R에게 물었다. R은 이미 깔끔하게 샤워하고 머리까지 말리고 깨끗한 옷을 입고 채플의 무대 위에 앉아 있었다. 객석을 바라보며 R은 생각에 잠긴 채로 대답했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개운하게 잘 잔 것 같아요. 평소에는 잠을 잘 못 잤거든요."

 

"피곤했나 보다."

 

U는 웃으며 반응하고는 R의 옆에 앉았다. U에게서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는 샴푸향이 R의 코를 찔렀다. 냄새 좋다... R은 그렇게 생각했다.

 

둘은 잠시 말이 없었다.

 

잠시 후, R이 입을 열었다.

 

"오늘은 한야신문사에서 취재도 온대요."

 

"어머."

 

"뭐, 생각해보면 계약서를 읽을 때 취재 동의를 한 기억이 있기도 한데..."

 

"별로 마음에 안 드나 봐요?"

 

R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관심받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그런데 왜 이번 게임에 지원하셨어요?"

 

U는 추궁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R은 '왜' 라는 단어에 다소 민감하게 반응했다. ...아냐, 정신 차려. 이 여학우가 나에게 악의(惡意)를 품을 이유가 없잖아. R은 긴장해오는 몸을 이완시키려 애쓰며,

 

"교회..."

 

"......"

 

"교회라는 곳의 가능성을 알아 보고 싶었어요."

 

동문서답 같기도 하고 선문답 같기도 한 R의 대답이었다. 하지만 U는 R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한 번 상쾌한 향기가 R의 코를 찔렀다. 이번엔 R의 가슴이 콩닥거렸다. R은 무심코 U의 옆모습을 쳐다보았다. 촉촉한 옆머리가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순간 R은 자신의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느꼈다. R은 다시 고개를 휙 돌렸다.

 

"헐헐... 젊은 청춘 남녀의 사랑이 꽃 피우는 겐가."

 

어느새 T가 남자 방에서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나왔다. 그리고 그 말에 두 청춘 남녀는 서로를 외면하려 애썼다. 그 모습을 보고 T는 배를 잡고 웃다가, 다소 진정이 된 후,

 

"그런데, R 후배님아, 잠꼬대를 엄청 하던데?"

 

"제가 잠꼬대를 했어요?"

 

"그래요, 뭐라더라? '죄송합니다', 이러기도 하고, 또..."

 

"아..."

 

R은 뭔가 짚이는 게 있는 듯 한 번 더 머리를 긁적였다. T도 곰곰 생각하다가 뭔가 짚이는 게 있는 듯,

 

"죄송할 게 뭐 그리 많아. 괜찮아, 괜찮아, 안 죽어."

 

"......"

 

"내 보기에 후배님은 너무 착해서 탈이야."

 

얼마나 봤다고... 아, 아니구나, 그동안 채플 무대에 서던 나를 지켜봐 왔을 수도 있겠구나. R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U, 들리니이-?"

 

그때, U의 수신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그런데 C의 목소리가 아니고 F의 목소리였다. 이 시간에? U는 손목 시계를 확인했다. 아침 여덟 시 사십 분... U는 손목 시계보다 손목 위쪽에 붙어 있는 녹음기를 툭 쳤다. 그러자 이번엔 수신기에서 여러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아. U, 밥은 먹었어? 배고프면 안 돼. 너의 활약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어 - 아, 야,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용건이나 말해 - 아, 보채지 마, 나랑 U가 얼마나 친한데! - 지금 그런 거 따질 때야? - F, 혹시 아침 해장술 한 잔 한 거 아니지? - 안 먹었어!"

 

하하하, 엉망진창이네. U는 저도 모르게 빙긋 웃었다. 그리고 R은 그런 U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U는 계속 귀를 기울였다.

 

"어쨌든, U, 오늘 신문사에서 취재 온대!"

 

어어, 그건 방금 들었는데. U는 일단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건 없지만, 방심하지도 마. 요즘 신문사의 동향이 수상해."

 

신문사의 동향? U는 이번엔 살짝 고개를 갸우뚱했다.

 

"오늘도 화이팅! 아웃!"

 

화이팅. 수신이 끝났다. U는 마음을 다잡으며 머리를 손으로 빗었다.

 

"좋은 아침!"

 

여자 방에서 S가 인사를 하며 나왔다. S는 씻기 전에 밥을 먹었으면서도 또 빵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T가 짓궃게 물었다.

 

"어제도 피자 먹고 뭐 또 드시더니, 드시는 거 엄청 좋아하네."

 

"배고프면 이타적으로 살 수 없어요."

 

U는 깜짝 놀랐다. 이번엔 우문현답이었다. T는 또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 청춘들을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나도 아직 삼십 대 초반이지만- 어?

 

...오라버니. 나를 기억해주세요.

 

그때 T의 머릿속으로 어떤 잔상이 스쳐 지나갔다. T는 작게 헉, 소리를 냈다. 왜 하필 지금? T는 살짝 이를 악물어 자신을 진정시킨 후, 마음 속으로 대답했다.

 

잠시 후, 인원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모두는 서로에게 인사를 하고 수다를 떨었다. 다들 생각보다 잘 잔 것 같았다. 밝고 명랑한 공기가 좌중을 감쌌다. 곧 영상학회 스태프들이 도착했다. PD가 모두에게 밝게 인사했다. 하지만 R은 PD의 표정이 어제 저녁과는 달리 썩 밝아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한편, E 일행은 오늘의 일정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먼저 F는 E에게 사과의 의미로 운을 뗐다.

 

"어제, 내가 조금 무례하진 않았는지..."

 

E는 짐짓 고개를 갸우뚱한다음,

 

"...아니야. 잘 했어. U에게 '마피아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좋은 결정이었던 것 같아."

 

하고,

 

"고마워."

 

하고 작게 말했다. 그리고는 조금 부끄러워 E는 고개를 숙였다. 얼레, 이럴 때가 아닌데. E는 다시 고개를 들고, 말하면서 동시에 생각했다.

 

"믿을 만한 첩보에 의하면, 아마 한야신문사 멤버 중       F가 겪었던 지난 일을 생각해 보면, 어제 F의 반응은 충분

일부는 학교 측과 결탁한 것 같아. 신문사 사장이          히 이해가 돼. 조금 당황스러웠고, F가 밉기도 했지만, F에

연루되어 있으면 최악이야. 아마 이번 마피아 게임        게 어떤 저의가 있었던 건 아니야. 그리고 F 덕분에 나는

의 정당성에 대해 홍보하는 한편, 일부 게임 참가자       어떤 '껍질'을 깨부술 수 있을지도 몰라.

들의 이미지 흠집내기에 돌입할 거야."

 

"E, '그'가 너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거, 알고 있지?"

 

C가 조심스럽게 E에게 물었다. E는 진중하게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거, 미움 받는 거 싫은데..."

 

"너무 무서우면 술 마셔."

 

이번엔 F가 조심스럽게 권유했다. E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고민해 볼게. 정 힘들면..."

 

"아자아자! 오늘도 힘내자!"

 

F는 주먹을 불끈 쥐었고 C는 와하하 웃으며 "화이팅!" 하고 외쳤다. E는 수줍게 웃었다.

 

학생회관의 한 구석에서 그런 희망의 새싹이 움트고 있을 때, 매점에서는 공연기획학회 송군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송군은 햄버거를 입에 우겨넣으며 전화를 받았다.

 

"예. 공연기획학회 아이리스 송군입니다."

 

"예. 안녕하셨습니까. 저는 한야신문사 마기자라고 합니다."

 

"아, 예, 마기자님. 무슨 일로?"

 

"예, 지금 채플에서 진행되는 '마피아 게임'에 사실은 마피아가 없다는 제보를 받았는데요, 사실입니까?"

 

헉. 송군은 너무 놀라 이빨을 부딪혔다. 정보가, 어떻게 샜지? 하지만 송군은 침착하려 애쓰며,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저희 학회장님 김군에게 여쭤보시는 게..."

 

"아니, 아닙니다. 사실 진짜 용건은 그게 아닙니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차분하고, 낮게 깔려 있었다. 그럼, 용건이 뭔데...? 송군의 머리는 재빠르게 굴러갔다. 마기자가 말했다.

 

"저희가 바라는 것은 일종의 '협력' 입니다."

 

"협력이요?"

 

"예. 이 '협력'에 응해 주시면, 아까 말한 정보는 기사화하지 않겠습니다."

 

오호라. 협박이었군. 송군은 미간을 찌푸리고 눈매를 날카롭게 하며,

 

"그걸 일개 학회원에게 말하는 이유가 뭡니까? 엄연히 학회장 김군이 있는데..."

 

오호라. 생각보다 날카로운 구석이 있군. 하지만 그런 것도 다 생각을 했지. 마기자는 빙긋 웃으며,

 

"김군은 강직한 인물이라, 안 통할 거니까요. 사실, 어떻게 김군이 'L'을 죽이지 않았는지도 미스터리입니다."

 

"......"

 

"저희의 요청을 들어주시면, '선물'을 드리지요. 어떻습니까?"

 

"선물?"

 

"예. 현금으로- ...원."

 

뭐라고? 송군은 놀라서 햄버거를 떨어뜨렸다. 갑자기 목이 막혀왔다. 전화기를 막고 잠시 켁켁거린 송군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결정은 빨랐다.

 

만세.

 

 

 

 

 

 

 

--

반응형

+ Recent posts